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초등학교 선생이자 오래된 MMO 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게임유저다. 몬스터를 잡아서 레벨을 올리는 온라인 게임 말이다. 한 달에 몇 만원씩 내야 하는 유료게임이지만 하루라도 접속하지 않으면 어떻게 됐나 궁금증이 폭발할 것 같아 때맞춰 계정비를 낸다. 발령 전에는 일어나서 씻자마자 PC방으로 가서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끼니도 컴퓨터 앞에서 해결하는 '폐인생활'도 한 1년 해봤다. 아직도 새로 나오는 게임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

이렇게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선생인 덕에 아이들한테는 '통하는 쌤'으로 다가갈 수 있다. 아이들은 일단 선생님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신기해 한다. 대부분 "선생님, 우리 같이 게임해요~"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함께 게임하는 동료유저와 가끔은 엄격해지기도 해야 하는 교사 사이에서의 갈등이 힘에 겨워 "나중에"라는 말로 좋게 거절하곤 한다.

왜 초등학생 인터넷 중독이 많을까

이 아이의 공부방엔 창이 두 개 열려 있다. 바다가 보이는 창, 인터넷 창.
 이 아이의 공부방엔 창이 두 개 열려 있다. 바다가 보이는 창, 인터넷 창.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아이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끔 곁에 다가와 게임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이들의 게임 이야기를 듣노라면 예전 생각이 든다. 지금도 게임을 하고 있는 건 게임도 나름 괜찮은 취미생활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게임 중독이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도 이야기 사이에 문득문득 '이 녀석 중독 아냐?' 싶을 때가 있다.

초등학생의 3~5%가 인터넷 중독이라고 한다. 학년 초에 우리반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중독 검사에서도 3명이 중독 초기라고 나왔다. 우리반이 34명이니 8.8%다. 사실 사람에게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중독이 인터넷중독이나 게임 중독만 있는 것은 아니다.

TV 중독도 심각하고 설탕 중독, 욕설 중독 등도 심각하다. 중고교로 올라가면 약물 중독이나 싸움 중독도 큰 사회문제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로서 어린이들의 중독 중 인터넷 중독이 가장 심각하고 광범위하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 중독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독 대상에게 보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기술의 발달로 점차 현실 생활과 별 차이 없을 만큼 정교화 되어가고 있는 사이버세계에 빠져들기 쉽다는 등의 이유 때문. 특히 빈곤가정 아이들의 인터넷 중독이 특히 취약하다는 것에도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빈곤가정 부모역할 하는 초고속 인터넷

일반적인 중독이 3~5%라고 앞서 말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등 빈곤가정의 초등학생 인터넷중독률은 4~9%로 2배에 가깝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호자 없이 집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빈곤층 아이들은 하루종일 컴퓨터에 매달린다. 집에서 챙겨주는 이도 없고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 가서 같이 놀 수도 없는 그 시간 동안 아이 곁에 있는 것은 정보격차 해소 사업으로 지원된 컴퓨터와 초고속 인터넷이다.

더구나 요즈음의 인터넷은 고도로 상업화되어 있다. 자본주의의 손길은 어리다고 봐주지 않는다. 무료라고 내건 게임들도 대부분 좋은 아이템은 돈을 주고 사야 하고 게임 외에도 커뮤티니나 음악, 아바타 등 웬만한 서비스는 유료화되어 있다. 학급에서 일어나는 금전 관련 사고들은 대부분 인터넷 사용과 관련되어 있다.

자신이 직접 아이템을 사기 위해 돈을 뺏거나 훔치는 경우도 있지만, 고학년 또는 중, 고교생들이 아이템을 요구해서 저학년 학생들이 다른 학생에게 돈을 뺏거나 훔치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 사용과 관련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많고 친구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경우도 많다. PC방 요금을 내지 않고 도망가다가 주인에게 잡혀서 욕설을 듣고 심지어 폭행을 당하는 아이들도 있다. 인터넷 중독이 아이들을 범죄로 내모는 격이다.

마음 붙일 곳 없는 아이들에게 손 내밀어야

대치동 학원가의 한 편의점.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초등학생들로 가득하다.
 대치동 학원가의 한 편의점.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초등학생들로 가득하다.
ⓒ 김하진

관련사진보기


이런 문제들을 정부도 인식하고 인터넷사용교육과 예방상담 등을 하는 '녹색정보화 사업'을 펼친다고 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좀 더 안정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을 할 수는 없는 걸까? 결식아동, 빈곤계층 공부방, 인터넷 사용교육 등 뭔가 심각하다고 하면 와르르 와르르 정책들이 쏟아지기는 하지만 뭔가 따로따로 엇박자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인터넷에 쉽게 중독되는 것은 그것밖에 없어서, 그리고 인터넷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손을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 청소년문화센터 사업 등을 많이 펼쳐 아이들이 놀 공간을 많이 만들어주고, 사회복지사 1인이 담당하고 있는 아동 수를 줄여 통합적이고 실질적으로 빈곤가정들을 지원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도시락 가져다주는 사람 따로 담당 복지사 따로 인터넷 상담사 따로인 식으로는 아이들이 마음 붙일 데가 없다. 가정 해체로 내몰린 아이들을 사회가 함께 키우려면 부모 같이는 해줄 수 없더라도 믿을 만한 지원자가 인터넷 중독에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끌어주는 손을 내밀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태그:#인터넷중독, #교육, #게임 중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