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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 겉표지
 <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 겉표지
ⓒ 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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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를 타고 유럽과 아시아대륙을 횡단할 수 있을까? 그것도 '혼자서'.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누구나 선뜻 시도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여행에 나서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수 개월 동안 사용할 여행경비와 시간적 여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용기'까지.

스쿠터로 대륙횡단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 주인공은 분명히 온갖 여행과 모험으로 단련된,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진 사람일 거라고 막연히 단정지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주인공은 올해 26살이 된 임태훈씨다. 그가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지금부터 3년 전, 그러니까 23살이란 젊은 나이였다.

3년 전 태훈씨는 영국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을 세우면서 그냥 남들처럼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았단다. 지도를 보니 영국을 출발해서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면 한국 근처까지 올 수 있을 듯했고, 그래서 시도했다. 영국에서 스쿠터를 타고 한국으로 가기로.

영국→한국까지, 스쿠터로 2만km 달린 23살 청년

마음이 약해질까봐 한국행 비행기표를 두 눈 질끈 감고 찢어버렸다. 비행기표를 찢어버린 순간, 태훈씨에게 남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태훈씨는 대략적인 동선을 만들어 봤다. 우선 독일에서 중고 스쿠터를 구입한 뒤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면 될 것 같았다고.

영국에서 시작된 태훈씨의 여행은 독일-스위스-리히텐슈타인-오스트리아-이탈리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불가리아-그리스로 이어졌다. 그리고 터키와 이란, 파키스탄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중국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2만km에 이르는, 태훈씨의 유라시아대륙 스쿠터 횡단이 완성됐다.

물론 이 여정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럽국가들이야 비자 없이 입출국이 가능하지만, 터키로 넘어오면서 부터는 우선적으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비자 말고도 많은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터키에서 어디로 어떻게 넘어가야할지, 혹시라도 중동의 모래사막에 묻혀버리는 것은 아닌지 등.

2008년 말에 출간된 <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는 바로 이 모험의 기록이다. 태훈씨는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서 지금은 서울의 한 회사에서 병역특례로 근무중이다. 중국에서 다니던 학교는 3학년을 마치고 휴학중이고 병역특례 근무는 올해 말에 끝난다. "지금도 스쿠터를 타고 집과 회사를 오가는 생활을 한다"는 태훈씨를 지난 31일,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부근에서 만났다.

비행기, 차... 편한 걸 놔두고 왜 하필 스쿠터일까

<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의 일부.
 <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의 일부.
ⓒ 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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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영국에 있을 때 2006년 5월 한 달 동안 자전거여행을 했어요. 그리고 그 자전거를 독일에서 팔았고요.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는데 그냥 어떨결에 스쿠터를 한 대 구입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걸 타고 영국으로 갔던 것이 스쿠터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죠."

태훈씨가 선택한 스쿠터는 혼다 PS125 모델로 배기량이 125cc 짜리다. 개인적으로 나는 스쿠터를 탈 줄 모른다. 오래 전에 배우려다가 포기하고 그 다음부터는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스쿠터와 오토바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다. 그리고 125cc짜리 모델이 장거리 여행에 적당한지도.

"스쿠터는 그냥 땡기면 나가고, 잡으면 서잖아요. 그런데 오토바이는 기본적으로 기어 조정을 해야 되죠. 그리고 스쿠터는 양 발을 편하게 발판에 올려놓으면 되는데, 오토바이는 양 발로 페달을 밟으면서 같이 조정해야 되죠. 당시 PS125를 2800유로를 주고 구입했어요. 125cc 짜리를 택한 이유는, 20000km를 달려야되는데 무작정 저렴한 것을 사면 도중에 무슨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거든요. 이란 사막 한가운데에서 망가려버리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제가 가진 경비도 함께 고려해서 적당한 기종으로 선택한 거죠."

여행을 하는 방법은 많다. 어떤 사람은 걸어서 여행하고 다른 사람은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또 누구는 캠핑카를 몰고 대륙을 떠돌면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한다. 스쿠터는 자전거와 자동차의 중간쯤 되는 교통수단일 텐데, 왜 하필이면 집에 오는 수단으로 스쿠터를 택했는지, 장단점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이동해도 되긴 한데, 그러면 그 길에서 보여지는 것만 보게 되잖아요. 제가 직접 길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도 한 번 생각해 봤는데, 자전거로 2만km를 가려면 거의 100% 제가 도중에 포기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스쿠터를 선택하게 된 거죠. '스쿠터 정도라면 충분히 갈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장단점은… 일단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이러면 운전하기가 좀 힘들죠. 장점은 기름값이나 주차비 같은 것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거죠. 제 스쿠터는 연비가 1ℓ에 40km 정도 되요. 꽤 달리는 편이죠. 이란에서는 기름값이 아주 쌌어요. 1ℓ에 100원 수준으로요. 그런 나라에서는 기름값이 거의 안 들어가죠. 그리고 자전거보다는 빠르지만 자동차보다는 느리니까 달리면서 주변도 잘 둘러볼 수 있고, 생각도 많이 할 수 있고요."

