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어느 순간인들
꽃이 아닌 적이 있으랴.
어리석도다
내 눈이여.
삶의 굽이굽이, 오지게
흐드러진 꽃들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지나쳤으니.
-송기원, <꽃이 필 때>전문
어느 곳이나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 꽃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는 요즘이다. 그런데 휴일에도 컴퓨터 앞에만 앉아 강의준비와 곧 있을 중간고사 문제를 정리하며 다듬느라 가족들의 존재조차 잠시 잊은 내게 "남들 다가는 꽃구경 한 번 가자"고 졸라대는 아내와 아들. 결국 등살에 못 이겨 따라나섰다.
지천이 다 꽃밭이었다. "봄꽃은 '어느 시러베 꽃'이라도 다 예쁘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좀체 붙잡을 수 없는,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은 심상(心狀)을 자극하는 계절임을 집에서 나오자마자 실감했다.
9할이 벚꽃인 환장할 봄, 그러나...
전주에서 한적한 국도를 따라 30여분 차로 달려 도착한 곳은 진안 마이산 남부 주차장 입구.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인 탓에 나무는 그리 많지 않은 곳이지만 공원 입구에서 5㎞에 걸쳐 식재된 벚꽃나무 길은 상춘객들로 크게 붐볐다. 그들은 아직 벚꽃이 만개하지 않았지만 향긋한 봄내음과 마이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살랑살랑 봄바람에 흠뻑 취해 있었다.
벚꽃에선 왠지 일본의 사쿠라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싫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어딜 가나 벚꽃축제가 한창이다. 제주에 이어 내륙지방에선 경남 진해, 합천에 이어 화개장터, 섬진강을 따라 전국에서 가장 긴 벚꽃길인 전주~군산간 번영로 43㎞까지 벚꽃 바통이 이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불과 한 달도 채 걸리지 않는다.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 입구 2㎞ 벚꽃길도, 정읍시 천변 벚꽃터널도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봄맞이 명소다. 벚꽃은 5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북상해 군산을 거쳐 서울까지 개화해 올라간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 막바지에 이보다 훨씬 남쪽인 진안의 벚꽃이 개화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이산 벚꽃은 전국에서 가장 늦게 핀다. 이달 20일 이후에야 마이산 입구에서부터 탑사까지 5㎞ 구간 벚꽃들이 장관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수령 20~30년의 마이산 벚꽃은 재래종 산벚꽃으로 깨끗하면서 환상적인 꽃색깔로 유명하다. 이밖에 인근 장수군 논개생가 가는 길, 완주 경천저수지와 구이 저수지, 모악산 입구, 김제 금산사 등 벚꽃이 아름다운 지역이 많아 4월은 어딜 가나 벚꽃 상춘인파로 넘쳐난다.
특히 마이산 벚꽃은 고원지대의 일교차가 큰 기후로 인해 벚꽃이 일시에 개화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 화려함은 전국 최고의 명성을 자랑한다. 관광업계에서도 4월 단체관광의 최고 적지로 마이산 벚꽃길을 꼽는다. 더욱이 벚꽃길 옆으로 펼쳐지는 인공호수인 탑영제는 암마이봉과 벚꽃의 영상을 고스란히 담아 여행객들에게 최고의 걷고 싶은 거리를 선사한다.
이처럼 4월 봄꽃축제의 9할을 벚꽃이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전국이 온통 벚꽃으로 물들어 있다. 묵흔(墨痕)처럼 암향(暗香)하는 꽃도 아니거늘 어찌 이처럼 사람들은 봄날 한 철 잠깐 피었다 지고 마는 벚꽃에만 취하려 드는지. 벚꽃을 보고나니 엉뚱한 심보가 발동하기 시작한다.
벚꽃만 꽃이더냐, 봄꽃은 어느 시러베 꽃이라도 다 예쁘다
지천에 널린 꽃이 어디 벚꽃뿐인가. 그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평소 보아두었던 복숭아꽃밭을 안내했다. 보따리 강사답게 늘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뚜벅 뚜벅 걸어서 학교로 가는 산길 중턱에 자리한 밭이다. 주변엔 아파트단지들이 물밀듯이 쳐들어오고 있지만 아직도 눈을 의심할 정도로 눈부신 복숭아꽃 대궐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 도심에서 멀지 않다.
형형색색 자태를 뽐내는 봄꽃들 중에는 벚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붉은 목젖을 드러낸 복숭아꽃들 앞에 아내와 아들은 연신 감탄사를 뿜어댔다. 문득 핍진하고 소루한 삶을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본다. 한꺼번에 물밀 듯이 피어나다가 금세 사라지고 마는 벚꽃이 젊은 청춘의 한나절이라며 복숭아꽃을 바라보노라면 세월의 산을 넘는 기분이다.
중국 진(晉)나라 시인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桃花園記)'의 '무릉도원'을 만난 기분이다. 신라시대 설화인 '도화녀(桃花女)'의 설화에서 임금이 첫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를 지닌 여인을 '복숭아꽃 여인(桃花女)'이라 이름 붙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천녀의 자태를 지녀온 복숭아꽃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다.
복숭아꽃에 심취하다 보면 꼿꼿한 정의감도, 자신에 대한 애증도 되살려준다. 가슴속 화산을 어금니로 짓누르면서 태 안내고 살아가는 독립군 같은 꽃이다. 핍진한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부지런한 밭 손질에선 세월의 켜가 한참 쌓인 도량적 성장 같은 것이 느껴진다.
산과 산이 겹치는 자락을 수놓는 복숭아꽃을 바라보니 이때서야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도다. 봄은 왔다가 갈려가든 가거라'란 사철가가 문득 스친다.
모두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삶이 고단하고 인연이 단출할수록 사회감정에 쉽게 지치게 되는 걸까. 시원시원하게 살고 싶으면서도 어딘가에 발목을 잡혀 마음 자락 한 끝이 생활의 문 어느 곳에 걸려 부드럽게 빠져나오지 못해 자유롭지 못한, 그런 애련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각박한 탓이다.
게다가 최근 발표된 각종 통계를 보면 우울증을 일으킬 만큼 뒤숭숭하다. 거센 폭풍이 몰려오기 직전 먹구름 장처럼 노동시장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임금삭감형 일자리나누기'(잡셰어링)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바야흐로 임금삭감이 악화된 고용시장을 타개하기 위한 만병통치약이 된 듯하다. 이러한 처방을 통해서라도 일자리 나누기가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실질적인 노력과 조치를 강구하고 있는 지금도 수많은 실업자들이 바늘구멍과도 같은 취업문 앞에 긴 줄을 지어서 있다. 학문과 연구자의 길을 포기하고 시간당 푼돈을 지급받는 비전임 시간강사직에 몸을 던지는 5만여 박사들도 그 대열에 기대고 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이다.
이 좋은 계절. 우리 모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