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자연이 아무도 모르게 기지개를 켜고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계절이다.
이때쯤이면 바다를 건너온 봄의 전령사들이 남도에서부터 활짝 꽃을 피우며 봄소식을 전해온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지로 떠나는 것도 우리 몸에는 보약이고 생활에는 활력소가 된다.
꽃이나 사람이나 향기가 있어야 아름답다. 그래서 시인 이해인 수녀님은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에서 '고요한 향기로 말을 건네오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 이웃에게 가벼운 향기를 전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을 노래했다.
사군자중 하나인 매화가 바로 그런 꽃이다. 크지만 시나브로 피고 지는 동백꽃이나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벚꽃과 달리 작고 여리지만 매화에는 진한 향과 절개가 있다.
매화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진강부터 떠올린다. 섬진강가에 있는 청매실농원(전남 광양시 다압면)의 유명세 때문이다. 그래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토종매실 100년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원동(경남 양산시 원동면)의 매실은 과소평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 이곳에서 해마다 매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적다.
원동에서 매화를 구경하려면 두 곳을 들러야 한다. 소재지에서 1022번 지방도를 따라 물금방향으로 가면 강변을 끼고 기찻길이 이어져 낭만적이다. 2㎞ 거리의 고갯길 오른쪽으로 작은 주차장이 있는데 그곳이 예전 원동역 관사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관사마을이다.
주차장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원동역도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원동역은 낙동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기찻길 옆에 있는 매화와 벚꽃ㆍ갈대가 아름다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소개되고 있다.
발아래로 매화와 기찻길, 낙동강과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지며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사진기만 있으면 누구나 작품사진을 남길 수 있는 장소다. 봄바람을 맞으며 기찻길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열차가 오갈 때마다 열심히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이곳에 원동 매실의 원조인 달호매실농원이 있어 토종매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기찻길 때문에 경치가 아름다운 순매원이다. 순매원이란 입간판을 따라 언덕길을 내려서면 매화가 지천이다. 수시로 오가는 열차와 매화를 배경으로 추억 남기기에도 좋다.
원동에서 매실나무가 가장 많이 심어져 있는 곳은 소재지에서 배내울 방향으로 5㎞ 거리에 있는 영포리다. 69번 지방도를 따라 영포리로 가는 길에도 군데군데 매화가 보인다. 길옆으로 보이는 들판에서도 봄기운이 느껴진다.
마을 입구에서 반겨주는 멋진 소나무들이 인상적인 영포리는 눈이 시릴 만큼 마을 전체가 매화에 묻혀있다. 매화들이 벌여 논 꽃 잔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팝콘들이 하얀 꽃이 되어 화면가득 날아다니던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포리는 인근의 내포, 함포와 함께 예전에는 배가 드나드는 포구였다. 현재는 농촌 마을답게 사람들이 순박하고 인심도 후하다. 계곡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어 등산로의 출입이 금지될 만큼 청정지역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시골에 집 한 채 짓고 자연을 벗하며 사는 것을 꿈꾼다. 별천지인 무릉도원이 따로 있을까? 매화의 아름다움과 마을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에 취하다보면 이곳이 바로 무릉매원(武陵梅源)임을 실감한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신흥사가 영포리 바로 옆에 있다. 마을을 돌아서면 바로 일주문이 나타나는데 이곳에도 온통 매화가 만발했다. 사찰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와 산세가 빼어난 주변의 풍광이 사찰 앞의 매화와 어우러져 더 아름답다.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인 대광전(보물 제1120호)은 소박하고 고풍스러운 내부의 벽화로 유명하다. 고려시대 후기작품인 관음삼존벽화는 관음보살이 물병 대신 물고기를 들고 있어 특이하다.
영포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차안까지 원동의 매화향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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