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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내게도 첫사랑이 있다. 그런데 그 감정이 사랑인지, 뭔지도 모르고 지나가버려, 아쉽고, 쑥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으로 남아 있다. 그 때 나는 너무 어렸고, 그 감정에 대해 누군가에게 의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거리며 앓았었다. 그 덕분에 후에 찾아 온 사랑은 바로 그 순간 알아챘는지 모른다.

 

열세 살 아직 어리기만 한 초등학교 6학년. 동재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왔다. 부모세대인 우리들과는 너무나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하지만, 생채기를 남기고 풋사과 같은 익지 않은 맛으로 아릿함을 느끼게 해 준 느낌은 똑같았다. 열세 살에 찾아와 열네 살에 안녕을 고한 동재의 첫사랑 이야기는 어떤 색깔일까?

 

손에 들고 하루 종일 천천히 할 일 하며 읽은 책. 하지만 손에서 놓을 수는 없어, 아침 8시부터 붙잡은 책을 그 날 오후 8시가 되자 모두 읽었다. 달라진 세대를 느낄 수 있는 표현. 읽으며 올 해 동재와 동갑인 울 집 장남 똘망이를 생각했다. 4학년 이후로 여자친구를 데려오지 않는 아이. 똘망이도 좋아하는 반 여자아이가 있을까?

 

"어이, 아들. 니들 보건교육시간에 몽정에 대해 배웠니?"

"응? 몽정이 뭔데?"

"몰라? 보건시간에 벌써 교육했다고 하시던데, 선생님께서. 이 책 주인공 친구가 몽정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번 읽어보셔."

 

똘망이에게 책을 준 시간은 오후 8시 넘은 시각. 평소 아홉시만 되면 잠자리에 드는 아이가 그 책을 들더니 밤 11시40분이 될 때까지 말 한마디 없이 읽어나갔다. 그리고는 머리맡에 두고서 잠을 잤다.

 

다음날 소감을 물으니 간단한 한마디 "나도 동재처럼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아. 그리고 그렇게 행동 했을 것 같고." 동재가 첫사랑에게 불러 주는 FT아일랜드의 <너를 사랑해>는 똘망이도 좋아하는 노래다. 그리고는 그 책에 대해 모자간 대화는 없다. 하지만 이금이 작가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똘망이에게 전해졌다는 생각이다. 엄마랑 아빠랑 나누기 힘든 대화. 정체가 뭔지도 모르고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감정들. 동재를 통해서 느낀 그런 것들이 열세 살 똘망이에게 이제 청소년기로 들어가는 터널 속에서 작은 나침반이 돼 주리라 생각한다.

 

주인공 동재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부모님은 이혼했다. 엄마는 스페인으로 유학 갔고, 아빠는 엄마보다 더 젊은 은재엄마랑 재혼했다. 은재는 동재보다 한 살 더 어린 여자아이다. 동재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6학년 2학기 첫 날 전학 온 연아를 보고는 첫눈에 반해버린다. 그러나 동재네 반에는 아역배우 찬혁이가 있었으니... 찬혁이와 연아는 공개커플이 된다. 동재는 마음 속으로만 연아를 좋아하는데 친구 민규 때문에 사건이 생긴다.

 

민규는 몽정을 하는데 하필 그 대상이 바로 연아인 것이다. 연아에게 별 생각 없던 민규는 꿈 때문에 연아를 좋아하게 되고, 민규가 얻게 된 연아와 찬혁이의 러브장 때문에, 일본으로 촬영을 떠난 찬혁이에게 연아는 결별을 선언한다. 그리고 연아와 찬혁이가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동재는 연아와 둘만의 연인 사이를 유지한다.

 

사실 초등학생들의 연애라니... 몇 가지 사실들(십만 원이 넘는 데이트 비용, 투투데이, 커플링)이 책 속 몰입을 방해했다. 그런데 아마도 그것은 세대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금이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초등학생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들의 성장하는 마음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종류의 사랑이야기. 동재와 연아, 연아와 찬혁, 민규와 은재, 동재엄마와 스페인 사람 로드리게스, 은재엄마와 동재아빠,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 옆집 할머니와 고양이.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랑을 통해서 사람들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처를 받기도 하고, 다시 위로를 받고 상처를 치료하기도 하고. 관계가 어색해졌다가 좋아지기도 하고, 좋아졌다가 단절되지만 상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동재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연아에게서 '글자 하나하나가 불화살이 돼 심장에 박히는 것' 같은 문자이별통보를 받는다. 동재아빠는 실연당한 아들을 위해 위로를 한다.

 

"네 엄마랑 헤어지고 나서 아빠가 깨달은 게 있는데 사랑은 자전거 타는 거랑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전거 탈 때 계속 페달을 굴리지 않으면 넘어지잖아. 사랑이 제대로 유지되게 하려면 끊임없이 페달을 굴리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지."(본문 내용)

 

눈물을 흘리는 동재에게 아빠는 더 멋진 말로 위로해 준다.

 

"앞으로 살면서 넌 많은 사랑을 하게 될 거야. 그 때마다 온갖 감정들을 경험하겠지. 아빠는 우리 아들이, 그 사랑들을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랑이 널 성장시켜 준다면 그 사랑은 어떻게 끝나든 해피엔딩이라는 걸 잊지 마라." (본문내용)

 

열네 살 중학생이 된 동재가 찬혁이와도 헤어진 연아를 길 건너편에서 만나 인사를 한다.

 

"안녕, 내 첫사랑!"

 

마음 아픈 동재이야기지만, 분위기는 밝고 명랑하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동재 옆에 동재아빠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초반에 동재아빠에게 가졌던 부당한 감정은 동재를 따라다니며 감정이입이 되어 끝날 때쯤엔 최고로 멋진 아빠처럼 다시 보게 된다. 동재가 잘 자랄 수 있게 마음을 쓰다듬어 준 동재아빠에게도 감사를 보내며, 첫사랑에게 마음의 인사를 하는 동재를 살포시 안아본다. (똘망이에게 남편과 나도 그런 부모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덧붙이는 글 | <첫사랑>/이금이/푸른책들/9800원

교보문고 리뷰란에도 올립니다.


첫사랑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푸른책들(2009)


태그:#첫사랑, #이금이, #푸른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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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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