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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첫 만남

 

마음 시린 곳에서 만나

가슴에 서린 고독을 위로하려니

당신 거기에

나 여기에

글들이 소리 지르며 우릴 헤집고 다닐 때

영근 사랑으로 여울지다

 

꿈이라고 하고픈

지울 수 있는 물감으로 그린 풍경화였으면

그것이 소설이 되었으리

그러나 분명 지울 수 없는 시가 되어

나도 여기에

당신도 여기에

조촐한 만남으로 익었다.

 

너무도 보오얀 얼굴

너무도 사랑 어린 눈빛

그 속에 더 높은 분 담은 이야기들

우린 그것을 첫 만남이라 부를 것이다.

 

이제 등 뒤에 대고

추억 하나 쓰며

내내 등 뒤에 대고

사랑이었노라 말하리라.

 

 

온 대지 위로 햇살이 재잘거린다. 일부 햇살들은 가로수 나뭇가지를 비집고 자신들의 얼굴로 포도를 덥히려고 경쟁을 한다. 그 햇살들 사이로 수줍은 노랑 민들레가 아주 작은 얼굴을 길가로 내밀고 밤새 이슬에 젖은 얼굴을 햇살에 말리고 있다. 민들레가 이렇게 예쁜 꽃인지 처음 알았다. 길가에 핀 꽃이라 꽃잎이 제대로 달려 있는 게 거의 없다.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발에 밟혔을 꽃잎, 그러나 모질게도 저리 살아 햇살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참으로 생명력이란 질기기도 하다.

 

질긴 게 민들레뿐이랴. 인생은 어떻고? 나의 삶이야말로 질기지 않으면 배길 수 없는 터널 속으로 들어왔다 싶다. 민들레 꽃잎 하나가 내게 인생을 가르쳐 준다. 아무나 밟아라, 구두로 밟고, 운동화로 밟아라. 하이힐이라도 좋다. 향기는 못 풍겨도 죽지는 않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차들이 출근길을 재촉하며 내뿜는 매연도 상큼한 향기를 뿜는 것 같다. 마치 담배를 피울 줄 모르는 내가 다른 이의 담배 연기를 맡았을 때 평소와는 달리 그 냄새도 맡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때와 같다. 아마 이 모두 마음이 부리는 신기루일 것이다. 뭐든지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런데 요 며칠 동안 왜 그리도 그놈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것일까.

 

내 마음 나도 몰라

 

다른 때와는 달리 매연이 역겹지 않은 오늘, 바로 나의 첫 출근 날이다. 주유소로의 첫 출근.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다. 깊은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가 싸질러놓은 심산유곡의 개구리 알을 맨손으로 만졌을 때의 기분을 아는가. 말랑거리는 감촉이 좋다. 그러나 이내 그 말랑거림 때문에 토악질을 할 정도로 속이 메스꺼워진다. 어렸을 때 산 깊은 개울가에서 그 짓을 했었는데, 바로 그런 기분이랄까.

 

좋다. 무언가 일하며 지난 아픔을 앗을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분명히 따지고 보면 그렇게 썩 좋은 마음은 아니다. 좋기는 좋은데 안 좋은 것,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바로 그런 기분이다. 운전을 하고 가다 정지신호가 가로막으면 선다. 마침 그때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을만한 여유를 정지신호가 주었으니 안전운전을 위하여 좋다. 그러나 아주 바쁜 일이 있다. 그러니 정지신호가 달갑지 않다. 뭐 그런 상황이랄까.

 

홀가분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내 가족은, 내 목사직은…….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잠시만이라도. 그러나 여전히 목사로서의 사명에 대한 숙제는 남은 것이니, 샅샅이 보면 홀가분함도 아니다. 잠시와 조금 긴 시간을 그냥 무턱대고 바꿀 수만은 없는 삶이 나의 목회의 삶이고 보면, 그리 홀가분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무겁다. 목회밖에 모르는 내가 다른 것을 한다는 것이 목사 안수를 주신 하나님의 뜻일까. 성속(聖俗)에 선을 긋는 것은 평소에도 나의 신학이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목사로 세우시지 않았던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어디인가.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교회가 아니고 주유소다. 교회가 아니고 주유소.

