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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설 논란 끝에 다시 마이크를 잡은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씨는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방송 하면서 며칠간 많이 울었다"고 그간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교체설 논란 끝에 다시 마이크를 잡은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씨는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방송 하면서 며칠간 많이 울었다"고 그간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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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20일 오후 6시 무렵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 첫 전파를 타는 순간. "일주일에 한두 차례만 패널로 출연하겠다"는 김미화씨를 설득시켜 생방송 스튜디오 안으로 이끌었던 제작진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오락 프로그램 중심이었던 동시간 대에 국제 문제와 시사 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루는 생방송 프로그램의 편성 자체도 파격이었지만 코미디언 김미화씨의 섭외는 더한 파격이었다.

시그널과 타이틀이 나가고 10여 분이 지났는데…, 스튜디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안에서 김미화씨는 덜덜 떨고 있었고, 방송 진행이 원활하지 않았다. 23년간의 방송 경력에 이미 수많은 프로그램의 단골 진행자로 이름을 올린 김미화였지만, 시사 라디오 생방송에 대한 두려움은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청취자들에게 들켜버렸다. 

제작진은 김씨를 안심시키는 한편 "편하게, 아예 모른다는 상태에서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담당 PD가 토크백(생방송 스튜디오 안과 밖을 연결시키는 장치)을 통해 "자, 김미화씨 잘 이해 안 가시는 부분에서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한 번 더 넣어주시고" 등의 멘트를 전했다.

방송 초기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제가 또 까먹었네요…" 등 김미화씨의 멘트는 이처럼 '눈높이 진행'을 하려는 제작진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방송 컨셉트도 아예 '153cm 눈높이에서 바라본 프로그램'이라고 정하고 원고도 철저하게 김미화씨가 편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작성됐다.

정찬형 PD는 "두어 달 지나니까 서서히 진행에 익숙해지고 2년 정도 지나니 실력이 느는 게 보였다"면서 "김미화씨의 진정성이 목소리를 통해 청취자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눈높이 진행이 먹혀들었다. 프로그램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대중교통의 주파수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으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MBC 연기대상 라디오 부문 우수상을 받고 MBC 내 공헌도 3위, 전체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 중 청취율 6위, 진행자 선호도 최상위권 등 김미화는 이 프로그램을 MBC 대표 시사 프로그램으로 이끌어왔다. 진행도 매끄러워 얼마 전에는 김연아 선수 코치인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의 인터뷰도 깔끔하게 마무리했던 김미화의 출발은 이처럼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김미화에게 2009년, '잔인한 4월'이 찾아왔다. 느닷없는 '교체설'이 나돈 것이다. 라디오 모든 PD들이 그의 교체를 반대하며 제작 거부 투쟁을 벌였고, 결국 교체 논의가 백지화되는 진통을 겪었다.

이미 이전에도 '반미', '친노' 등의 딱지를 붙이는 언론사들이 있어 남모르게 가슴을 적셔왔던 그녀에게 닥쳐온 또 하나의 시련이었다. 그는 프로그램 하차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것보다 자신을 향한 한 인터넷신문의 공격에 더욱 분노하고 억울해했다.

지난 24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교체를 고민한 MBC에는 섭섭한 것이 없으나 한 인터넷신문과의 다툼이 있는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에 억울한 심정"이라면서 "나를 공격하고 왜곡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활발한 사회 참여에 대해서는 "소신과 양심에 따라 행동할 뿐이며 그것을 정치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냥 '웃기는 시사'로 해보겠다고 했는데..."

- 올해도 방송 생활 29년째다. 그동안 프로그램 진행을 몇 개나 했나?
"셀 수 없이 많이 했다. <TV 책을 말하다>, <TV는 사랑을 싣고>, <체험 삶의 현장>, <U토크쇼> 등 주로 TV를 많이 했다. 그런데 라디오하고는 별 인연이 없었다. KBS에서 황인용 선생님하고 1년 정도 진행한 게 다였다. 가끔 펑크 나면 대신 가서 해준 적은 있었지만…. 지금이 가장 길게 하는 거다."

