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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벌써 고사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사리 보니 나 어렸을 적 우리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아닌 옛날이야기 생각난다

 

내가 처녀 적에 하루는 무등산으로 동무들이랑 고사리 꺾으러 갔을 때 이야기지 한창 고사릴 꺾고 있는데 고양이 새끼같이 생긴 예쁜 동물이 있길래 다들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야단법석이 났지 그런데 놀부같이 심술궂은 친구 하나만 그까짓 게 뭐가 이쁘냐고 심통을 부렸단다 그때였어 어디선가 어흥어흥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단다 그냥 무등산이 찌렁찌렁했지 그 길로 캐던 나물 바구니도 냅다 펭개친 채 걸음아 날 살려라 뛰었지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사립문에 나물 바구니가 걸려 있더구나 아마도 호랑이가 갔다 놨겠지 뭐 그런데 호랑이 새끼더러 안 이쁘다고 했던 그 동무 바구니는 갈기갈기 찢어서 걸어 놓고 갔단다 글쎄 짐승도 지 새끼 이쁘다고 한 사람은 절대 안 해치는 법이지 아무리 호랑이 같이 사나운 맹수라도 지 새끼 이뻐하면 고양이 같이 순한 짐승이 되지 그러니 넌 커서 절대 口業(구업)을 지으면 안된다 알겄제?

 

호랑이가 처녀들의 나물 바구니를 돌려주었다는 얘기 시방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때 할머니는 호랑이에게 택배 영수증을 받아뒀어야 했다 하지만 옛날엔 택배 영수증 따위가 없어도 사람 말을 믿어주던 시절이었거든 그리 먼 옛날도아닌 나 어렸을 적만 해도.


태그:#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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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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