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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진보싱크탱크인 코리아연구원의 현안진단 140호를 코리아연구원과 동시에 게재합니다. 이 글의 원문 및 관련 자료는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Ⅳ. 오바마에 강경한 북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군사용으로 이용될 경우 북한의 미사일이 알라스카나 하와이까지 사정거리로 둘 수 있게 된다. 판촉용이 강조될 경우 미사일 기술이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로 이전될 수 있다. 즉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는 그 자체가 국제법적으로 불법이 아니더라도 새로 출범한 오바마 정부와 처음부터 긴장을 유발시키게 된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미국 정보기관에 포착된 것이 1월 23일이니까 북한은 그 이전부터 인공위성 발사를 준비해온 셈이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인공위성 발사를 계획했고, 인공위성 발사 후에는 군사용 전환과 수출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오바마 정부와 처음부터 대립각을 너무 크게 세우는 모험이 될 수 있다. 자칫하면 판이 깨질 수도 있는데 북한은 모험을 강행하였다.

 

 지난 5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광명성 2호'를 탑재한 장거리 로켓이 발사되는 장면이 7일 오후 조성중앙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5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광명성 2호'를 탑재한 장거리 로켓이 발사되는 장면이 7일 오후 조성중앙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 조선중앙방송 화면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북한과 직접대화를 이야기했고, 인수위 시절에는 오바마의 측근들로부터 '취임 후 100일 이내에 북한에 특사 파견'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이런 점들은 북한으로 하여금 오바마 정부에 대해 기대를 품게 해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화될 때까지 북한이 기다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비핵·개방·3000'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북한은 당선 후 100여 일 동안 관망하였다. 또 2001년 부시정부가 출범하였을 때, 북한은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임 클린턴 정부 말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를 관망하지도 않고, 전임 부시 정부의 말기에서 시작할 것을 주문하지도 않았다. 오바마 정부 출발을 기다리지도 않고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북한이 오바마 취임 이전부터 계획한 인공위성 발사는 오바마의 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오바마 정부 출범 전인 올해 1월 13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와 주한미군의 핵보유에 대한 검증,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요구하였다. 이 담화에서 북한은 '선 비핵화, 후 북미 관계개선'이 아니라 '선 미국의 핵위협 제거, 후 비핵화'라는 순서를 제기했다.

 

북한의 비핵화는 미국의 대북핵위협이 제거된 이후 마지막 단계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1월 17일 외무성 대변인은 핵문제의 본질에 대해 '미국핵무기 대 북한핵무기'라고 주장하였다. 미국을 향해 북미 핵군축협상을 직접적으로 제기했던 것이다.

 

오바마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한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관심 끌기 작전이나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물망초 전략도 아니다. 관심 끌기 작전이나 물망초 전략이라면 이미 북한은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위성발사 발표 이후 스티븐 보즈워스 대표가 3월 3일부터 10일까지 한중일 3국을 방문하였다. 미국은 보즈워스 대표의 아시아 방문을 앞두고 뉴욕채널을 통해서 북측에 "핵문제 타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오바마 미 대통령의 메시지를 준비하였다"면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중지하는 것을 조건으로 보즈워스의 북한 방문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전했다. (<뉴시스> 2009. 3. 14)

 

보즈워스 대표는 한중일 방문기간 동안 북측의 답변을 기다렸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언론에 보즈워스 대표가 오바마 친서를 가지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북한은 보즈워스 대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를 노출시킨 결과로서 미국 대통령의 관심 끌기에 성공했지만 친서를 소지한 보즈워스를 초대하지 않았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지'라는 전제조건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한은 연초부터 '미국의 선 핵위협 제거'를 내세우며 대미 강경발언을 시작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소지한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을 거부하였으며, 인공위성발사를 강행했다. 이러한 북한의 행보는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미국과 담판을 짓겠다는 노림수이지, 미국의 정책우선순위에서 북한 문제를 앞 순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관심 끌기로 보이지는 않는다.

 

Ⅴ. 오바마가 대포동 2호 미사일이라고 언급한 이유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자료 사진).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자료 사진). ⓒ 권우성

북한의 인공위성은 발사 후 궤도 진입에 실패했고, 결국 남은 것은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기 이전까지 미국 정부는 각종 정보를 통해 이 추진체가 인공위성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인공위성 발사가 실패하자 미국의 조야에서 '인공위성'이라는 용어가 사라졌다.