 

쉬파리 한 마리가 휘- 하고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제 나의 인생은 파리가 꾀는 인생이란 말인가. 나도 모르게 손을 휘저어 그놈의 파리를 잡으려고 시도한다. 등굣길의 학생들이 뭐하는 짓인지 궁금하다는 듯 따끔한 시선을 준다. '이상한 아저씨 다 봐!' 하는 흘깃한 눈길들이 못내 힘겹다. 나도 모르게 휘두른 손이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얼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을 호주머니 속으로 숨긴다.

 

주유원 옷을 입다

 

장미의 계절답게 아파트 울타리에 매달려 몸을 비틀고 올라온 장미가지가 끝마다 빨강 꽃잎을 주렁주렁 달고 뽐내고 있다. 그 선명함이 볼수록 야물다. 어쨌든 새로운 각오를 하고 첫 출근을 하는 길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새뜻하다. 지나온 50평생을 이리 아리땁게 사물을 보고 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평소에는 차를 타고 휙 지나는 길이라 이리 아름다운지 몰랐다. 학교를 가는 아이들도, 직장으로 향하는 어른들도 그 발걸음이 재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횡단보도 앞에 선다. 다른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빨간불에서 파란불이 켜지는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몰랐다. 파란 불을 기다리는 그 5분이 50분처럼 기다마하다. 시간은 시간을 아는 자만이 그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법이다. 5분이 50분이 되는 것, 500분이 1분이 되는 것, 모두 마음의 장난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미 시간을 조절하는 자가 된 것이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며 버거운 짐을 주유소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힘에 부칠 것이 분명하더라도.

 

모범운전기사의 날카로운 호각소리와 함께 열린 보도를 황급히 걸어 건너니 거기가 바로 내 일터다. 'S오일 H주유소' 간판도 선명하다. 이제 여기서 내 인생을 써야 한다. 당당하게 굴하지 않고……. 낮선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기는 어떤 탐험가처럼, 그렇게 주유소에 당도했다. 주유원 복장을 한 두 명의 선배 주유원이 살갑게 맞아 주었다. 사장도 나와 서로 인사를 시켰다. 인사를 나누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작업복 갈아입기다.

 

주유원 복장을 한 한 명의 선배가 새 주유원 옷을 내준다. 노란색과 파랑색이 조화를 이루며 맞물려 있는 옷을. 입어보니 조금 크다. 하는 수 없이 떠난 주유원이 입던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떠난 사람이 있어 오는 사람이 있는 법. 직전에 섬기던 교회도 그랬다. 내가 떠났고 다른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던 목사가 부임했다 한다. 지금 나는 그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누구나 남의 옷을 입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이는 그 옷이 맞갖다고 하며 행복해 하고, 어떤 이는 째지 않다고 불행해 하고, 그것만 다를 뿐이다. 우리가 살아 온 길에는 새로움이란 없다. 누가 그랬던가. '지금 내가 걷는 길은 앞서 그 누가 걸어간 길'이라고. 맞다. 나는 그 누가 걸어간 길, 바로 그 길 위에 서 있다. 이젠 그 길을 가야 한다. 힘차게, 잰 걸음으로. 목사로 걸어 온 25년을 잠시 지그리고 이제는 주유원으로 누가 간 그 길을 가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그러나 짧은 여행이길 소원하면서…….

 

"이봐, 동상! ……. 동상이라고 해도 되겄지. 잉??"

"……."

 

허락도 안 했는데 계속 나이 지긋한 동료는 말한다.

 

"일단 오늘은 이 옷을 입고 일해. 일 다 마치고 저녁에 퇴근하기 전 세탁기에 넣고 가면 내가 빨아서 널어놓을게. 아침이면 다 마를 거야."

"예, 그렇게 하지요."

 

얼굴 생김새와는 달리 참 서분서분한 분이구나, 살가움이 많은 분이구나, 생각했다.(계속)

덧붙이는 글 | *힘든 때입니다. 이 글은 제가 고통 중에 있을 때의 경험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떠나 일용직(비정규직) 근로자인 주유원으로 일하면서 얻은 '고난 속의 교훈'이랄까요? 이 글이 현재 힘든 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유원 이야기#주유소#주유원 일기#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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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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