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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의 대국민 사기극, 역사는 복사된다

- 참여정부 복제하는 현 정권의 영리병원 허용    

 

역사는 반복이 아니라 복사된다. 공방이 뜨거운 영리병원 허용문제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참여정부의 '의료 산업화'를 그대로 복사하고 있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2004년12월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병원 유치 법안을 통과시킨 후, 2005년5월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허가 방침을 발표했다. 병원을 주식회사 형태로 만들어 자본을 끌어들이고, 이윤을 주주들에게 배당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은 병원을 비영리법인으로 명시하고, 이익금은 병원시설의 투자에만 사용할 수 있다.    

 

'해외원정진료비 1조원의 사기극과 665억원'

 

참여정부는 '의료 산업화'로 경쟁을 통한 의료서비스 질 향상과 고용창출을 부르짖었다. 현 정권이 이름만 바꾼 '의료 선진화'로 경제부처가 영리병원 허용에 총력을 기울이는 명분과 일점일획도 다르지 않다. 차이점이 있다면 1조원과 665억원이다. 

  

당시 제정경제부는 의료산업화의 당위성 논리로 병원협회 추산을 인용하여 해외원정진료 규모 1조원을 제시했다. 1조원은 곧바로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며 '의료 산업화'의 핵심 추진동력이 되었다. 국민들도 계속되는 언론의 반복학습에 세뇌되어 갔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2돌 대국민 연설문에도, 정부도 수 차례 이를 공식 인용했다. 그러나 1조원은 2002년 1월 S병원의 L병원장이 M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에 불과하고, 대한병원협회에서는 규모를 추산한 적도 없었다.

 

2002년 미국 병원들이 해외환자를 통해 벌어들인 진료비는 1조2천억 원이었으니, 재정경제부 말대로라면 미국 전체 병원에서 진료받은 외국인 환자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보건산업진흥원의 조사로 해외원정진료비가 최대 1천억원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는 언론에 거의 취급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이미 '의료산업화'의 이름으로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 허용 등을 위한 법적 토대를 닦은 후였다. '치고 빠지는'사기수법의 전형이었다.   

 

665억원은 작년 5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한국관광공사가 공동주최한 '한국 의료관광 컨퍼런스 2008'에서 발표되었다. 이에 따르면 2007년 해외 병원에서 진료서비스를 받고 지출한 금액은 1237억원이었고, 외국인이 국내 의료시설에서 진료받은 의료비는 572억원이었다. 의료서비스 적자가 665억원인 것이다.

 

그러나 665억원 상당부분은 해외 원정출산이나 장기이식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국적취득을 위해 일부 부유층들은 미국본토는 물론, 괌이나 사이판까지 날아간다. 미국에서 출산하면 진료비만 2천만원이 든다. 원정출산이나 장기이식은 국내 영리병원으로 흡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짓이 탄로 난 1조원이 665억원으로 바뀐 것만 뺀다면, 기획재정부가 영리병원으로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참여정부의 것을 그대로 복제했다. 

 

'영리병원, 의료서비스 질↓, 고용창출↓'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의료서비스 질 향상'과 '고용창출'이 가능할까? 이것은 미국의 예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전 국민을 커버하는 공적 의료보험체계가 없어 민간의료보험과 함께 영리병원이 가장 발달해 있다.

 

영리병원은 기본적으로 이윤창출이 목적이다. 병원지출에서 인건비가 6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지 않고는 지출을 줄일 수 없다. 미국 비영리병원의 100병상당 의료인력은 522명이지만 영리병원은 352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통계는 국내도 마찬가지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영리목적의 개인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43% 덜 고용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영리병원은 만성신부전 환자의 사망률이 비영리병원보다 20%나 높지만, 동일질환 진료비는 입원 한 건당 10% 더 높다. 의료의 질에 있어서도 존스홉킨스대학 병원, 메이어 클리닉, U.C.L.A 메디컬 센터 등 상위 10대 병원 모두가 비영리법인이다(2004, U.S. News And World Report, Best Hospital).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의료산업 전체가 발달하여 고용이 늘 수밖에 없다'를 되풀이 하고 있다. 의료산업의 주 종목인 첨단의료기기나 제약 산업은 영리병원과 아무런 관련성도 없다. 윤 장관의 말대로라면 의료의 공공성이 우리보다 월등히 높은 영국을 포함한 유럽선진 국가들의 비약적인 의료산업 발전은 설명이 안 된다.

 

물론, 이들 국가에도 영리병원은 있다. 특실사용이나 특수고가의료서비스 등이 주요 취급품목이다. 공보험이 진료비 대부분을 커버하기 때문에 그 영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겨우 60%를 넘어섰을 뿐이다. 규제 없는 민간보험은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과 묶여진 영리병원이 취약한 보장성을 파고든다면 결국엔 건강보험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국제 민간비영리산업 등에 대한 조사연구를 수행하는 미국의 민간 경제조사기관인 Conference Board의 지사인 캐나다 Conference Board는 2004년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료체계를 OECD 24개 국가 중 5위로 평가했다. 영리병원 허용은 의료서비스의 질 하락과 고용축소는 물론, 안정괘도에 접어든 건강보험을 위협할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전재희 장관과 김근태 장관의 차이'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영리병원 허용은 값비싼 민간의료보험으로 이들 병원에서 당연지정제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영리병원 허용문제는 경제부처가 아닌 복지부 장관의 소관사항임을 분명히 했다. 참여정부 시절 같은 사안에 대해 전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실세' 김근태 전 복지부 장관과 뚜렷이 구분되는 대목이다. 당시 시민단체는 김근태 장관 퇴진운동도 불사했다.

     

보험자본과 영리병원의 결합은 전재희 장관의 우려를 넘을 수도 있다. 제약자본이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게 한다면 자신들이 만든 의약품만 환자들에게 강요할 수 있다. 보험자본이 영리병원을 세우면 보험회사들은 이윤극대화를 위해 비싼 의료서비스를 못하게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일은 병원이 보험사에 종속됨에 따라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병상 수나 첨단고가 의료장비는 포화상태다. 총 병상 수는 2006년도에 인구 천 명당 8.5개로 OECD 20개 국가 중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대표적 고가의료장비인 CT와 MRI도 상황은 비슷하다. 2006년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인구 백만 명당 CT 수는 33.7대로 OECD 22개 국가 중 벨기에와 미국에 이어 세 번째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백만 명당 MRI수는 13.6대로 OECD 평균 8.8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현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환경에서 영리병원 허용은 의료에서 공급이 수요를 무한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곧 불필요한 국민의료비의 증가와 건강보험재정의 악화를 의미한다. 보건의료정책은 한 번 발을 잘 못 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온다.

 

의료의 공공성이 자리잡지 않은 영리병원은 의료서비스 질 향상, 의료산업 발전, 고용창출 중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각종 사례와 지표는 오히려 그 반대임을 경고하고 있다. 쇄락한 지방의 중소병원의 몰락도 가속화 된다. 국민 전체 진료비 54조원의 0.12%에 불과한 665억원, 해외원정 출산비가 대부분인 의료서비스수지 적자를 막으려 안정된 국가 보건의료정책의 기본 틀을 깨야 한다는 논리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송상호 기자는 공공서비스노조 전국사회보험지부 정책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영리병원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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