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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율 23% 백미로 빚은 닷사이 미가끼 니와리삼부(獺祭 磨き二割三分) 와 다양한 사케안주들. 위로부터 멍게젓, 오징어젓, 명란젓구이
 정미율 23% 백미로 빚은 닷사이 미가끼 니와리삼부(獺祭 磨き二割三分) 와 다양한 사케안주들. 위로부터 멍게젓, 오징어젓, 명란젓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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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율 23%. 쌀 77%를 깎아서 버리고 남은 23%만 가지고 술을 빚었다는 얘기다. 말이 좋아 23%이지 좋은 술을 빚고자 하는 고도의 열망과 집착이 없었다면 행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23%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서두르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쌀에 균열이 생기면 오히려 질이 낮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 7일 밤낮을 천천히 정미하여야 하는 극한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23% 정미는 아마도 현재 일본 최고이다.

현미(左)와 23%가 남을때까지 도정한 백미(右)
 현미(左)와 23%가 남을때까지 도정한 백미(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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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법상 정미율 50% 이상이면 최고등급인 다이긴죠 판정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계에서 배 이상 정미를 했다. 그 문제작이 바로 닷사이 미가끼 니와리삼부(獺祭 磨き二割三分)이다. 원래 이 술은 최고 정미율 25%의 준마이다이긴죠로 계획되었다. 자사 소유의 논에 직원이 총출동해서 재배한 야마다니시키 벼이삭을 보면서 "이것으로 일본 최고 정미율의 술을 만들겠다"라고 결심한 게 첫번째 계기였다.

드디어 기계에 현미를 넣고 정미가 시작되었다. 사장은 그것을 확인한 후 출장을 떠났는데 누군가가 전해준 소식이 있었다. 나다(예로부터 고급 사케가 생산되는 지역)에 있는 대형업체에서 24%까지 정미한 준마이다이긴죠를 시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장은 밤새 고민한 후 다음날 신간센을 타고가면서 차내 전화로 정미담당자에게 2%를 더 낮추라고 요청하였다. 이미 6일 밤낮 동안에 걸쳐 25%까지 정미를 마친 상태라 정미 담당자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사장은 어떻게든 2%를 더 깎아달라고 거듭 설득한 결과 극한의 정미율에 도달하게 되었다. 마지막 2%를 깎는 데만 꼬박 24시간이 더 걸렸다. 정미에 소요된 시간만 해도 7일×24시간, 168시간이나 된다. 이 정미시간은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정미율 23% 술은 그렇게 극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런 집념 때문인지 이 술을 제작한 아사히주조(旭酒造)는 일본에서도 완고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정미율 50% 이상인 준마이다이긴죠급만 출하. 평균 정미율 41%대. 정말이지 고집 있는 주조회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 주조사의 모토는 '취하는 술이 아니라 맛있는 술을 만들자'이다. 진짜 맛있는 술은 누가 마셔도 맛있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오가노주방, 국내 대표급 사케전문점이다. 양재천변에 있다
 오가노주방, 국내 대표급 사케전문점이다. 양재천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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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의 일이다. 양재천변에 자리 잡은 일식다이닝바 오가노주방. 국내 대표급 사케 전문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풍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전반적으로 카페에 가까운 외관에 목재가 주를 이룬 인테리어는 한옥의 느낌이고, 동서양을 절묘하게 조합해놓은 신개념적인 분위기도 난다.

이곳에서 국내 사케 문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2인과, <월간외식경영> 관계자, 그리고 나까지 4인이 뭉쳤다. 모종의 프로젝트를 협의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그것보다는 진귀한 사케에 미각과 영혼이 홀린 밤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날 내가 빠져든 사케들 면면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정미율(23%)에 빛나는 '닷사이 미가끼 니와리삼부', 닷사이 시리즈중에서 가장 스탠다드한 '닷사이준마이다이긴죠'. 디저트 술로 서양에서 먼저 각광받은 '하나하토 기죠슈 8넹 고슈', 스파클링사케로서 상큼함이 돋보이는 '고쿄네네', 깨끗하고 깔끔하게 다가왔던 '다이긴죠 죠젠 미즈노고토시'로 이어지는 사케의 향연. 여기에 오가노주방의 특선요리가 더해져 황홀하기만 했다. 마치 꿈속을 거닐 듯, 현실의 시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4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당시 나는 일본에서 우리가 쉽게 접하기 힘든 사케들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돌아온 터라, 당분간은 국내에서 그런 감흥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나의 예상은 오가노주방에서 완벽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 중심엔 단연 닷사이 미가끼 니와리삼부가 있었다.

■ 닷사이(獺祭) 명명의 유래

수달이 제사를 올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출처/ 아사히주조주식회사 홈페이지)
 수달이 제사를 올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출처/ 아사히주조주식회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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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명인 닷사이(獺祭…だっさい)의 뜻은 우리말로 '수달의제사'이다.  '수달은 잡은 물고기를 물가에 일렬로 늘어놓은 습성이 있는데, 마치 수달이 제사라도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수달의 제사라는 말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당나라 만당(836~907) 시기의 시인 이상은(李商隠)은 문장을 짓기 위하여 많은 서적을 주위에 두고 참조하였는데, 스스로 "수달이 제를 올리는 물고기"(獺祭魚)"라고 표현하였다.

