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선일보> 23일자 '노 서면조사, 불구속 기소 수순인가'
<조선일보> 23일자 '노 서면조사, 불구속 기소 수순인가' ⓒ 조선일보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 조사를 하자 <조선일보>가 발끈했다. <조선일보>는 23일자 '盧 서면조사, 불구속 기소 수순인가' 제목을 단 기사에서 검찰이 "수사 효율성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이유로 '선(先) 서면조사, 후(後) 소환조사'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지만 "법조계에선 자칫 노 전 대통령에게 검찰의 카드를 노출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뇌물 혐의를 받는 사람에게 서면조사가 동원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검찰의 서면조사를 비판했다.

 

숭실대 어느 교수의 "전직 대통령이라고 검찰이 너무 친절한 것 아니냐"며 "시험 치르는 사람에게 '커닝 페이퍼'를 미리 주는 경우도 있나"라는 말을 전하면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커닝 페이퍼 보여주는 선생님이 없듯이 피의자에게 서면조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조선일보> 생각이다.

 

또 한 전직 고검장은 "피의자 서면조사는 하나마나"라며 "'뇌물 받았나요?'라고 물으면 누가 받았다고 하겠나"고 했다면서 서면조사는 무의미함을 강조했다. 다른 전직 고검장도 "참고인도 아닌데 서면조사를 한다고?"라고 반문하면서, "차라리 인터넷 조사를 하는 게 낫겠다"는 말을 전했다. 전직 고검장들 말은 인용보도한 것이지만 서면조사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조선일보>가 발끈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조선일보>는 서면조사가 처벌보다는 '면죄부'를 주기 위한 절차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조선일보>는 "1994년 '12·12와 5·18사건'을 수사하면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서면조사한 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면서 공소권 없음(처벌할 수 없다)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서면조사 때문에 이듬해인 1995년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두 사람이 '반란 수괴'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되어 검찰의 오점으로 남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면조사가 아니라 직접 소환하여 조사했다면 '공소권 없음'이라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오점으로도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조선일보> 생각이다.

 

<조선일보>는 검찰에게 서면조사로 1994년 같은 오점을 남기는 수사를 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 또 법조인들 말을 인용하여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이번 서면조사 방침도, 검찰이 이미 노 전 대통령 '처벌 수위'에 대한 결론을 내려놓은 가운데 나온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려하고 있다'는 말이 참 재미있다. 한 전직 검사장 말에는 <조선일보>가 정말 바라는 뜻이 숨겨져 있다. 한 전직 검사장은 "이건 뭐 딱 봐도 불구속이 뻔한 거죠"라며 "대통령 구속한다고 국격(國格)이 떨어지나? 대통령 범죄 때문에 떨어지는 거지"라고 했다. 이 말은 진짜 <조선일보>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조선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놓고 "대통령 구속한다고 국격이 떨어지나?"라는 말은 빌어 싣고, 검찰은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자신들이 지지했던 이명박 후보의 'BBK사건' 서면조사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2007년 12월 4일자 <검찰, 'BBK사건' 이명박 후보 서면조사> 기사에서 "검찰이 서면조사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이 후보의 뚜렷한 범죄 혐의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고 했다.

 

 2007년 12월 4일자 <검찰, 'BBK사건' 이명박 후보 서면조사>
2007년 12월 4일자 <검찰, 'BBK사건' 이명박 후보 서면조사> ⓒ 조선일보

 

노무현 전 대통령 서면조사가 커닝 페이퍼니, 검찰의 오점이니, 불구속 수사라면서 불만을 표시한 <조선일보>이다. 그런데 1년 5개월 전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는 "뚜렷한 범죄 혐의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라고 했다.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조선일보> 보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특히 검찰 관계자가 했던 "만약 수사팀이 이 후보를 소환조사하겠다고 나섰다면 명백한 범죄 혐의를 찾았다는 뜻이지만, 서면조사를 했다는 건 그 반대의 의미"라는 말에 대해서는 비판 한 번 하지 않고 오히려 "혐의 확인보다는 주로 해명을 듣기 위한 차원의 조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면답변을 받고 나서 발표 때까지 추가로 조사를 하기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이 서면조사로 수사를 끝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라는 내용은 <조선일보>의 진짜 바람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면조사는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면서 발끈하고, 이명박 후보 서면조사는 혐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므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조선일보>를 보면서 참 언론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일보#노무현#이명박 # 서면조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