 

북한의 위성발사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체코 방문 중 발표한 성명에서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는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라고 말하였다. 북부사령부(USNORTHCOM)도 북한의 발사체를 '대포동 2호 미사일'이라고 공식 발표했고, 존 케리 상원외교위원장도 '대포동 미사일'이라고 하였다. 주요 언론들도 인공위성이라는 표현 대신 장거리 로켓이나 미사일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동안 미사일 발사로 규정하다가 북한의 발사 이후 '인공위성 발사를 시도'한 것이라고 슬쩍 태도를 바꾸며 미국과 보조를 맞추려고 한 한국정부를 머쓱하게 만드는 표현들이다.

 

한국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이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로켓 탑재물의 성격보다는 운반수단에 주목한 것이라고 한다. 군사무기를 지칭하는 의미가 아닌 '대포동 2호 운반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공위성이 실패한 마당에 미사일 사거리만 위협요소로 남았으니까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은 '제작·조립·위성탑재 → 발사 → 다단로켓 분리 → 대기권 이탈 → 대기권 재진입 → 성층권 공기저항 통과 → 목표지점으로 유도'의 경로를 거친다. 이 경로에서 미사일과 인공위성은 제작부터 대기권 이탈까지의 과정이 동일하다. 인공위성은 대기권을 이탈한 후 미사일과 다른 경로로 움직인다. 미사일이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반면, 인공위성은 대기권으로 다시 들어오지 않고 지구궤도로 진입해 미사일과 차별성을 가지고 인공위성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북한의 인공위성은 대기권 이탈 후 지구궤도로 진입하지 못했다.

 

미국으로선 다단로켓 분리까지 성공하고 그 사거리가 대폭 연장된 로켓에서, 실패한 위성이라는 측면보다는 미사일 위협 증대라는 점이 훨씬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따라서 일제히 미사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미사일과 인공위성의 이중성 때문에 정책도 복잡해지는 판에 미사일을 운반체인 로켓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해서 혼선을 부채질할 필요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포동 미사일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북한을 비판하고 있지만 "6자회담을 통한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는 방침도 함께 밝히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강한 어조로 북한을 비판했지만, 대화의 문 또한 열려 있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미사일 발사 이후 냉각기에 각자 다른 길을 가다가 다시 대화를 시작할 가능성은 분명히 높아 보인다.

 

Ⅵ. 해결전망

 

북핵문제가 발생한 이후 20여 년 동안 북한은 NPT 탈퇴(1993. 4. 13), 광명성 1호 발사 (1998. 8. 31), 핵실험 (2006. 10. 9) 등 3차례의 위기고조 조치를 취하였다. 이번 은하 2호 발사(2009. 4. 5)가 네 번째이다. 지난 세 차례의 위기고조 조치는 발생요인과 해결방안이 모두 비슷하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의견 대립이 생길 경우 상황 돌파를 위해 북한이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하였다. 해결방안으로서 NPT 탈퇴는 1994년 제네바 합의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광명성 1호 발사 이후 페리 방북, 미사일 회담, 조명록 방미, 올브라이트 방북, 북미공동선언 발표 등으로 위기를 완화시켰다. 2006년 핵실험 이후에는 북미직접대화를 시작, 이후 4개월 만에 2·13합의로 이어졌다. 이 사례들은 앞으로 냉각기를 거친 이후 어떻게 북미관계가 재정립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사례는 북미 직접대화를 시작하여 합의문 채택으로 종결되었다. 앞으로도 북미직접대화와 북핵문제 해결방향을 제시하는 합의문 채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번 인공위성 발사의 경우에는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 지난 3번의 사례와 달리 북한이 미국의 핵위협을 비롯한 군사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오바마 임기에 핵문제 해결을 매개로 북미군사문제를 타결하는 구도를 그리고 있다.

 

지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핵 없는 세계를 위해 미국과 러시아가 핵군축을 선도해 이란, 북한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솔선수범론'에 입각한 모범생의 모습이다. 이런 미국의 눈에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미국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대화를 재개한다는 점에서 북미 사이에 공감대가 있지만 북한과 미국은 지금 눈높이가 서로 다르다. 북미 고위급 접촉을 통해서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냉각기는 장기간 유지되어 대화의 동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대화를 진행하면서도 불신이 유지되는 이중상태를 해결하여야 한다. 예상되는 이중상태의 해결을 위한 방법은 '핑퐁외교'와 같은 북미 신뢰 증진 프로그램이다.

덧붙이는 글 | 김창수 기자는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방문연구원입니다. 


#북한미사일#인공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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