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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민주당 지도부가 쏴 올린 '정동영 공천배제' 로켓이 당을 대혼란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민주당 최고위는 이날 오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시점과 방식으로 정 고문에 대한 공천불가 결정을 발표했다. 그 과정도 신속하고 단호했다. 그만큼 정면돌파하겠다는 당 지도부의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작용-반작용'의 법칙 그대로 거센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당장 허를 찔린 정동영계와 비주류, 중재에 나섰던 4선 이상 중진의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 고문 지지자들도 들고 일어섰다.

 

지난 3일 이후 정 고문과 정세균 대표 사이를 오가며 '선사과, 후공천' 중재안을 제시했던 김영진·문희상·천정배 의원 등 중진의원 5명은 이날 오후 성명서를 통해 깊은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들은 '민주당 중진 모임' 이름으로 낸 성명서에서 "당의 파국을 막기 위해 강력하게 요청했는데도 민주당 최고위가 애당심에서 비롯된 중진들의 간곡한 요청을 끝내 거부하고, 정동영 공천 배제를 강행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 모임을 주도한 김영진(광주 서구을) 의원은 "(정 고문의 무소속 출마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진단했다"며 "(최고위 결정에) 망연자실할 뿐"이라고 밝혔다.

 

"해당 행위", "패륜정당"... 정세균 지도부에 쏟아지는 비난 

 

"정동영을 배제하면 당이 깨진다"는 현실론을 내세우며 지도부를 압박했던 비주류의 반발은 더 거셌다. 이종걸, 문학진, 장세환, 최규식 의원 등 15명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당 지도부 스스로 당의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 지도부가 앞장서 '해당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이들은 "정 고문의 공천배제는 원칙 없고 금도를 벗어난 대단히 잘못된 결정"이라며 "정 대표와 최고위원들만의 독단"이라고 날을 세웠다. "치밀하게 독재 구축을 시도하는 이명박 정권에게 반사이익을 주는 해당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사실상 당 지도부가 '한나라당 2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최고위로서는 큰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비주류의 격렬한 반발에는 이유가 있다. 당 지도부가 '정동영 공천배제→내분→자멸'이라는 시나리오를 뻔히 보고도 그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종걸 의원 등은 "당 지도부가 4.29 재보선을 '민주당 대 정동영' 대결로 만들었다"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동영 지지자들 역시 극도로 흥분하고 있다.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한줌도 안 되는 당권 사수에 집착한 어이없는 결정"이라고 당 지도부를 몰아세웠다. "패륜정당"이라는 독설도 서슴치 않았다. '정통들'은 또 "당권욕에 눈이 먼 정세균 지도부에 남은 것은 국민의 심판뿐"이라며 "우리는 정 고문을 따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 고문이 무소속 출마할 경우 집단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뜻이다.

 

당 지도부 결정에 반발하는 비주류 소속 의원들은 일단 의원총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의견수렴 없는 최고위 결정은 무효"라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당 지도부가 공천을 놓고 의원총회를 소집하는 것은 당헌·당규상 맞지 않아 수용할 수 없다는 자세여서 마찰이 일고 있다.

 

 

정동영 "무소의 뿔처럼..." - 정세균 "나는 마음을 비웠다"

 

'중앙당'이 이처럼 내분에 휩싸이는 동안 정 고문은 말을 아끼며 '나만의 길'을 가고 있다. 정 고문은 이날 오전 최고위가 '공천 배제' 결정을 내리기 20분 전에 측근을 통해 전해들었다고 한다. 민주당 고위관계자는 "따로 정 고문과 연락할 방법이 없어 최규식 의원에게 전화해 최고위 결정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말을 않고 있지만, 정 고문도 편한 마음은 아니다. 최고위 결정을 전해들은 뒤 그는 측근에게 "정동영을 죽여야 민주당이 사는 거냐, 앞날이 캄캄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불쾌하고 답답한 심정을 밝힌 것. 정 고문은 또 "지금 이 순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와 닿는다"고도 말했다. 이미 '무소속 출마'로 가닥을 잡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답답하기는 정세균 대표도 마찬가지다. 정 대표는 이날 따로 기자들을 만나 "내 인생에서 이렇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기자들도) 좌로도 못 가고, 우로도 못 가는 (민주당) 신세를 불쌍하게 생각했을 텐데, 정말 괴로운 결정을 했다"고도 말했다.

 

정 고문에 대해서는 "당의 큰 정치인인데, 앞으로 잘 예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최고위 결정으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 셈이다.

 

당이 분열될 것을 알면서도 그는 왜 '정동영 공천 배제'를 결정했을까. 정 대표는 기자들에게 "어느 전문가의 충고"를 전했다. 이 전문가는 "정동영을 공천하면 정세균도 죽고 민주당도 희망이 없지만, 공천을 하지 않으면 정세균은 죽어도 민주당은 산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 대표는 "나는 마음을 비웠다"고 덧붙였다. 

 

이미 '정동영 공천 배제' 로켓의 발사 버튼을 눌러버린 정 대표에게 남은 몫은 대혼란을 수습하는 일이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다. 정 대표로서도 '시간'에 기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오는 8일 오후 전략공천 지역 두 곳(전주 덕진과 인천 부평을) 후보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9일 오전 당무위원회에서 승인을 받으면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따라서 민주당과 정 고문에게는 하루(7일)의 시간이 남아 있다. 민주당은 정 고문이 하루 사이에 결단을 내려 최고위 결정을 수용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내일(7일)까지 정 고문이 당의 결정에 따라주기를 바란다. 꼭 그렇게 됐으면 한다. 최종 판단할 때까지 서로 시간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 오늘 공천배제 방침을 전격 발표하게 됐다."

 

6일 오후 민주당 고위당직자가 내놓은 말이다. 정 고문이 결심할 하루 동안, 민주당은 '내분이냐, 수습이냐'는 천당과 지옥을 오갈 것으로 보인다.


태그:#민주당, #정동영, #4.29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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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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