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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에 관한 의식'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9명이 자녀부양 기대 안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하긴 내 주변만 보더라도 대책이 있든 없든 자식에게 기댈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으니, 이전처럼 부모 부양문제로 가족 간에 의절까지 하는 불상사는 적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그러나 의식만 변하면 뭐하나. 노후준비를 못하고 속절없이 백발만 내려앉은 50~60대, 바로 우리 부부 같은 사람들이 태반인데.

 

돈에서 시작해 돈으로 끝나는 노후대책

 

며칠 전에도 친구들끼리 모여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우리의 노후를 화제 삼아 '콩이야 팥이야' 떠들다 왔지만 뾰족한 묘수는 찾지 못했다. 하기야 노후대책이라는 게 처음부터 끝까지 돈에서 돈으로 끝나는데 무슨 뾰족 수가 있겠는가.

 

나만 해도 전 재산이라는 게 고작 1억도 안 나가는 시골집이 전부인 데다 예금은커녕 약간의 빚까지 있는 처지니 할 말이 없다. 다행히 아이 둘 중에 하나는 직장을 잡았고 남은 하나는 대학 두 학기만 마치면 졸업이니 큰 걱정은 덜었는데 문제는 늙고 병들면 무슨 수로 벌어먹고 사느냐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연금이 나오는 빵빵한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 보장된 수입이라야 국민연금 달랑 한 개인데 받아봤자 50여만 원을 넘지 못하는 액수다. 다행히 남편 앞으로 80세까지 보장되는 질병보험 하나는 들었다만 '암' 전력이 있는 나는 그마저도 거부당한 처지다.

 

그렇다고 내 처지보다 형편이 훨씬 좋은 지인들 역시 노후문제에 느긋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오십 평생 열심히 벌어 웬만큼 재산을 불려놓은 친구 부부도 앞으로 들어갈 창창한 비용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올 정도라고 하소연을 했다.

 

병석에 계신 노부모 돌봐드려야지, 대학원까지 마치고도 취직 할 생각은 않고 공부를 더 하겠다며 유학을 떠난 아들놈 뒷바라지 해야지 게다가 혼기 닥친 딸아이 결혼 비용까지 계산하면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 모아 둔 재산 야금야금 없어지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이다.

 

자식 뒷바라지는 유통기한도 없는데

 

참말, 우리 세대가 '동네북'이냐? 노부모 부양 책임에 옴짝달싹 못하는 건 그렇다 치고 우리의 노후를 자식들에게 기대한다는 건 언감생심인데 자식들 뒷바라지엔 왜 유통기한이 없느냐 말이다.

 

"내가 자식이 없냐? 요양원 가게."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않는 자식들을 싸잡아 욕하며 당당하게 당신들의 노후대책을 요구하는 우리 엄마처럼 부모님 세대는 자신의 노후를 자식들에게 의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기야 당신들도 자식부양보다 부모부양을 우선순위에 두고 사셨던 분들이니 노후대책 1번에 자식을 두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낀 세대' 50~60대 이 사람들의 의식이 문제다.

 

자신들의 노후준비는 뒷전이고 오로지 자식들 뒷바라지에 '올인' 하느라 정신이 없으니 그 자식들이 무엇을 보고 배웠겠나. 물론 바라지도 않지만 받는 것에만 익숙한 자식들이 주는 것에 서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부모님 노후가 눈에 들어 올 리가 없다.

 

"엄마, 뭔 걱정이세요? 노후보험 두 개나 있으면서"

 

얼마 전 부모님 제사를 모시러 아들과 함께 형님 댁으로 올라가면서 모처럼 모자지간에 정담을 나누게 되었다. 항상 가슴 한 편에 늙어 우리 아이들에게 짐이 되면 어쩌나 하는 근심을 쌓아놓고 있었기에 말  끝에 그 이야기가 나오고 말았다.

 

"어제 옆집 강희할머니가 당신 장례비용에 쓸 돈이라며 농협에 들러 정기예금에 넣어달라고 300만 원을 맡기시더라. 다리도 성치 않아 밭고랑을 기어 다니며 김을 매는 노인이 돈 못 버는 큰아들 짐 덜어주려고 당신 장례비용까지 마련하시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나와서 혼났어. 팔십이 넘은 노인도 저러신데 엄마는 뭐 하고 있나? 너희들에게 짐은 되지 않아야 될 텐데 걱정이 태산이다."

 

"엄마, 뭔 걱정이세요? 노후 보험이 두 개나 있으면서."

"엄마가 무슨 보험이 있어?"

 

"누나와 내가 보험이잖아요. 우리들을 여태껏 키워줬으니 엄마아빠 생활비 책임지는 건 당연하지 그것도 안 하면 후레자식이게? 더구나 윗 보험은 아주 쎈~~보험이면서."

 

아들의 엉뚱한 답변에 한참을 박장대소했지만, 아들의 그 마음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 2년차인 딸아이 역시 제 월급에서 동생 하숙비와 용돈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생활비에 보태라고 틈틈이 목돈을 보내줄 만큼 가족들에게 쓰는 돈을 아끼지 않는 아이다.

 

두 아이 모두 부모 잘 둔 제 친구들을 부러워 할 만도 하건만, 가난한 부모 원망 않고 그저 저희들 공부 가르쳐 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치사를 하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으랴.

 

우리 집 노후대책은 이렇다. 가난하고 늙은 부모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 하나요. 그 자식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모 마음이 다른 하나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 챙기고, 부지런히 텃밭 가꿔 일용할 양식을 조달하고, 자식들이 곁에 없어도 친구들과 즐겁게 '하하' 웃으며 생활할 수 있는 자립심. 이 정도의 노후대책이면 아쉬운 대로 넘어가지 않을까.


태그:#노후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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