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모 사단의 동원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2박 3일의 훈련기간 동안 현역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기도했지만 왜 예비군이 욕을 먹는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된 시간이었다.
우선, 2박 3일의 훈련 가운데 첫날 일정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겠다.
(7:00) 동원 훈련 안내서에는 집결지 7:00까지 집합을 완료해서 부대로 이동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7:00가 지나서도 천천히 걸어오는 예비군들이 많았고 전세 버스는 7:00가 훨씬 지나서야 부대로 출발할 수 있었다.
(9:00) 부대로 도착후 중대 배치를 받고 보급품과 총기를 수령했다. 내무실은 누워있는 예비군들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예비군들의 자리도 군데군데 보인다.
(11:00) 점심시간 집합을 하겠다는 방송이 나왔다. 결국 오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13:00) 점심 식사 후 입소 신고를 위해 대대 연병장에 집합했다. 완전 군장을 메고 집합 한 것에 불만을 가진 예비군들도 보이고, 한창 더울때 입소식을 한다는 것에 불만을 보이는 예비군들도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관심하다. 13:30에 시작한 입소식이 불과 5분만에 끝난 입소식 후에 정신교육이 이어질 것이니 군장을 원위치 하고 다시 모여달라는 방송이 들린다.
(14:00) 연대장과 대대장이 주관한 정신교육. 대북관련 안보교육과 부대의 역할에 대한 정신교육이었는데 약 2시간 가량 이어진 정신교육은 생각보다 참여도가 높았다. 절반 정도는 잠들었지만 다른 훈련의 참여도에 비하면 상당히 성과를 보였던 교육이라 생각된다.
(19:00) 야간교육이 시작되었다. 원래 오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예정되어있었던 일정이었으나 오후 8시에 교육은 종료되었다. 1시간 가량의 교육도 연병장에 앉아있었던 것이 고작 예비군들은 각각 떠들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예비군 이대로 좋은가
이후 2일, 3일의 일정도 이와 유사했다. 전술훈련은 산에 올라가서 3시간동안 휴식을 취하는 식이었고, 주특기 훈련은 희망자만 총을 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여건이 불비하고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훈련 진행은 군의 입장에서도 전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예비군들에게도 역시 예비군 훈련은 시간 낭비라는 인식이 남게 된다.
훈련이 끝나고 28시간의 훈련을 이수 했다는 훈련 필증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훈련에 참여한 시간은 사격을 제외한다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솔직히 말하면 각종 이동시간을 제외하고 한시간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왜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마냥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가.
예비군을 이야기할때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것이 현대전은 예비전력이 승패를 가른다는 것과 북한군과 우리군의 전력 차이이다. 그 전력차이를 메우기 위해 60만의 현역보다 300만의 예비군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느슨하기만 한 훈련, 말 잘 듣지 않는 예비군들 이라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과연 군이 바라는 전력향상의 효과를 꾀할 수 있을까?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2박 3일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짧은지 알고 있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2박 3일이라는 기간이 마냥 짧기만한 시간은 아니다.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충분히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군복만 입으면 달라지는
멀쩡한 사람도 군복만 입히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점잖은 사람도 군복만 입혀놓으면 상의를 제대로 집어넣지도 않고 모자를 삐딱하게 쓰며 행동도 불순하게 변하기 쉽상이다. 실제로 평소에 바른 말을 쓰는 사람들도 군복을 입은 후 어렵지 않게 욕설을 사용하거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군대와 예비군이라는 집단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군복을 똑바로 입은 예비군들은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며, 교관이나 조교의 요구에 바로 응하는 예비군은 다른 예비군들의 눈총을 받는다. 4년간의 동원 훈련 기간 그리고 6년동안의 예비군 훈련 기간동안 대충 시간만 보내자는 식의 심리가 내면에 깔려있다.
우리 사회에서 군대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이미지 속에서 그것을 끝마친 사람들은 일종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이미 다 해보았기 때문에 난 이렇게 삐뚤어진 모습을 보여도 상관없다 혹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나는 너희(현역)들 처럼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들이 그것이다.
대안은 없나
물론 군대 내의 많은 이들이 예비군의 효율적인 운용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이 조금 필요한듯 하다. 2박 3일의 기간동안 각종 병기본 훈련부터 전술적 훈련 그리고 주특기 훈련까지 모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실질적으로 가장 필요한 사격이나 주특기 훈련 같은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어떨까? 모두 할 수 없다면 한두가지라도 확실히 하는 것이 차라리 나아 보인다. 그리고 어느 훈련 보다 참여도가 높은 편이었던 정신교육처럼 각종 시청각자료를 활용한 대체 교육 등을 제안해본다. 시간적 그리고 여타 다른 불비한 여건들 때문에 실행하기 힘든 거점 방어나 전술적 움직임에 관한 훈련은 시각자료들로 대체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대안들은 예비군들로 하여금 더 이상 훈련이 시간낭비다. 2박3일 동안 놀러왔다는 인식이 아닌 훈련을 보람되게 보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만한 훈련 프로그램이어야 할 것이다.
현역시절 예비군이 참여하는 동원 훈련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래서 현역 간부들과 조교들의 노력과 수고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나의 현역시절도 그러했듯이 시스템이나 체계가 바로 잡혀 있지 않으면 그들의 수고는 정말 헛수고가 되기 쉽상이다. 아니 시스템이 바로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수고가 더 늘어날 뿐이다.
닫혀있는 군대라는 집단이 얼마나 사회의 반응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곳인지 알고 있다. 예비군의 문제점이 지적될 때 괜히 동원 사단의 검열을 강화하고 각종 사열을 통해서 현역 장병들을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그런것들을 실시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럴 시간동안에 더 나은 훈련법, 더 효과적인 예비군 활용방안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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