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드기 말려 죽이는 날26살의 김씨는 계속되는 화창한 날씨에 새벽부터 일어나 이불 빨래를 했다. 오늘의 날씨는 맑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 들어 황사도 없다. 그러므로 모처럼 고시원 옥상에 빨래를 널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뭔가 성이 안찬다. 길가에 활짝 핀 봄꽃들은 계절이 바뀌었다고 합창을 한다. 결국 김씨는, 계절 맞이 대청소를 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혀 침대 매트리스를 건조시킬 계획을 세웠다. 창문도 없는 토굴 같은 고시원 방에서 수분을 먹고 자란 매트리스는 진드기들에게 천국이 되어줄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김씨는 요즘 들어 심해진 피부 알러지 때문에 더욱 결심을 굳혔다. 내 오늘은 이 진드기들을 학살하고야 말리라.
시간은 오전 7시 30분. 일광 건조의 황금시간대를 놓치지 않으려면 계획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 침대 다리를 분해하고 비좁은 복도로 매트리스를 끌어내어 낑낑대며 옥상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옥상은 6층. 고시원 맨 아래층에 거주하는 김씨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는 순교자의 기분으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전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에 한 끼 정도 먹고 버티는 것이 예사인 김씨. 헉헉 쓰러질 것만 같다. 이대로는 안 될 성 싶다. 잠시 숨을 고르며 총무가 거주하는 관리실을 노크한다. 몇 번의 노크 끝에 누구인지를 묻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CCTV로 김씨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총무의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마지못해 흘러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자신에게 닥쳐올 재앙을 예감해버린 것이 분명했다.
이것 좀 같이 옮기자는 말에 고시원 총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미간을 찌푸린 채 기나긴 침묵을 만들어냈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은 주말 아침부터 뜻하지 않았던 고난과 시험 앞에 갈등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잔인한 김씨. 눈앞의 갈등을 무마시키며 재차 옥상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이로써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하고 잠시 눈을 붙이던 총무는 불만에 가득한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으로 김씨에게 무언의 항의를 하며 같이 옥상으로 향했으니.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짊어진 무게가 너무나 괴로워 마치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발걸음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앞장 선 김씨마저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 쪽팔림을 자초할 수는 없는 일. 비틀거리는 자신을 추스르며 마음속으로 외친다. 한걸음 더, 한걸음 더!
그렇게 두 사람은 옥상 문 앞까지 간신히 도착하여 매트리스를 내려놓았다. 이제, 저 문만 열면 된다.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 김씨. 철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혀있던 철문이 열리자 매트리스를 짊어진 두 사람에게 찬란한 햇살이 비치었다. 아아아 벌써부터 태양은 따사롭게 떠올라 긴긴밤 추위에 떨던 도심의 사물들을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역경의 계단을 오르며 온갖 추악한 욕설로 마음을 더럽히던 두 사람의 영혼은 자연의 은총으로 정화되었으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매트리스를 번쩍 들쳐 매고 따사로운 양지를 찾아 나섰다. 그렇다. 그 어떤 역경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추운 겨울을 녹이는 봄이 올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던 두 사람은 음침한 소굴로 스며드는 갈 곳 없는 빗물처럼 다시 어두침침한 고시원 건물로 들어갔다.
20대의 봄날햇살 따사롭던 지지난 주말, 일광 건조 후 방 안으로 가져온 매트리스에 지독한 흙냄새가 진하게 배어버려 이틀 동안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동안 불어온 황사 먼지가 옥상 바닥에 쌓여 있었던 것이다. 두통이 심하면 임의대로 진통제를 먹지 말고 반드시 의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아야 한다는 뉴스가 왠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봄은 오는 것일까. 계절이 바뀌려하며 만물이 생기를 얻어가는 시기에 여기저기서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물가는 너무 올라서 할인마트에 가도 주눅이 들어 쉽사리 먹을거리를 장만하지 못하니 삶의 에너지마저 줄어드는 느낌이다. 우울하기만 한 요즘이다.
요즘 들어 계속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다.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한 달 동안 먹은 식단이 문제일까(거의 쌀밥에 물만 말아서 하루 한 두 끼니를 먹어왔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맛집 관련 기사와 포스팅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는 길을 가다가 극심한 현기증을 느끼고 벽에 기대어 쉬길 여러 번. 마침 다른 회사에서 받은 원고료가 있어서 빈혈약을 사먹었다. (아마도 그렇겠지만)영양결핍일까, 싶어서 최근 일주일 동안 먹는 것에 나름 신경을 썼다. 하지만 금세 힘이 솟지는 않는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글이 안 써진다는 것이다. 글로 살아가는 사람의 가장 큰 고민. 뭐해서 돈 벌지….
마침 날씨도 우중충하게 비가 추적추적 내려주시고 눅눅한 방안에만 있기가 싫어서 밖으로 나섰다. 사실 비오는 날도 알고 보면 괜찮다. 빈대떡에 막걸리만 있다면. 아니, 라면도 비오는 날 얼큰하게 끓여 먹으면 왠지 더 맛있는 듯하다. 특히나 요즘의 빗소리는 감미로운 음악이며 공기 중에 퍼지는 물기 머금은 봄날의 향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오랜만에 도서관 근처 공원을 찾았다.
이끼가 들어찬 호수에 흐트러진 꽃잎들이 빗줄기 속에서 왠지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매연을 잠재우고 꽃향기와 풀내음이 퍼지는 것이 이런 날도 괜찮다고 느끼게 했다. 그래, 어쩌면 살아가는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리라. 될 수 있으면 감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빨래하기엔 좀 그렇지만. 우산을 써야하는 귀찮음이 생겼지만. 가뭄도, 건조함도 완화되고. 이제 또 햇볕 쨍쨍한 날이 올 테니까. 그런데... 왜 자꾸 한 숨이 날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스쿨 오브 오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