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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을 뒤로한 채, 한적한 공원에 여행용 트렁크며 박스들이 분주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들을 지휘하는 자에게 돗자리는 필수품이며, '지휘자'의 기준은 남녀노소, 직업불문이다. 옷에서부터 참고서, 머리핀, 신발, 각종 가정용품과 소품까지. 웬만한 건 다 있는 '대전시민벼룩시장'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성별, 연령, 직업불문의 사람들 모이다

 

봄날 같지 않은 매서운 바람과 손이 시릴 정도의 추위에도 25일 오후 1시, 오전만 해도 한적했던 갈마공원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접수처에서 번호표와 기부봉투를 받아 지정된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각자 가져온 물품들을 세련되게, 그리고 개성있게 펼친 후 가격을 매기면 장사준비 완료. 참고서와 인형, 필통을 들고 나온 초등학생부터 옷가지를 들고 나온 할아버지까지 벼룩시장은 성별, 연령, 직업불문의 다양한 사람들이 판매자 혹은 구매자가 되는 특별한 시장이다. 

 

 

 살아있는 경제교육의 장

 

 초등학생 사장들이 물건을 팔고 있는 진귀한 현상. 자발성에 기초해 진행되는 벼룩시장의 분위기는 어린이들의 톡톡 튀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현장이다. 이곳에선 흥정을 붙이는 깍쟁이 소녀와 맘씨 좋은 아줌마와의 관계도 나빠질 리 없다. 파는 사람은 돈 벌어서 좋고, 사는 사람은 필요한 물건을 싸게 사서 좋다.

 

물건을 사고파는 아이들에게 벼룩시장은 직접 가격을 매기고 물건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돈의 소중함을 알게 한다. 다양한 연령층과 부대끼며 흥정을 해 물건 값을 깎는 과정에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배운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경제교육의 장이다.

 

이날 참여한 이채현(갈마초·3)양은 "물건은 직접 팔아보는 게 재밌고, 사람들이 내가 가져온 물건을 사는 게 신기해 다음에 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장진영(갈마초·4)양은 "벌써 9000원이나 벌었어요. 내손으로 번 돈이라서 더 소중하고 갚진 것 같요"라고 이날 참가 소감을 전했다.

 

 

'재활용품=고물'이란 인식은 no!no!

 

 벼룩시장이란 중고품을 파는 만물(萬物)노천시장이란 뜻으로 19세기 말부터 사용되어왔는데, 벼룩이 들끓을 정도의 고물을 판다는 의미에서 생긴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 고물들도 시대에 맞게 진화했다. 새것이지만 작아서 못 입거나,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는, 혹은 정성들인 수공예 물품들, 깨끗한 참고서와 음반 등 벼룩시장에 진열된 물품들은 고물은 더이상 고물이 아니다.

 

이날 벼룩시장에서 사람들의 손을 거친 재활용품들은 사람들을 기분좋고, 풍요롭게, 그리고 깨닫게 했다. 딸과 함께 나온 구경나온 김정은(갈마동)씨는 "과거에는 누군가 썼던 것을 내가 다시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오늘 벼룩시장에 참가하고 나서 재활용에 대한 부정적인식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며  "다음번 벼룩시장 때는 안 입는 옷가지를 팔아보고 싶다"고 밝혔다.

 

 

단, 수익 액의  10%는 기부해야

 

 이날 판매자들은 물품의 디스플레이에서부터 가격까지 모든 걸 주관하는 사장님이 될 수 있다. 단, 수익 액의 10%만 기부하면 된다. 기부문화가 자리 잡히지 않은 우리나라에 기부문화를 확산시켜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다. 기부된 기금은 벼룩시장 운영준비에 재사용되고, 일부는 복지관이나 보호시설 등에 기부된다. 이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천원, 2천원을 기부하는 아이들의 손은 빛났다. 그들의 마음도 뿌듯했으리라.

 

 사회전반에 나눔과 참여라는 성숙한 시민문화를 확산하는데 기여할 '대전시민벼룩시장'은  3년 전 첫발을 내딛어, 현재는 자발성에 기초한 시민들과 함께하는 '시민참여의 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장은 5, 6, 10, 11월 넷째주 토요일에 갈마공원에서 열리고, 서구를 시작으로 각 구마다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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