또 메이지시대 일본 문학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하는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도 스스로를 달제서점주인(獺祭書屋主人)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그 역시 이상은처럼 시문을 만들 때, 여러 종의 참고자료를 펼쳐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문장의 대가들이라고 해서 쓱쓱 써내려가지 않고 자료를 뒤적여가면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아사히주조도 그들처럼 현실에 안주하는 일 없이, 변혁과 혁신을 통해 보다 뛰어난 술을 만들고자 한다. 제조사가 술명을 '獺祭'라고 명명한 것은 바로 그런 각오에서 유래하였다. 한편으론 정성으로 제를 올리듯, 술 또한 정성을 다해서 빚겠다는 다짐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 닷사이, 왜 명작인가?


닷사이 미가끼 니와리삼부(獺祭 磨き二割三分). 제조지역: 야마구치(山口)

제조사: 아사히주조(旭酒造). 사용된 쌀: 야마다니시키(山田錦). 도수: 16도이상~ 17도이하. 정미비율: 23%. 보관방법: 상온. 수입사:니혼슈코리아
 닷사이 미가끼 니와리삼부(獺祭 磨き二割三分). 제조지역: 야마구치(山口) 제조사: 아사히주조(旭酒造). 사용된 쌀: 야마다니시키(山田錦). 도수: 16도이상~ 17도이하. 정미비율: 23%. 보관방법: 상온. 수입사:니혼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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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사이 미가끼 니와리삼부에 대한 얘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만 같다. 주조호적미의 최고봉이자 술쌀의 임금님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품종. 야마다니시키(山田錦)이다.(물론 이보다 더 최고품종이 있지만 거의 천연기념물일 정도로 극 소량만 생산되기에 거의 알려지진 않았다)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야마다니시키를 으뜸으로 친다. 닷사이에는 100% 야마다니시키만 사용된다. 또한 술 제조에서 라벨부착까지 모든 공정을 수작업에만 의존한다. 이처럼 술 한 병 한 병에 공력을 담아 빚어낸 게 닷사이이다. 이 술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 건 대량생산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닷사이 제조 과정에서 23% 정미만큼이나 아주 중요한 공정이 또 있다. 바로 원심 분리 기법이다. 보통 술 짜기 부대 등을 이용한 기계적 압력(압착식)이 아니라, 원심 분리 기술을 사용하여 거르지 않은 술에서 청주를 분리해내는 공정이다. 이는 최신설비에 의한 최신공법이지만 가장 섬세한 술을 담을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기법으로 술 부대에 거르지 않은 술을 담아 매달아 놓는 게 있다. 압력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한 방울씩 모아지는데 물방울 술이라는 뜻의 시즈쿠자케(しずく酒)라고 부른다. 무 가압 상태에서 술을 분리하기 때문에 순수한 긴조 향기와 섬세한 맛이 훼손되지 않고 멋지게 표현된다.

원심분리에 의해 걸러진 청주는 그 맛과 향이 섬세하기 그지없다
 원심분리에 의해 걸러진 청주는 그 맛과 향이 섬세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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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술은 품평회에 보내지고 나머지는 압착식에 의해 짜여진다. 그러니까 술 품평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고 해서, 그 술이 내가 마시는 술과 같은 종류라고 해도 맛까지 같지는 않다. 맛객은 일본에서 우연히 물방울 술을 맛볼 수가 있었다. 그때의 술맛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곤 한다. 이처럼 평가 위원회와 일반 소비자가 마시는 술의 차이, 이게 오늘날 사케 품평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하지만 닷사이는 원심분리를 이용하여 술을 분리하기 때문에, 신주감평위원회(新酒鑑評会)의 심사위원만 우대하진 않는다. 일반 소비자에게도 시즈쿠자케와 가장 흡사한 술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닷사이가 왜 일본에서 최고의 사케로 인정받고 있는 술인지 잘 알 수 있다.

일본의 한 탈렌트가 프로그램에서 닷사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을 하였다.

"이 술은 첫잔보다 두잔, 석잔 마실 때마다 점점 맛있음을 알게 된다."

첫맛보다 뒷맛이 더 좋다니. 문득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말했던 내용이 떠오른다. 내가 좋은 음식의 기준으로 삼는 게 바로 뒷맛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용이다.

기자: 당신이 생각하는 맛있는 음식은 뭔가.

맛객: 뒷맛이 좋은 음식이다. 맛을 음미하면서 씹으면 씹을수록 뒷맛이 살아나는 음식 말이다. 평양랭면이나 일본초밥 같은 경우가 그렇다. 향수를 마구 뿌린 사람에게는 역한 냄새가 나지만 은은하게 뿌린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두고두고 향이 기억되지 않나. 음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입안에 들어갔을 때 '아 어떤 맛이네'하고 바로 알 수 있다면 매력이 없을 것이다. 입에서 씹고 음미해서 퀴즈풀이 하는 것처럼 맛을 찾아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음식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이란 표면적인 맛있음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깊은 곳에서 여러 가지 표정을 보이는, 그런 깊숙한 맛이야말로 진정한 맛이다. 직접 맛을 본 바에 의하면 드라이함에 섬세함을 담고 있었다. 우아한 향, 기품 있는 감미, 깔끔한 첫맛에 길게 이어지는 여운은 천사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놓치기 싫은 순간이었다.

[닷사이 실적]
- 일본 온라인 판매 2년 반 동안 부동의 1위.
- 미식가 잡지「식락」의 다이긴죠 부문 랭킹 1위.
- 미국 와인 콘테스트 니혼슈 부문 종합1위. (플라티나메달 수상)
- JAL국내선 퍼스트 클래스에 납품되는 유일한 니혼슈.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참고한 사이트>
http://www.nihonshu.co.kr/
http://asahishuzo.ne.jp/
http://www.nishino-kinryo.co.jp/



태그:#청주, #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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