- 2003년 가을 개편 앞두고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 섭외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었나?
"안 하려고 했다. 2시간 동안 매일매일 매여 있어야 하고, 이 시간이 코미디언한테는 행사가 많은 '프라임 타임'이다. 내 모든 걸 제쳐놓고 해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냥 '웃기는 시사', '꼬는 시사' 등으로 아이템을 짜서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슬슬 빠지려고 했다. 그런데 제작진에서 '나이 마흔 넘으면 사회적 책임감 느껴야 한다'고 설득했다. 사회복지단체 돕는 일을 많이 하는데 방송으로도 이런 따뜻한 뉴스를 전파하면 그들에게 훨씬 많은 용기를 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 한번 해 보자. 내 목소리로 인해 용기를 줄 수 있다면…'이란 생각이었다."

- '시사뉴스'에 대한 관심은 많은 편이었나?
"전~혀 아니었다. 신문도 그냥 큰 글씨만 대충 훑어보고 그랬다. 이 프로그램 시작하고부터 오가며 늘 시사프로그램 듣는다. 그래서 내 차에 타는 사람들은 싫어한다.(웃음) 다른 매체나 인터넷에서 논평 기사 등도 비교해 보고, '잘 한다'는 말을 듣는 시사 프로그램 앵커 멘트도 챙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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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방송 무렵에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다.
"요새는 방송 프로그램이 모두 자동으로 세팅되어 있다. 프로그램에 할당된 시간을 넘기면 그냥 끊겨버린다. 방송 초기에 수험생에게 용기를 주는 마지막 멘트를 할 때였다. '수험생 여러분들 용기 내시라고 박수 보내 드립니다'라는 멘트를 하려는데 '… 용기 내시라고 박…'에서 끊겨버리고 'MBC'로 넘어가더라. 광고 협찬사를 읽는 버릇 때문에 '주 이라크 대사관 연결합니다'를 '주식회사 이라크 대사관 연결합니다'라고 한 적도 있다. 처음에 실수 많이 했다."

- 어떻게 극복했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조심스럽게 다가가면서 또박또박 말하려고 그러면서 좀 진지해지려고 했다. 김혜자 선생님이 드라마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하면서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감정 이입시키는 것과 같이 나도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최선 다해 하고 싶고 잘하고 싶고 그랬다. 빠른 속도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내가 <개그콘서트>를 기획했을 때는 신인들만 데리고도 3개월 만에 히트쳤다. 이게 진짜 빠른 속도지…. 벌써 이 프로그램 5년 6개월 됐는데, 힘들었지만 고정 청취자들이 많이 늘었다. 내가 잘한 게 아니고 MBC가 갖고 있는 프로그램의 힘일 것이다."

- 이 프로그램 언제까지 하고 싶은가?.
"(브론즈 마우스를 언급하며) 벽에다가 입 모양 찍고 가야지 했다. MBC에서 라디오 진행하면 그 정도는 찍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내 바람일 뿐이고…." (브론즈 마우스는 10년 동안 방송을 진행한 사람에게 수여된다.)

"나는 정치인 아닌 대중 연예인... 색깔 논쟁에 단호하게 대응할 것"


- 김미화씨에게 '잔인한 4월'이었을 것 같다. 교체 가능성에 대해 들었을 때는 어땠나?

"솔직히 전혀 몰랐다. 인터넷 보고 알았다. PD들 (제작 거부해서) 들어오지도 않아서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설 수도 없고…. 참 애매한 입장으로 있었다. 그래도 방송은 계속 진행해야 하니까."

- 한 인터넷신문사와 사실 공방이 있던 상황 아니었나?
"그곳에서 사실이 아닌 보도를 했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법으로 가야 하는데, 그게 알려진 사람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다. 3년 넘게 고생했다. 솔직히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한 일간지에서도 '친노'라고 언급해 중재위 가서 정정보도 이끌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매체는 계속 '노사모 회원들과 함께 촛불시위 했다', 노무현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갔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 매체 대표에게도 7~8차례 전화해 사실이 아니니까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코미디언이라 우습게 보는 건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정치인이 아닌 대중 연예인이다. 정치 성향을 가진 신문에 내가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런데 정치적 잣대로만, 색깔 논쟁으로만 끌고 가더라. 지금도 공격이 계속되고 있고.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되겠다, 후배들이 또 억울하게 나처럼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호하게 대응할 생각이다."

