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째 이어 내려오는 전통인지 우리도 잘 몰라요. 그저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또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것 밖에는..."
화순군 동복면 가수리1구 장귀성(67) 이장의 말이다. '하가마을'로 불리는 가수리 1구마을에서는 매년 4월초 마을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가 열린다. 마을 젊은이들이 농번기에 앞서 65세이상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즐거움을 드리는 자리다.
언제 처음 시작됐는지는 마을 주민 누구도 잘 모르지만 매년 봄에 열리는 경로잔치는 마을 주민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간의 화목을 다지는 마을에서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다. 40여 호 6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하가마을은 여느 농촌마을이 그렇듯이 전체 주민 중 23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지난 3일 하수마을 회관에는 임병배 동복면장과 박규현 동복면번영회장, 장귀성 하가마을이장, 백매남 부녀회장 등 마을 주민 모두가 경로잔치를 위해 모였다. 마을에서는 어르신들이 겨울 추위보다 매섭다는 꽃샘추위를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내의 등의 선물도 전달했다.
어르신들을 대접할 음식장만은 마을 부녀회원들이 도맡았다. 60여 명의 주민 중 30여 명이 부녀회원들인데다 마을잔치 등과 같은 행사에는 여인네들의 손길이 가장 큰 일손이기 때문이다.
백매남 회장을 비롯한 부녀회원들은 시장 등에서 재료를 구입한 후 3일 이른 새벽부터 마을회관에 모여 음식을 장만했다. 새벽부터 장작불에 삶아낸 돼지고기며 손맛 듬뿍 담아 버무린 김치와 각종 나물, 지짐이 등이 한상 가득 어르신들을 위해 차려지고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부녀회원들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구 등을 동원, 노래와 춤을 곁들여 어르신들에게 즐거움도 선사했다.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에서 준비한 날이니 만큼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떠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마음에서다.
어르신들을 위해 '남행열차'와 '비내리는 호남선'을 목청껏 부르며 연신 몸을 흔들어 대며 흥을 돋우는 회원들의 몸짓에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부녀회원들의 정성에 마을 어르신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지 마을노인회에서는 부녀회원들에게 속옷 등 작은 선물을 준비, 회원들의 손에 쥐어줬다.
장귀성 하가마을 이장은 "해마다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에서 잔치를 열고 있다"며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어르신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젊은이들의 수는 줄고 어르신들의 수는 늘고 있다.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해야 하는 경로잔치 준비가 벅찰 수 밖에...
하지만 장귀성 이장은 "마을주민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져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지만 하가마을의 자랑인 마을경로잔치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임병배 동복면장도 "하가마을 같이 매년 꾸준하게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가 열리는 마을는 몇 안된다"며 "마을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대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다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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