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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의 행적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민주적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행위임과 동시에 정권의 민주적 독재에 대해 방패막이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법관의 헌법적 본분을 망각한 채 권력에 '알아서 기는' 작태를 보여준 것이다."

 

김도현 동국대 법학교수는 18일 '신 대법관 사태가 보여준 법원개혁의 올바른 방향'이란 주제로 서강대에서 열린 대토론회에서, 이날 5주제 가운데 제1세션 '법원개혁과 신영철 대법관 사태' 토론자로 나서 이같이 직격탄을 날렸다.

 

김 교수는 "상명하복이 있을 수 없는 법관의 재판업무에 관해 자신의 수하법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법관에게 독립적 헌법기관일 것을 요청한 헌법적 명령을 위반한 것이며, 법원을 '법관동일체의 원칙'이 적용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정권의 민주적 독재에 대해 방패막이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법관의 헌법적 본분을 망각한 채 권력에 '알아서 기는' 작태를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관동일체의 원칙'이라는 표현은 이번에 처음 나왔다. 김 교수가 '법관동일체의 원칙'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과거 검찰의 상명하복 체계인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빗대 사법부를 꼬집은 것이다.

 

실제로 이날 사회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장주영 부회장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들어봤어도 법관동일체의 원칙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면서도 "'법관동일체의 원칙'이라는 표현은 이번 신 대법관 사태를 지적하는 아주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싶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김도현 교수 "신영철, 법관의 헌법적 본분을 망각했다"

 

김 교수는 "문제는 이런 사태가 일시적ㆍ일회적 해프닝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사법부의 구조적 문제가 터져 나온 고질적 병폐의 빙산의 일각인지 하는 것에 있다"며 "그런데 후자의 문제가 작금의 사태의 원인이며 그래서 문제는 더욱 심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헌적인 법관동일체의 원칙이 사실상 작동할 수 있도록 구조화된 법원조직과 법관인사의 문제가 오래도록 우리 사법부에는 잠재돼 왔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법관의 승진과 서열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관료화된 사법조직 하에서 상사가 언질을 줬을 때 소신에 따라 재판할 수 있는 법관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법관의 승진ㆍ서열구조를 지적했다.

 

이어 "2004년부터 시행된 법관단일호봉제도 이러한 사실상의 승진ㆍ서열구조를 혁파하지 못한 채 모든 법관은 경력에 따른 호봉 차이만 있을 뿐 직급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장식적 구호만을 외치고 있을 뿐"이라며 "법관근무평정제도도 이러한 사실상의 계급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것 외에 무슨 효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특히 "법관 계급구조가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며 "사법정책,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상급법원과 법원행정처 영향 하에 재판을 해 온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이런 게 재판개입이고 영향력 행사라 본다. 이는 법관의 독립과 부합하지 않는 행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법 부장판사에서 고법 부장판사로의 승진은 대단히 선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며 "같은 기수로 임명된 법관들 대여섯 중 한 명만이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며, 일찌감치 우수한 성적과 발군의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고법 부장판사로의 승진은 바라볼 수조차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지 못하거나 가망이 없는 법관들은 법복을 벗고 대거 변호사 개업을 함으로써 국민들 사이에 '전관예우' 의혹을 심어주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며 "2007년에 80여명의 법관이 퇴직했으며, 그 중 정년퇴직은 한 명에 불과한 사실은 아직도 법원 내 비공식적인 계급ㆍ서열구조가 상존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예"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계급ㆍ서열 구조 하에서 법관들은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상사의 지시가 비록 재판업무에 관련된 것이라 할지라도 법관의 고양된 지위를 내세워 이를 간단히 무시하기가 어렵게 됐다"며 "고법 부장판사 이상의 고위법관이라 할지라도 대법관 승진을 염두에 두면 제청권자나 임명권자의 눈에 들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게 되므로 사법부 전체가 계층적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상명하복의 법관동일체 원칙을 구현하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신영철 사태'도 아마 대법관으로의 승진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알아서 긴 것'"이라고 힐난했다.

 

"법원 내 비공식적인 계급ㆍ서열구조가 상존"

 

김 교수는 "이런 고질적인 법관동일체의 원칙을 생각할 때 의문스러운 것이 과연 이번에 문제된 사태가 전혀 반복적이지 않은 일회적ㆍ우발적인 사건에 지나지 않느냐 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하게 상급법원이나 상사에 의한 재판개입이 종종 있어왔을 것이라는 게 토론자의 추측"이라 의문을 표시했다.

 

이어 "다만 그동안 표면화되지 못했거나 법원 바깥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때로는 사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법관의 재판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줄곧 존재해 왔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이상 이런 부당하고 위헌적인 재판개입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평판사들의 의지가 만천하에 알려져, 앞으로는 적어도 노골적인 영향력 행사가 이루어지지는 쉽지 않게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노골적인 영향력 행사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법정책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은밀한' 영향력 행사"라며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시달되는 각종 사법정책 중에서 재판업무에 관한 것이 있다면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법원행정처를 겨냥했다.

 

그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법부 내에서 법관동일체 원칙이 들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근절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며 "어떻게 하면 법관들 사이에 사실상의 계급구분, 서열구분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사법부 조직ㆍ인사 관행은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며 "법관 개개인의 고양된 지위가 실질적으로 보장될 때에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맡은 바 재판업무에만 평생 동안 충실할 수 있는 법관상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그럼으로써 민주적 법치주의는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따라서 사법부가 고질적 사법시스템을 혁파하고 판사들이 정년까지 소신껏 재판을 할 수 있는 그런 법관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사법부에 일침을 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김도현, #사법부, #신영철, #로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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