- MBC PD들이 '김미화 교체 반대'를 내세우며 제작 거부를 했다. 그들은 '정치적' 이유의 교체라는 주장을 했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 "밖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PD들의 주장에는 동의하나?
"그런 복잡한 생각은 안 한다. 다만 그 매체와 시비가 붙었던 시기여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 얼마 전 <동아일보>는 한 칼럼을 통해 "신경민의 클로징 멘트보다 김미화의 진행이 더 편향적"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런 점은 신경을 안 쓴다. 그 글을 쓴 분의 시선일 수 있다. 무엇보다 내 스스로는 균형 맞추려고 무지 노력하고 있다. 아마 청취자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청취자가 쉽게 느낄 수 있게 균형감각을 유지하자는 게 내 주장이다. 그런 면에서 편향이라고 말하면 섭섭하다."

- 보수 성향 매체들이 김미화씨를 주로 공격하고 있다.
"난 좌우 잘 모른다. 신문들이 각기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인터넷매체처럼 심하게 하지는 않는다. 사실 아닌 기사를 그렇게까지 내보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포털사이트에 기사가 뜨면 사람들은 그걸 믿는다. '김미화가 노사모'란다. 환장하는 거다. 내가 정말 누굴 화끈하게 밀어나 보고 이런 소리를 들으면 소신껏 그랬다고 하겠다. 나는 내가 그동안 받은 국민들의 사랑에 보답한다는 생각 외엔 아무것도 없다. 내가 양심에 움직이는 대로 행동 했고 스스로도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다 용서하면서도 거짓말하는 건 혼낸다. 그런데 김미화를 거짓으로 다스리려 하고 있다. 이건 거짓 아닌가."

"교체설 돌고 나서 눈물 나더라... 굳게 마음먹고 방송하려는 데도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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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와중에 '교체설'에 시달렸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은데?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모처럼 아이들과 남편과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지내자고 마음 먹었다. 하늘이 나에게 또 다른 가치있는 일을 해보라고 기회를 주시나 보다 생각하면서 평정심을 찾았다. 그리고 마음으로는 다 버렸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더라도 울지 말자. 김미화가 내려가면 안 된다면서 PD들이 목소리 내줬다는 걸 담아가자. 나한테 남은 건 사람이다. 그래 이것도 잘 된 거야'라고 생각됐다. 배낭 메고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래, 결국 난 세상에 점 하나에 불과한 데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일도 있을 수 있지, 김미화 잘할 수 있어'라고 용기 주면서 지냈다."

- 결국 교체 않기로 결정 내려졌을 때는?
"남편이 '어디 가서 울었다고 하지 마라'고 했는데…, 그래도 운 것은 운 것이지…. 교체설이 돌고 나서 눈물이 나더라. 굳게 마음먹고 방송하려는 데도 슬펐다. 시그널이 나갈 때 특히 슬프고….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진행했는데…. 작가들, PD들 보기도 미안하고 남편보기도 미안하고 그랬다. 결국 교체 안 하기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모두에게 너무 고마웠다. 특히 PD들에게 고마웠다. 너무 고마워서 떡까지 돌렸다."

- 프로그램 절정기에 올라 있었을 때 교체 얘기가 나왔다. MBC에 섭섭하지는 않나?
"전혀 야속한 게 없다. 방송사는 방송사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을 거다. 제작비 문제일 수도 있고. 연기자는 그 방침에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인터넷신문사와 다툴 때 이 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방송사가 무슨 잘못이 있나. 더 좋은 MC를 쓰고 싶은 건 방송사의 당연한 입장, 섭섭한 생각 전혀 없었다."

- <세상은 그리고 우리는> 진행하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이 있나?
"재밌어야 한다! 쉬워야 한다! 청취자들이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 내가 결론 내리면 안 된다!"

- 엄기영 사장의 담화문을 보면 '일단' 봄 개편에서 제외됐다. 가을 개편에서 다시 논의될 수도 있는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25년 넘게 방송 진행, 하차를 반복하면서 어느 정도 맷집은 생겼다.(웃음) 두렵거나 나쁜 마음이 들거나 그런 건 없다. 거저 주어진 일, 나의 길 갈 것이다."