태훈씨의 스쿠터 여행을 중단시킨 나라는?

스쿠터 여행가 임태훈씨
 스쿠터 여행가 임태훈씨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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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훈씨의 여행은 영국에서 시작해서 동쪽으로 나아갔다. 스쿠터라고 하지만 엄연히 번호판이 붙어있는 이륜차다. 외국에서 자신의 스쿠터를 이용해 여행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와 서류가 있다. 유럽의 경우는 비교적 까다롭지 않다. '까르네'라는 서류가 있어야 하고 스쿠터 보험에 가입하면 된다. 국제운전면허증이 없었던 태훈씨는 한국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주며 운행허가를 받아냈다고 한다.

문제는 중동을 통과해서 아시아로 넘어오면서 조금씩 생겼다. 터키에서도, 이란과 파키스탄에서도 입국심사장에서 태훈씨의 스쿠터가 문제가 됐다. 그때마다 태훈씨는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며, 작은 스쿠터고 속도도 얼마 안 나오니 봐달라고 사정했다. 그렇게 파키스탄을 거쳐서 중국 국경까지 왔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완고한 중국의 입국심사관이 태훈씨의 스쿠터 반입을 금지한 것이다. 중국어가 유창한 태훈씨는 열심히 설득했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단다. 중국 내에서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기 위해서는 서류를 갖춰야하고 거기에는 약 6개월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태훈씨는 중국을 일반적인 배낭여행으로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1만8000km를 달려온 스쿠터를 중국 국경검문소에 남겨둔 채.

"제 스쿠터는 지금도 거기 있을 거예요. 아마 누가 타고 있겠죠. 중국 공안이나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이… 아쉽고 다시 가지러 가고도 싶은데 절차가 너무 복잡해서요."

태훈씨는 여행중에 시속 60~70km의 속도로 달렸다고 한다. 하루에 그렇게 5~6시간 가량을 달렸다. 더 달릴 수도 있었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즐기고 혼자만의 휴식시간도 갖고 싶었기 때문. 그리고 뒤에 실은 짐의 무게도 40~50kg 정도 됐기에 그 이상 속도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짐이 많아서 인지 바람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파키스탄이나 이란, 터키 이쪽에서는 거리에서 아이들이 막 저한테 돌팔매질을 해요. 맞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데. 그때 좀 힘들었죠. 개들이 막 짖으면서 따라오고 그러면 좀 무섭잖아요. 좋은 사람들도 많았어요. 거리에 앉아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과일 먹으라고 주기도 하고. 너의 여행을 위해서 기도해 주겠다고 하면서 기도하기도 하고. 고마운 사람들도 많았죠."

유라시아 대륙이 넓은 만큼 영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도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란, 파키스탄을 거쳐서 오는 방법도 있고 카자흐스탄이나 러시아를 거쳐서 올 수도 있다. 태훈씨에게 러시아는 언제든지 갈 수 있는 나라였다. 대신에 중동이나 파키스탄은 그때가 아니면 힘들겠다고 생각했고, 긴 러시아 영토를 통과하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 스쿠터 여행은 힘들 듯"

<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의 일부.
 <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의 일부.
ⓒ 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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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거쳐온 여러 나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파키스탄이었단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중국의 카쉬가르를 연결하는 카라코람 하이웨이. 수많은 모험가들의 영혼을 들끓게 만들었던 그 길이 태훈씨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다. 만년설을 짊어진 준령들이 펼쳐진 해발 수천 미터의 고산지대를 혼자서 스쿠터를 타고 여행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에는 이런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다. 요즘 책 제목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 대세라지만 이 책의 제목도 만만치 않다. 이 제목은 태훈씨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여행을 하던 도중에 여행기와 사진을 한국의 한 잡지에 연재했는데, 그 연재기사의 제목이 바로 '세계는 넓고, 스쿠터는 발악한다'였다. 그리고 그 기사를 다시 모아서 책을 만들 때 그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한번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현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태훈씨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병역특례 근무를 하며 개인 블로그 '단지 먼저 떠났을 뿐이다'를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 제목처럼 분명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것이다. 그때 또 그는 스쿠터에 올라 앉을까. 단지 먼저 떠났을 뿐이라지만, 남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떠난 사람이 부러운 법이다.

"나이가 들어서요.(웃음) 스쿠터는 좀 힘들 것도 같네요. 병역특례 근무가 끝나면 저한테 주는 선물로 긴 여행을 한 번 하고 싶어요. 작은 경차를 이용해서 알래스카에서부터 칠레의 최남단까지 자동차 여행을 하고 싶어요. 경비도 시간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요. 유라시아 횡단은 제가 어렸을 때 했던 거라서 좀 아쉬움이 남아요. 책도 그렇고. 다시 떠나면 좀 더 잘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싶어요. 나같은 사람도 했든데, 당신이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요."


태그:#스쿠터 여행, #임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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