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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 동백이 활짝 꽃을 피우며 남녘의 땅끝이 먼저 봄소식을 전해준다. 봄기운이 넘쳐나는 땅끝 해남은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어촌들이 정겹게 늘어서있다. 그래서 바닷가에는 어촌만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바다와 접한 땅끝에도 산촌이 있다. 해남의 지킴이 흑석산이 뒤편에서 지켜보고, 1만2000평의 대나무가 마을을 둘러싼 계곡면 법곡마을(이장 이영배)은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산촌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커봐야 20여 평 되는 다랭이논, 야트막한 지붕과 살림살이가 한눈에 보이는 마당이 맞이한다.

 

도회지 사람들이 정을 느끼는 작고 적은 것들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고단한 삶이다. 산촌이 다 그렇듯 농토가 적다보니 끼니를 놓쳐가며 뒷산에서 더덕, 도라지, 고사리, 취나물, 두릅 등을 채취해 20㎞ 밖의 해남읍에 내다팔지만 연소득이 800만원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삶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 변종만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청정지역에서 주변에 널려있는 먹거리로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고 있는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을 앞 실개천에 송사리와 가재가 놀고, 마을 주변에서 토끼와 노루를 만나고, 고만고만한 다랭이논이 산비탈과 어우러지는 법곡마을의 풍경이 도회지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여름철에 공기가 달게 느껴진다는 마을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정말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일까? 29세대 49명이 사는 마을에 70부터 92세까지의 노인이 20명이 넘는 장수마을이다.

 

농ㆍ산촌에서 젊은이로 통하는 60세 미만의 남자가 10명이 넘는 것도 이 마을의 희망이다. 서울에서 30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1998년 귀향한 이영배씨는 산촌살이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종종 찾아오지만 소득원이 없어 돌려보낸다며 안타까워한다.

 

생활자체가 꼭 집어서 농촌과 산촌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법곡마을 사람들이 지금 꿈에 부풀어 있다. 2008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며 마을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2억 원의 예산을 들여 이 마을의 자랑거리인 다랭이논, 봉화터, 흑염소방목장 등을 정비하고 체험시설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영배씨는 농업위주의 생활로는 빈곤을 벗어날 수 없어 체험마을도 산촌위주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한다. 산에서 소득원을 찾기 위해 장뇌삼․오미자․표고버섯을 재배하고 군의 지원을 받아 마을 뒷산에 더덕․도라지․당귀 단지를 조성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농촌과 산촌을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체험도 다양하게 계획하고 있다.

 

 

원마을에서 한참을 올라가면 흑석산의 주봉이 바라보이는 해발 230m 산중턱에 이영배씨가 세운 농장이 있다. 농장의 이름도 누구나 한번쯤은 꿈꿨을 도시탈출농장이다. 길손에게 '산이 왜 있는지?'를 물어오더니 '산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며 산과 대화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이야기 한다. 구름도 쉬어 넘는 흑석산이 말투까지 자연을 닮게 만든 외딴 곳이지만 후한 인심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이영배씨와 마을사람들의 꿈은 야무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 질마재에 말목장터가 있던 유래를 살려 노새와 말을 구입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말을 타고 콧노래를 부르거나 당나귀를 길잡이로 산행하는 풍경을 흑석산 등산로에서 볼 수 있다.

 

마을 뒤편의 대숲에서 '사각~ 사각' 댓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대나무들이 하늘로 키를 키운 대숲 산책로에서 코끝이 상쾌하도록 죽향을 마시고, 대숲 원두막에 앉아 죽피리를 불며 산촌의 운치를 맛보고, 등산을 마친 후 약초들이 울긋불긋 꽃을 피운 다랭이논을 바라보며 마을사람들이 해주는 대통 밥까지 먹을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6월이면 체험마을 공사가 모두 끝나 이런 일들이 이뤄질 날도 멀지 않다.

 

 

법곡마을의 인적이 드믄 산 아래 해남이 자랑하는 아시아의 물개가 살고 있다. 70년 제6회, 74년 제7회 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조오련씨가 2년 전 이곳으로 귀향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서울보다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산속의 생활이 행복하다는 것을 조오련씨의 환한 웃음이 말해준다. 조오련씨는 지금 작은 연못이 있는 황토집에서 경제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대한해협을 횡단한 1980년으로부터 30년이 되는 2010년 다시 대한해협을 횡단하는 것이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길손을 배웅하는 이영배 이장과 조오련씨의 모습을 룸미러로 바라보며 모든 산촌마을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길, 법곡마을이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도시인들이 다시 찾고 싶은 체험마을로 거듭나길, 조오련씨가 대한해협 횡단을 성공리에 마쳐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길 바랐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가 오는 18일 14세 연하의 이성란씨와 화촉을 밝힌다는 소식이 전파를 타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법곡리에 갔던 2월 말 내자될 사람이라는 소개와 함께 맛있는 커피를 대접받았던 일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언제나 자랑스럽고 당당한 조오련씨와 웃음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예쁜 이성란씨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울러 행복한 모습으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성공시키며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줄 날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산사랑,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도움자료
①도로안내 : 해남읍 → 806번 지방도(고산유적지 방향) → 평동교차로(좌측 방향) → 13번 국도 → 법곡교차로에서 좌회전(성진,법곡방향) → 법곡리 이정표 보고 우회전 → 법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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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해남, #계곡면, #법곡리, #이영배, #조오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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