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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세계의 권력자가 가상세계의 권력자를 현실세계로 끄집어내는 판타지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행위이다. 대한민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가상세계에 거주하는 모든 영혼, 즉 지구상의 모든 네티즌, 자유라는 우주적 질서인 가상세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 '작가의 말' 몇 토막

 

20일,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무죄를 선고 받고 캄캄한 철창을 벗어나 따스한 봄 햇살을 온몸으로 맞았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검찰은 낡아빠진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로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란 항목을 내세워 곧바로 항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이미  재판부에서 "박씨가 허위 글을 올릴 의도는 물론 공익을 해할 목적이 모두 없었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마당에 검찰이 또다시 "재판부가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는 핑계를 내세우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억지'인 듯싶다. 물론 검찰로서는 이번 무죄 판결로 잘 나가는 검찰의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진 것에 대해 반발을 할 만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여러 가지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 박씨가 글을 게재할 당시 허위성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 설사 허위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박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은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미네르바 박씨는 지난해 7월 30일과 12월 29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경제 토론방에 '환전 업무 8월 1일부로 전면 중단', '정부, 달러 매수금지 긴급공문 발송' 등의 글을 올린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박씨가 진짜 미네르바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시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짜 미네르바는 온라인 속에 수없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네가 우리가 모두 미네르바가 될 수 있다

 

"온라인에서 미네르바를 제거한다고 해서 미네르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상세계는 복제기능을 가졌다. 미네르바를 복제한 수많은 아이디가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또 그가 만든 전설을 잇기 위해 수많은 도전자들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네가 우리가 모두 미네르바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 소설 <미네르바> 글쓴이 명운하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무죄를 선고 받고 오프라인 감옥에서 나온 가운데 미네르바라는 발자국을 따라가는 소설 <미네르바>(북포스)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작가 명운화가 쓴 이 소설은 미네르바로 낙인 찍힌 박대성씨가 구속되기 전에 나왔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온라인 세상에서 활동한 탓인지 오프라인에서 나온 소설 <미네르바>는 한동안 인터넷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20일 미네르바 박씨에게 무죄가 선고돼 석방되면서 소설 <미네르바>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차림표에 다시 뜨겁게 타올랐다. 왜? 이 소설은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 명운하가 미네르바라는 한 인터넷 논객의 글이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를 막아냄으로써 국가적 재앙을 막아낸 현실을 지켜보며 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인물과 그 사건을 소재로 쓰여졌다. 물론 상상 혹은 추리란 액세서리도 달았다. 하지만 이 소설과 이번 박씨 사건이 마치 복사를 한 것처럼 너무나 닮아 있어 다시 한번 이 소설을 차분하게 읽어 볼 필요가 있다. 미네르바 박씨와 이 소설을 쓴 명운화씨 상상력과 추리력이 쌍둥이이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는 패배자, 온라인에서는 완벽한 K

 

"래호는 현실에서 패배자였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완벽한 K였다. 01001011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처음에는 래호는 물론 고수 인터넷객 모두가 과연 자신들이 국가정책을 바꿀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눈치였다. 단지 온라인의 힘으로 물리적인 힘을 갖고 있는 오프라인에 영향력을 끼쳐 현실세계를 물리적으로 변형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 176쪽

 

이 소설은 미네르바가 활동한 여러 가지 사실을 그대로 쓴 것 같지만 차분하게 읽어보면 작가 스스로, 혹은 온라인에서 움직이고 있는 누리꾼  모두가 미네르바이다. 미네르바로 낙인 찍힌 박씨가 이명박 정부가 물밑으로 깔아놓은 온라인 그물망에 걸렸다가 이번에 겨우 빠져나오긴 했지만 이 소설 또한 이미 '그렇게 될 것'이란 매듭을 지어놓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이 소설 줄거리를 몇 줄로 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개인 경제연구소를 가지고 있는 다산경제연구소 소장 김래호가, 미국의 제안에 따라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하려는 산업은행의 움직임을 알게 된다. 래호는 이를 인터넷에 '지혜의 여신'이라는 아이디를 이용해 자신의 주장을 담은 칼럼을 싣는다.

 

미국 금융계를 주름잡고 있던 유태인 금융그룹은 일본에 지원을 부탁한다. 일본은 유태인그룹을 지원하는 대가로 '노란토끼'를 한반도에 상륙시키는 것을 허락받는다. 일본은 노란토끼를 한국에 상륙시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래호를 꼬드기기 위해 미시마 츠요시를 한국으로 급히 보낸다.

 

하지만 미시마 츠요시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일본은 래호를 없앨 계획을 세운다. 이때 한국에서는 인터넷 논객으로 국민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지혜의 여신'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경찰은 '지혜의 여신'이라는 누리꾼을 찾기 위해 수사망을 점점 좁혀 오고, 일본은 래호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검찰 인식은 "전생의 잘못을 현생에서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이번에 알게 됐다. 경제적 가치 때문에 왜 기본권이 침해 받아야 되느냐? 앞으로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 대해서 글을 쓸 것이다. 내가 누리는 권리가 얼마나 중요성이 있는지 그것이 왜 도전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한다. 데모나 시위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아성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 미네르바 박대성씨

 

이번에 무죄를 선고 받고 나온 미네르바 박대성씨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소설 <미네르바>가 다시 떠오른다. 왜냐하면 미네르바 박씨가 갓 구속되자마자 나온 이 소설 속에 박씨의 말들이 합창처럼 고스란히 메아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박씨를 감싸주기 위한 소설이라고 여겨서는 큰 코 다친다.

 

이 소설은 "절망의 시대, 그때 미네르바는 우리들의 희망이었다. 1592년 조선에는 이순신이 있었다. 2009년 대한민국에는 미네르바가 있었다"라는 작가 명운화씨 말처럼 이러한 어려운 시대에는 누구나 이 시대를 향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미네르바가 될 수 있고, 누구나 희망 찬 미래를 위한 미네르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 명운화씨는 이번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건에 대해 "현실세계는 결코 가상세계를 지배해서도 안 되고 지배할 수가 없다"라며 "가상세계의 인격과 현실세계의 인격을 동일시하는 것은 가상세계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전생의 잘못을 현생에서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못박았다.

 

작가 명운화는 부산에서 나오는 일간지<국제신문>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MBC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다. 2008년 10월에는 <바츠 히스토리아>라는 가상세계 전쟁사를 다룬 논픽션을 펴냈으며, 이 책의 저자로 '퓨처토피아'라는 BBC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미네르바의 생존경제학 -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미네르바 박대성 지음, 미르북스(2009)


태그:#미네르바, #명운화, #북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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