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너무나 다양한 사람과 삶들을 만난다. 물론 직접적인 만남도 소중한 기억이지만, 간접 체험을 통하여 만나는 사람들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발견한 <10대 미혼모들의 이야기, 별을 보내다>(도서출판 리즈앤북)는 나에게 미혼모들과의 마음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책은 10대가 말하는 그들만의 성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대부분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엄마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다. 여중생에서부터 갓 스물을 넘긴 20명의 미혼모들이 직접 쓴 이야기는 그들의 사랑과 이별, 후회와 눈물, 임신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잔잔하게 때로는 충격적으로 그리고 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어린 엄마가 되어 부모로부터, 학교로부터, 친구로부터,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혼자 아파하고 견뎌야 하는 그들의 눈물이 담겨 있으며, 그 반면에 별을 보내는 마음으로 자식과 떨어져야 하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다시 살아야겠다는 희망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10대와 그 부모들이 함께 읽어야 할 성교육 지침서인 이 책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
http://www.sws.or.kr)에서 10대와 그 부모, 사회가 함께 읽어야 할 성교육 지침서로 기획됐다.
우리 사회는 1년에 4천여 명의 미혼모가 생겨날 정도로 10대들에 대한 성교육이 방치되고 있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미혼모에 대한 책임의 일부가 그들 부모와 사회에 있다면, 책은 10대 소녀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 부모와 사회에 던지는 강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모들이 자녀의 마음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고 들어주고 함께 고민할 때 더 이상 어린 엄마들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0대와 그 부모들이 왜 성교육을 공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야기 곳곳에 담겨 있다.
<10대 미혼모들의 이야기, 별을 보내다>에는 평범한 10대 소녀 20명이 어느 날 갑자기 어린 엄마가 된 이야기 20편이 각자의 수기 형식으로 실려 있다.
10대 청소년의 17%가 성경험을, 1년에 4천여 명의 미혼모가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10대의 성문화, 특히 10대의 임신과 출산은 이제 더 이상 쉬쉬하고 숨길 일이 아니다.
책에 나오는 미혼모들은 길에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여중고생들이다. 이 중에는 전교 석차 1,2등을 다투는 모범 학생도 있고, 정말 사랑해서 아기를 가졌다는 아이도 있다. 그 평범한 아이들이 자신들의 수기로 실수를 고백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실수란 단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아무런 준비 없이, 아무런 대책 없이 아이를 낳아 한 번도 자기 아기를 품어보지 못한 채 입양을 보내야 하는 것까지 포함된 실수를 말하는 것이다. 10대 미혼모들은 평생 남의 아기만 보아도 눈물이 핑 도는 아픔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소녀들이 겪기에는 너무 큰 상처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현실과 동떨어진 성교육 실정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임신 7개월이 되도록 임신 사실을 모르고 있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다. 미혼모들의 말에 의하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교육 강의를 들으며 뻔한 내용에 대부분 피식피식 웃는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과거에 결혼한 여자들이 알고 있던 성 지식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순결교육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인 피임교육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의 공교육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임신을 했을 때 좀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요즘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성교육이라고, 미혼모들은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미혼모들은 학교 성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의 체험을 통하여 비판하는 셈이다.
10대들의 이성 교제 장소와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부모인 기성세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10대들은 성적 호기심을 자극받고 또 실제로 그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PC방이나 인터넷 채팅, MT, 주유소나 마켓 등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이성 교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0대들은 이곳에서 분위기에 휩싸여 임신을 하게 된다.
책에는 10대 미혼모들이 부모로부터, 학교로부터, 친구로부터 버림을 받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냉혹한 현실에 당황하는 모습이 눈물겹게 그려져 있다. 특히 아기의 아버지인 남자 친구나 그 부모로부터 '누구 아이인지 모른다'는 냉소를 들을 때는 한번쯤 자살을 생각하곤 한다.
중3 때 임신을 하고 고1 때 출산을 한 주리가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은 이야기는 미혼모들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버림받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10대 소녀들은 한 번의 실수로 미혼모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임신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뱃속의 아기를 지워 버리는 요즘, 미혼모들은 차마 생명을 죽일 수가 없어 사회의 차가운 눈길을 감수하면서도 아기를 낳은 것이다.
미혼모의 대부분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별을 보내는 마음으로 입양 보내지만 그 중에는 스스로 키우겠다고 결심을 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미혼모도 있다. 미혼모들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작은 교훈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미혼모의 일차적 책임은 물론 미혼모 자신에게 있다. 하지만 10대 소녀들에게 어른과 똑같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고 다그칠 수는 없는 일이다. 미혼모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예방교육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나 사회뿐 아니라 부모들이 미혼모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더 이상 어린 엄마들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10대 소녀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 부모와 사회를 향한 외침이다.
<10대 미혼모들의 이야기, 별을 보내다>은 대한사회복지회를 거쳐 간 미혼모들의 수기로 엮어졌으며, 책 판매 이익금의 일부는 그들의 복지를 위해 쓰이고 있다.
대한사회복지회는 1954년 정부가 전쟁고아의 복지를 위해 설립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입양기관이다. 1965년 민간기관으로 이양된 후 '사랑의 손길 펴기' 운동을 전개하여 미혼모를 비롯한 소외 계층의 복지에 힘쓰고 있는 복지법인으로 전국에 6개의 지방 사무소와 17개의 시설을 가지고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미혼모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미혼모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