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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아내가 바쁘다. 오늘(18일)은 시흥시 정왕동에 위치한 '연두농장'(대표 변현단) 정왕도시 텃밭에 처음으로 각종 씨앗과 묘종을 옮겨 심기로 했기 때문이다. 50평 남짓의 텃밭을 빌린 당초 목적은 안산에서 노후를 지내고 계시는 아버님께 이 텃밭을 소일거리 삼아 가꾸시라고 권해드릴 목적이었는데 당초 목적과는 약간 달라졌다.

 

아버님께서 돈을 주고 빌렸다고 역정을 내시면서 당신께서는 한사코 짓지 않겠다고 손사레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리 내외가 나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초 우리 내외는 두 아이들과 함께 다섯평 정도만 가꿀려고 했는데 졸지에 50여평 전체를 도 맡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처한것이다.

 

지난 3주동안 텃밭을 가꾸시라고 말씀드리며 설득하다 지쳐 우리 내외라도 나서야겠다 싶어 농삿일에 나선것이다. 오늘 집을 나서면서 아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챙긴것은 다름아닌 '고구마'였다.

 

지난 겨울 1box 사왔던 고구마를 맛나게 먹고 올해 텃밭 농사를 짓게되면 씨고구마로 심자며 열댓개를 아껴 놓았던 고구마 였다. 베란다에 놔뒀던 고구마에 움이 돋아 있길래 이참에 씨고구마로 심을려고 챙겼던 거였다.

 

# 밭고랑 한가운데에 나타난 괴생물체..'지렁이 인가?'

 

안산 '상설시장'에 들러 묘종과 씨앗을 구매했다. 고추묘종은 3개에 1,000원, 호박, 토마토등 세 종류의 묘종을 고르고 상추씨앗을 비롯해 아욱씨앗등과 함께 퇴비 한 봉지 까지 계산하니 1만 8000원이다.

 

텃밭 규모가 50평 남짓이라고 설명했지만 종묘상 주인도 감이 선뜻 오지 않는듯 하다. 이것 저것 고르다 일단은 이 정도 심어보고 부족하면 더 사다가 심으라는 권유에 이 정도만 골랐던것.

 

하루내내 구름한점 없이 따사로운 햇볕만이 대지를 감싸는 가운데 초보 농사꾼인 우리 내외의 농삿일이 시작되었다. 바로 옆에는 또 다른 도시 텃밭 농사꾼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3주전 다른 사람들이 심어놓은 텃밭에는 새싹이 돋아나 있는 등 황량하기만 하던 벌판에는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있는 듯 했다.

 

우리가 분양받은 50평 남짓의 넓이를 헤아리며 '연두농장' 측에서 미리 골라놓은 밭고랑을 헤치며 고추묘종 부터 심기 시작했다. 두시간여 땡볕에서 일을 마치니 제법 농사꾼 답다. 네 고랑에 고추를 비롯해 상추, 토마토, 호박 묘종을 심었다.

 

 

 

나머지 두 고랑에는 아욱씨와 상추씨앗 등을 뿌렸다. 아내가 호미로 밭 고랑을 헤치면 나는 준비한 각종 묘종을 플라스틱 용기에서 조심스럽게 들어낸후 심는 순서였다. 한 고랑을 심고나면 다시 발로 묘종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꼭꼭 눌러주는 순서도 잊지 않았다.

 

묘종과 씨앗을 심고 뿌리는 가운데 20여미터 남짓 떨어진 둠벙에서 플라스틱 조롱으로 물을 떠다가 뿌려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어차피 식물이라는게 물이 있어야 싹도 트고 자랄게 아닌가. 

 

고추묘종을 심는걸 마친후 그 밭고랑을 쳐다보다 보니 이상한 생물체가 꿈틀거린다. 시커멓게 생긴게 처음에는 지렁이 인줄 알았다. 묘종을 심는다고 호미로 땅을 파헤쳤으니 그 과정에서 흙밑에 있던 지렁이가 바깥으로 나온줄 알았던것. 아내에게 물었다.

 

"야! 이거 이상하게 생겼는데 지렁이냐?"

"???? 어! 그거.... 거머리 같은데!"

 

 

 

아내와 말을 나누며 자세히 보니 밭 고랑 한가운데서 꿈틀거리고 있는 괴생물체는 지렁이가 아니었다. '거머리'였다. 둠벙에서 이날 심은 묘종과 씨앗에 물을 주고자 플라스틱 조롱으로 물을 떠왔는데 그 와중에 휩쓸려와 밭고랑 한가운데에서 꿈틀 거리고 있었던것.

 

꿈틀거리던 거머리를 조심스럽게 집어서 둠벙에 다시 가져다 넣어주고 오다보니 '연두농장' 열성회원인 은동원씨가 어느덧 가까이 와 있었다. 그는 우리 부부가 밭 고랑에 심어 놓은 고추묘종들을 살펴 보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또 어떤 식물들을 심었는가는 물었다. 아내가 말했다. 

 

"고구마요!"

"고구마는 지금 심는 철이 아닌데요!"

 

아내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그럼 언제 심는건데요?"

"5월달에나 심는 거구요. 고구마는 감자와 심는 법이 다르답니다. 고구마는 움이 튼 부분을 땅에 심는 건데요"

"..........."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날 우리 부부의 농사는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거였다. 고추 묘종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냉해 때문에 보통 5월초에 밭에 옮겨 심는거고, 특히나 고구마는 감자처럼 움이튼 부분을 쪼개서 심는게 아니라는 거였기 때문.

 

고구마의 경우 움이터 싹이 제법 자라게 되면 그 부분을 도려내 밭에다 심는다는 그의 설명이 있었기 때문. 뭐 그렇다고 심은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겨우내 삶아 먹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올 가을에는 더 풍성한 양으로 삶은 고구마를 맛나게 먹겠다는 아내의 욕망이 무참하게 허물어지는 순간이기도 했고 말이다.

 

어설픈 농삿일을 마친 우리 내외, 두 아이들(중 1, 초등학교 4)은 학원에 보내 놨겠다 느긋하게 둘 만의 드라이브를 오랜만에 즐길 수밖에. 추억의 정왕동 소재 옥구공원을 들르기도 했다. 차가운 서해바람을 맞아서인지 옥구공원과 군자지구에는 이제서야 봄이 한참이었다.

 

군자지구에는 노란 유채꽃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고 저 멀리 옥구산에는 분홍빛 봄이 한껏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간지러운 봄 바람이 코 끝을 헤짚고 휘돌아 간다. 봄날은 가고 있었다. 노랫말을 흥얼거린다.....'연분홍 치마에 봄 바람이 휘날리더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구마, #거머리, #지렁이, #고추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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