- 김미화씨를 공격하는 기사를 보니 인터넷기자협회가 개최한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화' 사회를 본 것에 대한 언급도 있던데?
"그게 가장 큰 것 같더라. 나는 대중 연예인이다. 내가 방송생활하면서 벌써 여섯 분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분들 거의 다 만나 봤다. 청와대 행사도 거의 다 했고, 이런저런 활동 때문에 초청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날도 기자들이 날 추천했다고 했다. 프로그램 진행처럼 말랑말랑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오라 해서 간 것이 아니다. 지금도 청와대나 이명박 대통령께서 뭘 해달라고 하면 난 도울 것이다. 내가 가진 재능이 부드럽고 재밌게 진행하는 건데, 그 재능을 써 달라는데 내가 왜 가지 않아야 하나. 정말 이런 부분이 답답하다."

- 촛불집회 참석하고 가끔씩 정치 연설에 나서게 된 배경은?
"소신껏 참석한 것이다. 난 지금도 전쟁 반대한다. 내가 유니세프 특별대표로 아프리카에 많이 갔었다. 지금도 한센병 환자들이 많고, 어린 아이들이 팔다리 끊어져서 구걸하고 있다. 모두 내전과 전쟁 때문에 그리 된 것이다. 그런 실상을 보고 나서 전쟁의 참상을 느꼈다. 뉴스에 전쟁 장면이 나오면 아이들은 '인터넷 워 게임 같다'고 하더라. 깜짝 놀랐다. 이라크 전쟁, 이라프 파병, 그래서 반대했다. 그때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데 내가 노무현을 도왔다고?

촛불 집회에 나간 것도 사실이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집회 때였다. 나도 딸만 둘이다. 나는 반미도 모르고 미군 철수론자도 아니다. 그저 소파 규정이 불평등한 것 같으니 바꾸자고 했다. 우리 아이들의 멀쩡한 목숨을 앗아 갔는데 우리가 용서할 수 있게끔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효순이 미선이 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다."

- 사회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 홍보대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몇 개나 되나? 한 50여 개?
"많이 늘었다. 지금은 90여 개 된다. 난 인생 살면서 특별한 계획을 세우며 사는 사람이 아니다. 조금 알려진 사람이고 내가 활동함으로 해서 단체에서 하는 일이 빛나고, 아무래도 보도도 좀 더 되고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이다. 내 재능 1%를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 하는 거다. 진정성 없는 단체는 1년도 못 간다. 좋은 일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단체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연락도 다시는 안 오더라."

"무조건 '코미디언'! 난 코미디언... 지금 눈물 흘리고 있다면 행복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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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욕심 나는 프로그램 없나 '김미화 토크쇼' 같은?
"난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살자 주의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없고,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뭐 '김미화쇼' 같은 것은 나이를 먹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지금 내가 진행하고 있는 시사프로그램 역시 힘을 굳히는 기간이라고 본다. 이런 것들이 나중에 토양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정치판을 간다든지, 이 프로그램 발판으로 뭔가를 도모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다. 다만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하면 코미디 아이디어 만드는데 꽤 도움은 되겠다 싶다. 역시 소중한 경험이다."

- 어떤 수식어가 제일 마음에 드나? 방송인 김미화? 개그우먼? 코미디언? 예술인?
(김미화는 이날 인터뷰 중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인터넷신문에 대한 대응, 사회 이슈에 대한 본인의 소신에 대해 묻자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 질문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코미디언'! 난 코미디언이다. 스스로 한국 코미디계 이끌어갈 대단한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이 얘기 꼭 써 달라. '코미디 PD들, 연락하라. 나 여전히 웃기다. 그리고 통한다.' 시사 프로그램 맡은 이후에 '(코미디 프로그램)하실 수 있겠어요?'라는 반응들이 많다.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시사를 무겁게만 보는 걸까. 코미디나 시사 프로그램이나 모두 주어진 역할 하는 거다. 김미화, 인생 U턴하지 않았다. 업그레이드되지 않았다. 난 코미디언이다."

- 청취자들에게 남길 말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청취자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듣기로는 청취자들이 인터넷에서 투표도 하고 청원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더더욱 미안하고 고맙더라. 그래서 더 잘하겠다는 생각, 빚진 마음이 있다. 내가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그건 행복한 눈물일 것이다."

모진 4월을 헤쳐 나오며 김미화는 꽤 오랫동안 걸리지 않았던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뜨거운 물을 연달아 들이키며 콜록 됐다. 기운은 영 빠져 있었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스튜디오로 들어간 김미화는 오후 6시 5분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고 힘차게 원고를 읽어 내렸다. 코미디 프로그램 PD들이 연락하지 않을 만했다.


태그:#김미화, #MBC, #세계는그리고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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