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 많은 청도의 여정 길은 계속 이어진다.
특이한 멧돼지 석탑청도 풍각면 덕양리에서 대산사로 오르는 산길은 뱀의 모양과 아주 흡사하여 산의 형상 때문인지 제비알을 훔쳐가는 뱀이 많았던 것 같다. 이 뱀을 쫓기 위해 대산사 경내에는 특이하게도 들어서면 정면에 기단 지대석을 멧돼지 형상으로 만든 돼지탑을 조성해 놓아 눈길을 끈다. 가자마자 이 탑을 먼저 보게 된다. 기단 네모진 자연석 모서리에 멧돼지를 조각했는데 부릅 뜬 눈과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 코구멍이 매우 해학적인 표현이다.
후대에 조각한 듯 하나 한참을 보아도 재미난 형상이다. 사찰 안내문에 의하면 1930년 일제강점기에 야습한 도적 떼들의 방화로 법당은 사라지고 불상은 반소된 것을 봉안해오다 주변 땅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00년 여름 사찰경내 밭에서 발견된 천수관음불상 수인에서 이 절의 전설과 내력을 대변해 준다고 한다.
주 건물은 원통전으로 작은 크기의 조선시대 관음보살상을 모셨고, 칠성각과 산신각 용왕단이 뒤로 있다. 용왕단은 다소 특이하게 내부에 나무로 만든 위패를 모시고 있다.내부 벽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 덕양리로 내려오면 마을길에 선돌과 고인돌들이 보인다.
덕양동 삼층석탑덕양리마을 가양쉼터에는 연자방아와 1972년 마을 주민들이 옮겨세운 삼층석탑이 있다.
단층기단인지 이중기단인지 확인이 어려우며 지붕돌은 4단 받침과 2단괴임을 각출되어 있다. 풍탁을 달았던 구멍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통일신라 후기 석탑으로 추정되며 주변 큰 나무와 잘 어울린다.
청도합천리석조아미타여래입상이제 화양읍 합천리에 있는 불상을 찾았다. 길가에서는 잘 찾기 어려우며 마을 과수원 안에둘러싸인 전각 속에 있는 불신과 광배를 하나의 돌에 새긴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솟아 있다. 얼굴은 친근감을 주는 온유한 인상으로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은 가슴 위에 얹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옷자락을 가볍게 잡고 있는 모습이다. 광배는 타원형으로 굵은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여 새겼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9세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청도향교향교 내의 건물로는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 등이 있다. 청도 향교는 건물 배치가 일반적으로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가 아니라 대성전과 명륜당이 좌우에 놓여 있어 특이하다.
청도석빙고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며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가 4군데 남아있으며 우리나라 남아 있는 석빙고 가운데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계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진 바닥이 보인다. 주변은 잘 정비되어 있으며 근래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괘불지주가 옮겨져 있다.
주변은 다 성벽의 일부만 남은 청도 읍성인데 일부 구간은 잘 복원이 이루어져 정비되어있고 선정비들도 이제 한곳에 다 모아 놓았고, 한해 풍녕을 기원하는 도주줄다리기도 한곳에 전열하고 있다.
도주관과 척화비 청도읍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인 도주관이 있다. 객사 안에는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위패에 절하는 곳인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사신이 묵고 갈 수 있는 숙박시설로 되어있다.
입구에는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서양오랑캐가 침략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 밖에 없으나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니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라는 외세침략에 대해 강한 경고 문구가 비에 새겨진 척화비가 있다.
주변은 잘 정비되어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다. 주변은 꽃들이 가는 곳마다 피었으나 계속되는 산불로 인해서인지 산 위에 사찰들은 완전 통제이었다. 신둔사를 둘러 마애부도를 보려고 했으나 다음 기회에 인연을 닿아 만나길 기대해 보면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