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란 만 가지 물건이니 진실로 하나로 할 수 없거니와, 하나의 하늘이라 해도 하루도 서로 같은 하늘이 없고, 하나의 땅이라 해도 하루도 서로 같은 하늘이 없고, 하나의 땅이라 해도 한 곳도 서로 같은 땅이 없다"고 했다.
이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하나의 이(理)로 수렴되고, 그 이는 모든 사물에 내재한다는 성리학의 일리적 세계관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성리학의 일리적 세계관을 해체한 이는 누구일까? 1792년 정조가 출제한 문장시험에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여 정조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하명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이옥(李鈺, 1760~1815)이다. 이옥이 남긴 작품 전집(총5권))이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를 통하여 나왔다.
이옥은 한평생 소품문 창작에 삶을 바쳤다. 소품문이란 천편일률적인 상투적 글쓰기에서 벗어나 이제껏 다뤄지지 않은 존재들, 즉 여성과 중인, 평민뿐만 아니라 풀과 물고기, 새, 그리고 담배 같은 기호품들을 주제로 삼았다.
제01권<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는 김려가 남긴 이옥의 글을 부(賦)ㆍ발(跋)ㆍ기(記)ㆍ논(論)ㆍ설(設)ㆍ해(解)ㆍ변(辨)ㆍ책(策) 따위 장르를 실었는데 백성, 거미와 벼룩, 하얀 봉선화를 다루고, 주자와 노자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을 볼 수 있다.
백성을 생각했던 그가 남긴 글 중 '다섯 아들을 낳은 한 어미에 대한 부'에서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과 아픔 속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백성은 오늘 서민으로 동일하게 살아가고 있다.
조선시대 아들을 다섯이나 낳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지만 어미는 말한다.
"고을에 군정이 하나 더 보탰으니
관아의 관리들이야 기쁘겠지만
가난한 집에는 돈이 없는데
아들 보았다고 어찌 좋아하겠어요?
하늘은 이미 나의 원수이고
귀신조차 도와주지 않는군요.
보리밥만 한 그릇 축낼 뿐이라오.
아, 백성에게는 부역이 있고
부역에는 각각 징수가 있으니
군포를 마련하지만
오히려 기일이 대지 못한다오.
이로써 생각하면
어찌 어린애가 귀하겠어요?
어린애는 실로 귀할 게 없으니
그것이 적이 슬퍼하는 까닭이라오" (<이옥전집 1권>-'다섯 아들을 낳은 한 어미에 대한 부' 117-120쪽)
태어난 생명을 기뻐하기보다는 부담스러워할 정도 백성은 피폐했다. 백성의 고통을 이토록 애절하게 쓴 그가 <노자>를 읽고 쓴 독후기는 성리학에 지배하던 조선 학문과는 다른 사유를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노자의 세계를 우리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자유자제로 그 모습을 바꾸는 물이라며 예찬했다.
"물이여! 물은 막힘이 없고, 주가 됨이 없고, 부러워함이 없고, 업신여김이 없지만. 천지의 장부요, 만물의 젖이다. 물은 천하의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지만 스스로 더럽지 않고, 천하의 갈림길을 가지만 스스로 불만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위대하도다 물이여! 꿈틀거리기도 하고, 망망하기도 하여 내가 형용할 수 없구나. 아 내가 <도덕경>을 살펴봄에 그것이 물이었도다!"(<이옥 전집 1권-<노자를 읽고> 285쪽)
1집 제목인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에서는 "가을은 음의 기운이 성하고 양의 기운이 없는 때"로 양의 기운을 타고 태어난 선비가 어찌 슬퍼하지 않으리요"한다. 그리고 이 슬픔에는 기운을 다해 스러져가는 나라 조선을 예감하고 있는 듯하다.
"아 천지는 사람과 한 몸이요, 십이회는 일 년이다. 내가 천지의 회를 알지 못하니, 이미 가을인가. 아닌가? 어쩌면 지나 버렸는가? 내가 가만히 그것을 슬퍼하노라."(<이옥전집 1권>-'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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