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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정재수 기념관
 효자 정재수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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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정재수 기념관 안내도
 효자 정재수 기념관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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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정재수 추모시비
 고 정재수 추모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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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재수 관련 당시(1974) 기사
 고 정재수 관련 당시(1974)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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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재수 동상
 고 정재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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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서벌국의 수도이자, 누에고치, 쌀, 목화로 유명한 삼백의 고장 상주를 지나치다가  전국 최초의 효 주제 기념관인 '효자 정재수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기념관은  고 정재수의 모교였던 화서면 사산리 소재 구 사산초등을 개조하여 조성해 두었다) 

기념관 내, 효를 형상화 한 조형물(자식이 부모를 업고 있다)
 기념관 내, 효를 형상화 한 조형물(자식이 부모를 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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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 내, 효 관련 고서적
 기념관 내, 효 관련 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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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정재수가 생전에 사용하던 교실로서 재현해 두었다. 꽃이 있는 자리가 그의 자리
 고 정재수가 생전에 사용하던 교실로서 재현해 두었다. 꽃이 있는 자리가 그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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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운동장에는 전통놀이 체험시설을 마련해 두었다
 기념관 운동장에는 전통놀이 체험시설을 마련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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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전경(정재수의 모교인 구 사산 초등학교)
 기념관 전경(정재수의 모교인 구 사산 초등학교)
ⓒ 정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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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운동장 한켠에 있는 그네
 기념관 운동장 한켠에 있는 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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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측의 설명에 따르면, "1967년생인 고 정재수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1974년 1월 22일 아버지와 함께 12㎞ 떨어진 충북 옥천 큰집에 차례를 지내러 가던 중 폭설 속에 쓰러진 아버지를 구하려고 애쓰다가 자신의 옷을 아버지에게 덮어 주고 함께 하늘나라로 떠난 효자 정재수의 효행을 널리 알리고 효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효자 정재수 기념관'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재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아빠하고 나하고'
 정재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아빠하고 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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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은 정재수의 효행관련자료 전시한 <효자 정재수실> 효행관련 각종자료를 전시한 <효행전시실> 효관련 세미나실을 겸한 <영상관>, 35년 전 고 정재수가 학교를 다닐 적 모습대로 재현한 <복원교실>, 근래에 잊혀져가고 있는 우리의 전통민속 놀이 체험의 장으로 꾸며서 그네뛰기, 칠교놀이, 윷놀이, 공기놀이, 굴렁쇠, 제기차기, 줄넘기, 널뛰기, 팽이치기, 투호, 망차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야외체험실>로 구성돼 있어서 가족 단위로 둘러보기 좋게끔 꾸며져 있었다.

40대에 접어든 사람들은 '정재수'라는 이름을 어렴풋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1974년 5월 고 정재수의 이야기는 '아빠하고 나하고(1974. 한진흥업)'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었다. 어린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가 흔치 않았던 시절, 당시 이 영화는 문화교실이라고 불리던 학교단위의 집단관람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기념관 게시물 '유교의 효'
 기념관 게시물 '유교의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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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게시물 '불교의 효'
 기념관 게시물 '불교의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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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게시물 '기독교의 효'. 전통적인 유교적 효의 개념을 기독교 불교로 확대해서 전시한 게시물들이 눈길을 끈다.
 기념관 게시물 '기독교의 효'. 전통적인 유교적 효의 개념을 기독교 불교로 확대해서 전시한 게시물들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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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 관계조차도 물질로 유지되어 가는 오늘날, '정재수 효기념관'이 가지는 의미는 뭘까? 기념관에 있는 게시물을 통하여 확인해 본다.

부활하는 정재수
오늘날 가정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사회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은 그들의 부모의 심정은 아랑곳없이 밖으로 나돌고 어른들은 그들의 부모조차도 모시길 꺼려한다.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가 버려지고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자란다.
효는 인륜의 근본이라는 말이 무색한 요즈음 다시 그것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정재수군의 죽음이 새로이 조명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청이 가상의 인물이라면 정재수는 불과 20(35)여년 전 바로 이 하늘아래 우리와 함께 살았던 평범한 인간이다.
그의 실천적인 효성이 메말라 버린 우리들의 고개를 숙이게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할 수 있는 귀감이 될 것이다. - 정재수 기념관

효기념관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김천 IC - 김천 - 3번국도, 북상 - 상주
개관(09시 ~ 18시) 관리사무소 (054-535-0575)
기념관에서 자전거 박물관, 동학교당, 남장사 등을 경유하여 돌아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U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효자 , #효자 정재수 기념관, #상주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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