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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노인과 대화 중 부부가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또 그러면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농사지을 땅의 최소 면적이 얼마쯤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논 한마지기(200평=660㎡), 밭 한 마지기(100평=330㎡)면 최소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대답이 나왔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논 한마지기에서 쌀 세가마 이상 수확하면 두 노인네가 일년 동안 밥 문제는 걱정 없고 밭에서 갖가지 잡곡과 채소를 가꾸면 찬거리는 해결된다는 말이었다.

다른 아주머니들에게 물어도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옛날에는 자기 땅 한 평 없는 사람들이 동네 자투리땅만 일궈도 반찬은 해먹었다"며 "논 한마지기만 있어도 두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희망의 밥상>이라는 책을 발췌한 글을 찾아 읽었더니 1㏊(약3000평)에 감자를 심으면 20명이 1년을 먹고, 쌀농사를 지으면 19명이 1년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성인 남자가 한 끼니에 필요한 쌀의 양은 평균 150g라고 한다. 이 양을 1년으로 계산하면 약 160㎏(2가마)이다. 정확하게 계산하면 두 사람이 1년간 먹고 사는 데는 300평가량의 논이 필요하다는 촌 노인들의 이야기와 얼추 맞을 것 같다.

결론으로 부부가 최소한 생존하는 데는 많으면 400평(1,320㎡) 조금 적으면 300평(약1,000㎡)의 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논 200평, 밭 200평만 있으면 두 사람이 아쉽지 않은 노년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이제 잔디는 거의 자리를 잡았다. 잔디밭과 텃밭의 사이에 철쭉길이 멀리 보인다.
▲ 잔디밭과 철쭉길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이제 잔디는 거의 자리를 잡았다. 잔디밭과 텃밭의 사이에 철쭉길이 멀리 보인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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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두 사람이 400평(약1,320㎡)의 전답을 경작하는 데 품을 들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마을 노인들의 대답은 일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노부부가 함께 한다면 여름철에 반나절 정도만 투자하면 무리 없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마을의 박노인 내외는 논 800평, 밭 400평(비닐하우스 100평 포함)을 경작하는데 봄철 모심기와 가을철 벼 수확을 제외한 모든 일을 두 사람이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박노인의 부인은 72세의 나이임에도 틈만 나면 일당 3만원을 받기 위해 갖가지 일을 다닌다.

73세의 송씨 할머니는 논 1,000평, 밭 1,000평(남의 땅 500평 포함)의 농사를 직접 짓고 있다. 박노인네와 마찬가지로 논밭 가는 일과 모내기와 벼베기는 기계를 가진 사람에게 위탁하고, 주말이면 광주에 사는 아들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남은 일은 노인 혼자 다한다. 그래도 노인은 아직 할 만하다는 대답이었다.

82세의 광주댁이라는 할머니 역시 논 두마지기(400평) 밭 6마지기(600평)를 기계로 할 일은 남에 맡기지만 땅을 놀리지 않고 온갖 채소를 심어 장에 내다팔아 어려운 자식들에게 도움을 준다. "잘 가르쳐주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용돈을 바라느냐"는 말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노인이기도 하다.

동쪽의 붉은 철쭉길.
▲ 철쭉길 동쪽의 붉은 철쭉길.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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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지난 2년간 약 400평의 땅에 고추, 가지, 상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와 야콘, 고구마, 옥수수, 감자, 마늘, 양파 등의 작물을 심고 가꾸었는데 농사를 제대로 모르는 우리 부부의 경험에 비추어도 400평의 텃밭 정도는 두 사람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만약 시골에서 거주하면서 텃밭 농사를 짓는다면 아주 쉬엄쉬엄 즐기는 놀이가 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

지난 2년 동안 아내와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잔디밭 관리였다. 엉성하게 심은 잔디 틈새로 고개를 내민 풀을 뽑아내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아내의 뜨락'(아직 이름을 짓지 못함)은 제법 꼴을 갖추어 간다. 잔디는 잘 퍼져서 풀이 날 틈을 거의 메웠다. 텃밭 사이의 철쭉 길에는 붉은 색과 하얀 색 꽃이 가지런하고 텃밭에는 각종 채소와 감자와 강낭콩이 싹을 키우고 있다. 마을 사람들도 찾아와 보기 좋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혼자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앞에 보이는 것은 강낭콩 밭이다. 감자 싹은 아직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곧 야콘과 고추 등을 심을 계획이다.
▲ 텃밭 전경 앞에 보이는 것은 강낭콩 밭이다. 감자 싹은 아직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곧 야콘과 고추 등을 심을 계획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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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을 희망하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귀촌은 많은 것을 버려야하는 결단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얻는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다. 너른 땅의 지주가 되겠다는 욕심, 그림에 나오는 부자들의 별장 같은 집을 갖겠다는 욕심만 버린다면 텃밭농사는 가장 생산적이면서 활기있는 노년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조금 익숙하지 않는 노동이 요구되지만 노동은 안전한 식탁을 만들고 가족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텃밭 농사는 부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화합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고정 연금을 수령하는 분들이 귀촌한다면 개인의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지역 사회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은퇴자들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지역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의 머릿속에 든 글도 배워서 풀어먹고 사는데 마을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만 가도 되는 농사일이 어렵겠느냐?"고 했던 마을 노인의 말을 다시 새긴다.

지금 살 만한 시골의 땅값은 500평이라고 해도 대도시의 고급 중형 아파트 방 한 칸 값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참고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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