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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겪습니다. 무슨 일이냐고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이름이 박힌 책이 나왔답니다. 어떤 책이냐고요? 철거민의 삶을, 여러 지역 철거민들을 직접 만나 자세하고 절절하게 풀어쓴 <여기 사람이 있다>입니다. 책 부제인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에서 조금은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책에서 제가 한 일은 '구술 정리'입니다. 철거민 한 분을 만나 긴 시간 이야기를 듣고, 몇날 며칠 녹취한 거 풀어서 '책'에 어울리도록 다듬기, 제가 한 일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철거민이 들려준 '말'을 '글'로 옮겨 담은 것뿐이죠. 그런데도 책 표지에 떡하니 제 이름이 나와 버렸네요, 정말 부끄럽게도. 

 

책 작업을 하면서 많이 배웠고, 많이 아팠고, 많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지요. 겁도 없이 해보겠노라고 말을 해놓고는 걱정도 태산이었습니다. 걱정을 달래기 위해 이 책 저 책 들춰보고, 열심히 인터넷으로 찾아보면서도 내가 이 일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혼자 의심도 많이 했답니다. 그 시간들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정말로' 책이 나와 버렸어요.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어렵고 때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시작하길 잘한 것 같아요. 이 작업을 하면서 철거민들 삶에 한 걸음 한 걸음 마음을 담아 다가설 수 있었거든요.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그저 나와 너와 우리들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거든요. 그걸 깨닫는 시간들이 쉽진 않았지만, 깨닫기 전보다는 조금이라도 깨달은 지금이 저는 훨씬 마음에 든답니다.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으로 지금도 많은 철거민들이 감옥에 계십니다.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잦아들면서 소리 없이 잡혀 들어간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 지금, 이 책이 나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잠자고 있던 우리들 마음을 이 책이 조금이라도 두드려 줄 수 있을 테니까요.

 

 

모두 열다섯 명이 구술 정리를 함께 했습니다. 열다섯 명 모두 인세는커녕 작업비 한 푼 받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금과 인세를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투쟁 기금으로 쓰자고 처음부터 마음을 모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책 저작권은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http://mbout.jinbo.net)'에 있습니다.  

 

몇 달 동안 군소리 없이, 아니 누구보다 몸과 마음을 다해 이 작업을 함께 한 여러 필자들. 그분들 모두의 열정과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을 아파하는 많은 분들의 도움, 무엇보다 아픈 이야기 스스럼없이 꺼내주신 철거민 분들이 있었기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한 시간들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책 나온 뒤에 저와 인터뷰를 해주셨던 분께 이 책을 전해 드렸습니다. 그 분을 처음 만나러 갈 때만해도, 아니 처음 전화드릴 때만해도 오로지 '철거민'이라는 것 때문에 겁먹고, 망설이고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화 드리는 것도 무척 편안하고, 만나러 가는 마음도 평화롭기만 했어요. 그 '마음'이야말로, 철거민들께 제 마음을 열게 된 것이야말로 이 책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인 것 같아요. 

 

4월 3일, 용산에 있는 까페 '레아'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 출판 기념회가 열렸습니다. 그 까페는 이번에 돌아가신 고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곳이었죠. 때마침 까페 안에서는 여러 예술인들이 힘을 모아 전시장을 마련했더군요. 공간 자체가 주는 슬픔과 공간을 채워준 예술가들의 마음과 정성이 만나, 까페 '레아'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예술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출판기념회 덕에 어느 때보다 가까이에서 용산 참사가 벌어진 건물 뒷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고 건물의 접근을 금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구술 정리를 막 마무리하던 2월 말 즈음, 경찰이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경찰은 죄가 없고, 철거민 20명은 죄를 물어 기소하겠다'는 내용으로.

 

'진실'이 가려진 저 '사고 건물', 언젠간 헐리겠지요. 저 건물이 헐릴 때 이 사건의 당사자인  유가족들의 억울함과, 이 사건을 몸과 마음으로 함께 겪은 철거민들의 아픔과, 이 사건을 어수룩하게나마 만난 제 작은 슬픔이 함께 철거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철거민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세상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까지도 함께…. 그 아픔들이 철거되는 과정에 이 책이 작은 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책의 '저자' 자리에 이름을 남겨 본 제 가장 큰 소망입니다.  

 

"철거민이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저와 만난 철거민이 들려주신 저 말씀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전 국민 가운데 7%밖에 안 되는 부동산 부자가 지배하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예비 철거민들께. 


태그:#철거민,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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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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