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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29일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잔뜩 흐렸고 저녁부터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 그날.

그날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 중 연세대 학생 노수석씨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쓰러져 국립의료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경찰은 당시 외부충격이 아닌 심장질환에 의해 급사했다고 했다.

96년만 해도 전경들은 우리 얼굴에다 최루액을 뿌렸다. 사진 출처 :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96년만 해도 전경들은 우리 얼굴에다 최루액을 뿌렸다. 사진 출처 :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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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집회에 나가지 못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1학년 남자 동기들과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다, 선배에게 호출을 받아 학생회관 맨 윗층 옥상 가건물 한편에 마련된 과방에서 다른 일을 해야 했다. 학기초 연이은 집회로 그날만은 쉬고 싶다던 남자 동기 몇몇은 집회참가자들이 정문을 빠져나갈 때 맞닥뜨려 딸려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집회에 나갔던 동기들은 정말 죽다 살아왔다고 다음날 증언했다. 그날 골목 어딘가서에 노수석씨기 사망한 것이다. 망할 등록금 좀 내려달라고 했을뿐인데 말이다.

그날 나뿐 아니라 내 동기, 선배들 중 누군가 죽었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무섭게 놀라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노는 1996년 연세대 사태까지 이어졌다.

화염 각목 휘두른 보수단체 회원은 냅두고 대학생만 잡나

13년이란 세월이 지난 뒤 4월 10일.

'반값등록금' 등록금 인하와 청년실업 해결을 요구하며 청운동사무소에서 기자회견 및 삭발을 진행하던 대학생 49명이 강제연행됐다. 삭발식이 신고되지 않았고 공간이 협소해 차도로 몇 발자국 나온 것을 도로점거 및 불법집회라는 게 이유였다.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둔갑시켜 등록금 문제해결을 요구한 대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한 경찰은, 그러나 얼마전 북한의 로켓발사에 흥분한 보수단체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불을지르고 경찰을 향해 "빨갱이"라 욕하고 화염 각목까지 휘둘렀을 때는 그들을 진압하거나 연행하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후배들이 경찰에 강제연행된 것처럼, 우리도 그랬다. 사진 출처 :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청와대에서 후배들이 경찰에 강제연행된 것처럼, 우리도 그랬다. 사진 출처 :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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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반값등록금'을 지키라고, 살인적인 등록금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가 자살하고 있다고, 말만 하지 말고 제발 뭔가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으라고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했을 뿐인데 말이다.

아무튼 등록금 지옥과 현 정권의 거짓과 폭압에 힘겹게 맞서는 후배들을 보면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다. 내가 기성세대와 선배들에게 욕했던 것처럼 후배들도 나를 욕하지나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왜 그때 그렇게 사람이 죽어갔는데 그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지금껏 왔는가란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답답할 따름이다.

그 무거운 질문에 혼자 모든 답을 해야하는 처지는 아니지만, 뜨겁게 분노할 줄 모르는 기성세대로 접어든 우리세대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지금이라도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변함없이 등록금 좀 내려달라고 외치고, 삭발까지 하다 경찰에 질질 끌려가는 꼴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 욕이라도 실컷하자!
막걸리에 취해 욕이라도 실컷!!!

경찰의 폭압속에서도 우리는 5.18학살자를 비호한 개영삼 퇴진을 외쳤다. 그 뜨거운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오른다.
 경찰의 폭압속에서도 우리는 5.18학살자를 비호한 개영삼 퇴진을 외쳤다. 그 뜨거운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오른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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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학등록금, #경찰, #보수단체, #화염각목,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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