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MBC <세바퀴>.
MBC <세바퀴>. ⓒ MBC

나는 아줌마 10년차임에도 스스로 아줌마임을 자각하고 사는 편은 아니다. 반찬값을 한푼이라도 더 깎으려는 악착스러움도 없을뿐더러, 버스에서 몸을 날려 자리를 비집는 '용기'도 아직은 부족하다. 자녀교육에 발품을 팔기보다는 내 일에 더 바쁘고, 여성지보다는 영화잡지나 추리소설을 더 즐겨본다. 재테크나 주식같은 것도 도무지 관심밖이다. 또래 엄마들에 비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도 참 '아줌마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다. 바로 MBC <세상을 바꾸는 퀴즈>(이하 세바퀴, 매주 토요일 밤 10시35분)를 볼 때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구른다. 어느 때는 눈물까지 흘린다. 언젠가는 서울에서 전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세바퀴>를 보면서 손뼉까지 치며 웃어댔다. 옆자리에 있던 긴 생머리의 아가씨는 내 모습을 이상하게 보았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아줌마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세바퀴>는 재밌다. 재밌는 이유는 단 한가지, '완전 공감'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 사람이면 겪을법한 애환, 에피소드, 말못할 고민거리를 맛있게 버무려서 낸다. '저런 고민을 나만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구나' 싶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의 이야기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주 평범하고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다.

여기에 출연진들의 구성진 입담, 솔직하다 못해 자칫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폭탄발언, 돌발상황까지 곁들여져 '쇼'로서의 재미도 적절하게 안겨주고 있다. 너무나 원색적이고 거침없는 이야기에도 깔깔 웃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도 적잖이 놀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인걸.

심지어는 분위기 적응을 못하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는 아이돌스타를 보는 것마저 재밌다. TV를 켜면 항상 무대의 중심이 되었던 그들이 이 자리에서는 조연이 되고 마는데, 그 모습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아가씨는 '우결', 아줌마는 '세바퀴'?

<세바퀴>와 관련해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회사 동료 중에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은 언니가 있다. 그녀는 아직 미혼이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우린 가끔 전날 본 TV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는 주로 '우결(우리 결혼했어요)'이었고 나는 '세바퀴'였다.

"세바퀴, 나는 그거 정말 재미없더라. 뭐가 재밌다고 웃는지 모르겠어."
"재밌잖아. 삶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얼마나 진국이야. 뼈속깊이 우러나오는 게 꼭 사골국같아."
"어유~ 거기 출연자들이 너무 말을 막하더라. 걔네들 왜 그렇게 독하니? 같은 여자라도 좀 무섭더라. 소민씨가 세바퀴 좋아한다니까 의왼데. 우결봐. 얼마나 재밌어. 아~ 나도 나중에 그렇게 살고싶어. 알렉스같은 남편 만나서 서로 맛있는 거 해먹이고 노래도 부르고… 알콩달콩."
"언니. 나중에 결혼하고 이야기합시다. 끝."

그 때 알았다. <세바퀴>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이의 적고 많음에 따른 것이 아니라 결혼의 유무에 달렸다는 것을. 아마 미혼인 그 언니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머리로 이해는 했다하더라도 적어도 재밌지는 않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어지간한 비위 가지고는 볼 수 없는 게 <세바퀴>다. 체면이나 점잔, 우아함은 일찌감치 벗어던지고 솔직하게 툭 까놓고 이야기하자는 것이 <세바퀴>의 시작이다. 짐짓 아닌체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불편한 방송이다(물론 체질상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막나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말을 좀 독하게 한다 싶을 때도 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찐한'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좀 중장년층의 시청자에겐 이런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배출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3월 아예 방송시간을 밤 시간대로 옮겼다. 중장년층을 위한 배려다. 토요일 밤, 그 시간만큼은 중장년층을 위해 자리를 좀 내어줄 수 있지도 않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막말을 하라는 의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주책스런 <세바퀴>, 그럼에도 밉지 않은 까닭 

예전에 <세바퀴>를 보면서 내가 가장 불편했던 것은 이정용의 가슴근육쇼에 열광하는 주책스런 아줌마들의 모습이었다. 아줌마라고 다 몸짱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되려 부담스럽다. '아줌마라고 다 저러나? 아가씨들이 더 열광하는 거 아냐?' 아줌마를 몸짱, 얼짱에 목마른 존재처럼 표현한 것이 굉장한 불만이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이정용의 식스팩(Six Pack)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이 분명 있을 거야. 그들의 열광에 김지선, 이경실이 대신 공감해줬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열광은 열광일뿐. 열광했다고해서 그녀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렇듯 주책스럽긴 해도 <세바퀴>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제는 너무 들어서 식상하기까지 하지만 박미선이 남편 이봉원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그 체념섞인 어조는 웃음을 안겨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마음고생을 미루어 짐작해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웃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시청자도 그것을 알고 있다. 마음은 짠해도 그저 웃을 뿐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세바퀴>가 주는 웃음이란.


#세바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