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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E여대 국문학과에 다니는 J가 상담 메일을 하나 보내왔다. 구체적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존재론적 물음을 두고 홀로 사색하며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찔함과 아득함을 맛보게 된다"는 표현에서 고민의 깊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그 메일에는 서정주의 "문둥이"라는 시에 대한 자신의 평론이 하나 첨부되어 있었다. 그 시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아이를 잡아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우는" 문둥이의 존재성은 비극적 존재의 극치로 대표된다. 그 존재성 속에 자신을 투영하는 글을 쓴 그 학생은 도대체 어떤 정신적 고뇌를 경험하고 있었을까?

 

그 때 나는 인간성에 대한 희망적 이해의 관점으로 그 딜레마를 극복하기를 제안했다. 파스칼의 관점에서 존재에 대한 고민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의 존재가 위대하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욕망과 현상에만 몰두하는 현대 물질문명에서 비켜서서 자연과 호흡하고 존재의 본질에 충실하다 보면 우리의 페르소나를 벗겨내고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권면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조언이 그 학생의 고민을 즉각 해결해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J는 불안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고, 그 문제는 나 역시 극복해야만 했던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불안," 불안의 시대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괴로운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를 만난다거나, 새 일을 시작할 때 느껴지는 막연한 불안이 삶 전체로 확대되어 늘 두려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하면서 조급증 환자처럼 삶을 재촉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위스턴 휴 오든이 통찰한 것처럼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았던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불안은 과거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과거엔 자연재해라든가, 부족 간의 다툼과 같은 기본적인 차원에서 불안을 느꼈다. 그러나 이성의 시대를 지나면서 과학적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이 인류사회를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정신적 욕망으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더 유명해지고, 더 중요해지고, 더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에 따른 불안이 현대 인류를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현대적 불안현상을 "지위(status)로 인한 불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간 내면의 불안이 어느 하나의 특이한 현상만으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불안은 "특정한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는 두려운 감정"으로 정의되는 만큼, 불안을 유발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의 불안은 대개 욕망에서 기인하는 "지위"로 인한 불안이라는 것이 드 보통의 기본 가정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자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지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지 결정한다. 이 자리는 우리에게 전례 없는 중요성을 가지게 된 일용품, 즉 사랑을 얻는 열쇠이다."(23)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사랑과 관심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다. 사람들은 종종 높은 지위를 갖게 되면 자동적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욕망의 실현을 통해서 행복을 얻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위가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현대인의 생각은 결코 바른 것이 아니다. 지위만으로는 행복을 얻을 수도 없을뿐더러, 지위를 추구하는 삶에는 언제나 실패와 그에 따른 절망이 수반된다. 현대인들이 지위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불안>(Status Anxiety)에서 알랭 드 보통은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현대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불안의 원인들을 분석하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그러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독자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일상의 삶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불안에 대한 그의 해법 역시 일상적인 사회관계에서 모색되어진다. 상당히 철학적이고, 문학적이며, 사회학적인 자료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을 편안하게 이끄는 힘은 바로 이러한 일상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불안," 불안의 원인

 

드 보통에게 있어서 삶은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며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지위에 대한 욕구와 갈망은 필연적으로 불안의 요인이 된다. 그 불안은 삶의 자세를 바꾸지 않는 한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는 특징을 가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삶의 자세를 바꿀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불안의 원인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인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불안의 원인을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감, 능력주의, 불확실성 등 다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겪는 불안의 핵심 원인이 근대주의적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별히 지위에 대한 불안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영향을 지대하다. 부르주아 계층의 확산과 더불어 확립된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간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루소의 말대로 인간불평등은 사유재산 제도와 더불어 기원되었는데, 자본주의 사회 들어서서는 소유여부로 지위를 구분하는 새로운 계급사회가 형성됨에 따라 소유욕과 지위로 인한 불안이 하나의 사회적 특징이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지위를 얻지 못하면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인 부는 높은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물질적 소유에 집착하게 되고, 그렇게 하면 할수록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불안이 가중된다. 사실 부를 축척했다고 해서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높은 지위가 사랑을 가져다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이끌려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지위를 확보하지 않으면 무시를 당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싸여 불안해한다. 그러나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를 바라본다면 이런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이런 식으로 남들의 반응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시를 당하든 주목을 받든, 칭찬을 받든 조롱을 당하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21).

 

드 보통은 현대인들의 불안의 원인으로 속물근성을 제시하고 있다. 속물이란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외향적 조건만으로 계급을 나누고, 그렇게 해서 나눠진 권력 구조에 따라서 차별행위를 일삼는 속물근성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근거 없는 오만이나 혹은 열등감에 시달리게 한다. 이런 감정에 몰입하게 되면 삶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물질만능시대가 낳은 사회구조적인 요인으로서 지나친 기대감과 능력지상주의, 그리고 불확실성 등은 현대인의 불안의 핵심 요인들이다. 저자는 물질적 진보가 낳은 지나친 물질적 기대감이 불안을 야기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역사적 통찰력을 가지고 고대사회와 현대사회를 구분한다. 고대사회에서는 사회적 "불평등과 낮은 기대 수준이 정상적이고 지혜로운" 현상이었다(60).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그러한 운명적 불평등의 장벽은 제거되었다. 따라서 주체들의 기대감은 높아졌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핵심 이데올로기로 삼는 한 민주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높은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만한 평등한 사회가 실현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고 그로 인한 불평등이 발생해 상대적으로 기대감이 무너진다. 그 상황에서 불안은 심화되는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는 일견 평등해 보인다. 누구나 다 부지런하고 선한 노력을 기울이면 만족할만한 지위를 얻게 된다고 선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성장학 관련 이론이나 저술들은 공정한 경쟁과 능력주의를 부각시키지만 이런 이론들은 사회가 그렇게 공정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더욱이 부와 가난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하여 부의 성취를 미덕으로 부추기는 정신 자체도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다. 저자는 능력주의를 이렇게 비평한다. "훌륭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게으름뱅이가 실패할 조건은 이미 굳어져 있는 셈이고, 결국 자선, 복지, 재분배장치, 단순한 동정의 필요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117).

