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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웹 스크랩'(http://blog.khan.co.kr/97dajak)을 시작했다. 군 생활할 때부터 신문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신문을 오려서 노트에 붙이는 방식으로 스크랩을 했다. 매일 이렇게 스크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말을 이용해서 스크랩을 했는데, 일주일치 하는 데 하루 종일 걸렸다. 전역 후 <경향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경향신문사와 드림위즈가 제휴를 맺어서 웹 스크랩이 가능했다. 기사에 '스크랩' 버튼이 있어서 바로 스크랩을 할 수 있었고 드래그 해서 붙여넣는 방식도 사용이 가능했다. 시간이 훨씬 절약된 것은 사실이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누군가 나의 스크랩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3년 동안 2만개 정도의 '불펌'(자료 등을 올린 이의 허락 없이, 그냥 다른 곳에 업로드하는 것을 말한다)을 했고 20만명이 다녀갔다. 신문을 꼼꼼히 읽고 스크랩을 하려면 3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매일 3시간씩 3년간 약 3000시간 동안 신문공부를 하면서 나와 내 블로그 방문자들은 사회를 조금씩 이해해 갔다.

하지만 다른 신문을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다른 매체나 책을 읽다 보면 스크랩은커녕 신문을 제대로 읽을 시간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작년부터 스크랩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의 스크랩은 묻혀 갔다.

스크랩을 하면서 얻은 게 많았다. 모든 신문을 구독할 수는 없지만 스크랩이나 '펌질'을 통해서 다른 신문사의 주요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나의 스크랩을 통해서 <경향신문>의 주요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으로 인해 누군가로부터 단 한 번도 문제제기를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감사인사를 들었다.

애초에 스크랩은 내가 기사를 효율적으로 저장해서 보기 위함이었지만 많은 사람들과 기사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수확이었다.

하지만 온라인서비스 제공자 및 불법 복제·전송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1일 통과된 '저작권법 개정안'에 따르면 나는 드림위즈 계정을 완전히 잃고 블로그는 폐쇄될지도 모른다. 개정안은 특히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 복제물을 삭제하라는 명령을 3회 이상 받은 게시판을 최대 6개월까지 폐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작권 침해가 심하다고 판단되면 '취급을 제한' 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문제는 계정을 정지시키거나 게시판을 폐쇄시키는 명령권을 문화부 장관이 갖는다는 점이다. 저작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의 문제제기 없이도 정부가 자의적으로 저작권 침해를 판단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에 비판적인 사이트가 집중적인 관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조선> 광고불매운동 사이트 '언소주' 폐쇄될 수도...

시사저널 기자들이 독자들과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함께 싸웠던 역사를 보여주는 시사모의 홈페이지. 시사저널 사태 관련기사 모음이라는 게시판이 보인다.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르면 이런 게시판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며 폐쇄 사유에 해당한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독자들과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함께 싸웠던 역사를 보여주는 시사모의 홈페이지. 시사저널 사태 관련기사 모음이라는 게시판이 보인다.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르면 이런 게시판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며 폐쇄 사유에 해당한다.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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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언론운동을 진행했다.  당시 <시사저널> 기사들과 함께 거리에서 싸우면서 시사모(http://www.sisalove.com/)라는 사이트 활동을 했는데, 거기에는 관련기사가 수시로 링크되었다.  73개 신문사 821개의 기사가 관련기사로 연결됐다.

이런 기사를 스크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시사저널> 문제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이것은 <시사인> 창간의 원동력이 되었다. 만약 821개의 기사가 따로 놀았다면 공론화가 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시사모의 2천여 회원과 이를 지지하는 많은 누리꾼들이 게시판이나 블로그 여기저기에 기사를 퍼나르면서 공론화가 진행됐다. 하지만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르면 시사모에서 진행한 기사 스크랩은 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원천적으로 '펌질'이 불가능해지고 각자 개별적으로 기사를 확인하는 수고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여름 촛불 집회 이후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http://cafe.daum.net/stopcjd)이라는 시민단체가 만들어져 <조선일보> 등에 대한 광고불매운동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이 단체는 단지 <조선일보> 등에 광고를 내는 기업에 대해서 광고자제를 설득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언론소비자라면 알 필요가 있겠다 싶은 기사들을 공유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국민들이 이 단체에 대해서, 광고불매운동이 단지 <조선일보>가 싫어서가 아니라 광고불매를 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믿게 된 데는 이런 정보 공유가 전제조건이었다.

만약 <조선일보>의 행태에 대한 정보공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 단체가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웬만한 비판에 꿈쩍도 하지 않는 <조선일보>가 이 단체를 고발했다는 것은 그만큼 운동의 파괴력이 있다는 증거다. 만약 저작권법 개정안 대로라면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펌질 때문에 경고를 받고 폐쇄가 될 수도 있다.

저작권 개정법은 '언론검열'의 다른 이름?

1일 국회를 통과한 저작권 개정안이 저작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상과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를 차단하는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작권 위반에 대해 저작권자와 저작권 위반자 양자의 문제라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뒤집은 저작권자와 저작권 위반자, 심지어 양자와 상관 없는 저작물 유통 관리자(포털 등 게시판 관리자)를 모두 정부의 '명령'에 따르는 관계로 바꾼 것은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다.

하다 못해 사이버모욕죄에 적용하겠다는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할 때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여기서는 예외이다. 예컨대 정부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유통하는 누리꾼과 주요 게시판을 모두 제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가 많이 올라오는 게시판에 인력을 고용해 감시활동을 벌이고 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발생할 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명의의 명령을 내리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확장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도 있다. 이번 개정된 저작권법을 '언론검열'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저작권법 개정안에 '반의사 불벌죄'와 같은 장치를 두지 않으면 정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법을 집행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인터넷상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 모 씨(가운데)가 1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친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인터넷상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 모 씨(가운데)가 1월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친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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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이 어디까지 해당하느냐는 문제를 두고도 논란이다. 개인 블로그가 게시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유권해석으로 충분히 '저작물을 올리는 모든 웹 공간'으로 법 적용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블로그는 포털사이트와 직결되기 때문에 개인 블로그의 위법사항을 근거로 포털에 대해서 제재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누리꾼의 입장에서 보면 '불펌'으로 메일확인 등 포털의 기본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한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온라인 상에서 반정부 게시물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지난  3월 16일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인터넷 게시물의 조회수가 많아지도록 조작한 혐의로 서울 강남과 전남 순천 등에 사는 누리꾼 3명의 집과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는데, 법원에 영장을 받은 근거 법조항은 '업무방해 혐의'이다. 정부에 대한 업무방해가 아니라 포털사이트 '다음'에 대한 업무방해를 정부가 대행해준 어정쩡한 모양새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를 적용해 '미네르바'를 구속한 것도 이와 유사한 사례이다. 이미 사장된 지 20년이 넘은 전기통신기본법 상 허위사실유포 혐의였다. 허위사실유포죄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의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는 여러가지 다양한 경로로 언론탄압과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  KBS와 YTN 낙하산 사장 임명과 MBC PD수첩 수사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 통제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을 통해 그런 의지를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이명박 정부를 가리켜 "무엇을 하든 그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해맑은 투명정부"라고 평가했는데, 저작권법 개정안을 통해 정부가 언론과 인터넷 여론을 어떻게 통제하려 하는지 더 분명해졌다.


태그:#저작권법 개정안,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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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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