 

능력주의의 오류를 깨닫지 못하는 한 현대인들은 불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불안의 문제는 왜곡된 능력주의가 낳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드 보통은 불평등한 고대 사회에서조차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계급 사이에 상호 신뢰와 의지의 의식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상호 보완관계에 대한 의식이 평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히려 무너지고 있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능력주의와 지나친 기대감으로 인한 불안은 현대사회의 불확실성으로부터 기인한 측면이 많다. 저자는 "우리의 요구와 세상의 불확실한 조건 사이의 불균형은 지위에 대한 불안을 끈질기게 들쑤시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143). 얼핏 보면 사회 시스템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저자의 기본적인 관점도 그런 것이다. 그러나 깊이 성찰해 보면, 불확실성의 대상은 사회 시스템이기 이전에 인간 욕망의 불확실함이 아닐까? 우리가 바라는 바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사회 시스템이 불확실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행복을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제시하지만 정작 무엇이 행복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이렇게 불확실한 삶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살아가다 보니 불확실성의 시대를 낳게 된 것이다. 이로 보건데, 불안은 결국 인생의 목표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불안," 불안의 해법

 

현대인의 불안의 원인이 물질주의적 가치지향으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해법은 정신적 가치지향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드 보통이 불안의 해법으로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등을 제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이 불안의 해법인 이유는 그것이 가치관을 확립해 주는 중요한 정신활동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위가 장터의 감정이나 변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양심에 의지하여 안정을 얻을 수 있는 데, 이것은 이성 덕분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157). 철학은 이성의 사유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인 만큼 불안의 원인들을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 합리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통하여 "지적인 양심"을 계발시킨다면 불안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과 더불어 예술은 오래 전부터 인류사회에 만족감과 행복감을 가져다 준 중요한 요소이다. "예술은 삶의 비평"이고, "예술작품은 세상을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더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주기 때문에 예술은 현대인들의 불안을 극복해 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175). 물론 예술이나 문학에도 속물근성이 있고, 지위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 속에서 우리는 정신적 욕구가 물질적 욕구보다 더 고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예술을 통해 그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정치가 불안의 해법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정치를 이데올로기로 이해할 때 그 의미는 분명하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현대사회의 맘몬숭배(배금주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불안을 해결하는 해법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러스킨과 아널드와 칼라일의 통찰력을 빌려 배금주의 사회의 불행한 이면은 진단하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부의 가치를 제시해 준다. 예를 들어 "친절, 호기심, 감수성, 겸손, 경건, 지성" 등에 있어서 부유해진다면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이런 세계를 만드는 일(정치)이다.

 

기독교와 보헤미안주의는 상반된 가치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해 준다는 측면에서, 보헤미안은 내적 자유의 가치를 부각시켜준다는 측면에서 각각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해법이 된다고 저자는 제시했다.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엄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334). 기독교는 예수의 삶을 통하여 지위에 대한 불안도 불식시켜준다. 그가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든지 예수와 같이 존귀에 이를 수 있다는 신념은 현대인들을 지위의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이와 더불어 보헤미안의 신념은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가치를 소중하게 여김으로 욕망으로 점철된 현대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대안(대안적 삶의 방식)이 된다는 점에서 불안의 해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대안적인 삶을 위하여

 

에리히 프롬이 지적하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존재양식을 버리고 소유양식에 의거해 살아감으로써 진보가 아닌 퇴보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볼 때 안타깝다.

 

드 보통은 우리의 삶의 과정을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룰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268).

 

이 말을 곱씹을수록 씁쓸함이 깊게 배어난다. 불안의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니힐리즘에 빠져 염세적인 인간이 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의 말은 우리에게 세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지적해 준다. 첫째, 인간은 욕망적 존재라는 것이다. 욕망에 따라서 불안을 잉태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라는 뜻이다. 둘째, 우리의 처지를 시니컬하게 여기고 삶의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안을 극복하고 지위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아마도 우리의 본질적 욕구를 억압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로 우리의 지위와 상태에 대해서 바르게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권면은 아니다. 이 모든 사실들을 적시하면서 드 보통은 독자들에게 궁극적 권고를 들려준다. 그것은 바로 대안적인 삶을 모색해보라는 것이다. 대안적인 삶에도 충분히 삶의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다섯 가지의 해법 속에서 그 대안적인 삶을 찾아보라고 권장한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이 다섯 집단은 성공과 실패, 선과 악, 수치와 명예의 구분 자체는 유지하면서, 무엇이 각 항복에 속해야 하는지를 재규정하려 했다"(385).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고 새로운 가치를 통해 새 위계를 세우고 그에 합당한 지위를 향유하는 것이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일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드 보통이 예시한 인물들 중에서도 소크라테스로부터 헨리 데이빗 소로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가치와 위계 하에서 대안적인 삶을 찾았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지위로 인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았다. 오늘 우리의 삶의 불안하다면 우리도 그러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첨부파일
불안.jpg

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은행나무(2011)


#알랭드보통#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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