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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평일의 헤이리는 적막합니다. 주말, 붐비던 사람들은 모두 도회지로 되돌아갔고 남은 것은 햇살과 푸름 그리고 고요뿐입니다. 저는 그 호젓함에만 몰입하기위해 바하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프렐류드(prelude)가 흐르는 오디오를 껐습니다. 봄을 닮은 듯한 현악기의 소리도 이 햇살 아래에서는 소음이다 싶었습니다.

음악이 멎자 제 귀에는 또 다른 소리가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여린 느티나무 잎에 햇살이 부딪는 소리였습니다. 화사하고 영롱한 빛의 조각들이 그 잎에 닿아 부서지면서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소리는 공기의 파동으로 전해지고 고막의 진동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마음으로 듣는 소리는 하나의 잡음도 끼지 않은 체 원음그대로 머리를 통하지 않고 가슴으로 바로 닿았습니다. 저는 결국 햇살을 가득 이고 있는 그 느티나무 잎에 넋을 잃고 홀린 듯 서재 밖으로 나왔습니다.

봄볕을 받아 황금빛을 내고 있는 모티프원의 느티나무 잎
 봄볕을 받아 황금빛을 내고 있는 모티프원의 느티나무 잎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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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등불. 이 갤러리의 주인이기도 하신 윤후명선생님은 먼저 시로 데뷔하신 분입니다. 지금은 시와 소설, 더러는 그림도 그립니다. 시인의 감성을 지니신 윤선생님은 소설의 제목도 시를 닮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별입니다. 그 별들은 각기 다른 노래를 가지고 있지요. 서로가 상대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일 때입니다. 느티나무 잎에 햇살 부딪는 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마음등불. 이 갤러리의 주인이기도 하신 윤후명선생님은 먼저 시로 데뷔하신 분입니다. 지금은 시와 소설, 더러는 그림도 그립니다. 시인의 감성을 지니신 윤선생님은 소설의 제목도 시를 닮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별입니다. 그 별들은 각기 다른 노래를 가지고 있지요. 서로가 상대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일 때입니다. 느티나무 잎에 햇살 부딪는 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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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했던 뒷날, 쾌청한 헤이리의 하늘과 땅에서 남해 다도해의 무인도 내음이 났습니다. 느티나무 잎과 수작을 주고받던 햇살은 제 어깨 위로 옮겨오고 코 끝으로는 예전 어머님께서 상에 올렸던 쑥국냄새가 스쳤습니다. 서울까지는 1시간 거리에 있지만 헤이리의 싱싱한 공기는 마치 서울의 오염으로부터 네댓 시간쯤은 멀리 있는 듯합니다.

리앤박갤러리 앞 느티나무위에서 봄볕을 즐기는 새
 리앤박갤러리 앞 느티나무위에서 봄볕을 즐기는 새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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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광장의 큐브. 자연은 어느부분에 프레임을 갔다두어도 모두 작품이 됩니다.
 갈대광장의 큐브. 자연은 어느부분에 프레임을 갔다두어도 모두 작품이 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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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뮤트 두 마리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창포마을의 '개울옆에서' 집을 지났습니다. 헤이리의 중심을 관통하고 그 집 옆을 지나는 작은 개울에서도 조잘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봄의 기운에 겨운 이는 저뿐만 아니었습니다. 버들가지의 꽃 차례가 백색의 솜꽃을 흩날리고 있는 그 개울에서 까치 한 마리가 멱을 감고 있었습니다.

꼬리꽃차례의 솜을 이고 있는 버들
 꼬리꽃차례의 솜을 이고 있는 버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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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졸졸 소리를 내는 그 작은 개울물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온몸을 물에 담그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퍼덕이며 깃털 하나하나에 까지 고루 물이 묻어 몸이 씻기도록 애썼습니다. 낮게 날아올라 물에 몸을 처박기를 여러 번, 다시 버들가지에 앉아 날개를 펼치고 햇살로 물기를 말렸습니다. 봄 햇살은 막 미역을 끝낸 까치의 축축한 깃털 하나하나에도 빈틈없이 미쳤습니다.

멱을 감는 까치. 개울에 사뿐히 내려앉은 까치는 곧바로 몸을 돌려 물에 몸을 담갔습니다. 그리고 날개를 퍼덕이기를 몇 차례, 몸을 씻은 까치는 바로 옆의 버들가지에 올라 날개를 펴고 봄볕에 물기를 말렸습니다. 목욕을 마친 까치의 유영은 더욱 가볍습니다.
 멱을 감는 까치. 개울에 사뿐히 내려앉은 까치는 곧바로 몸을 돌려 물에 몸을 담갔습니다. 그리고 날개를 퍼덕이기를 몇 차례, 몸을 씻은 까치는 바로 옆의 버들가지에 올라 날개를 펴고 봄볕에 물기를 말렸습니다. 목욕을 마친 까치의 유영은 더욱 가볍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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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바로 옆에 어떤 차가 멈추어 서고서야 그 까치의 은밀한 목욕을 훔쳐보느라 넋을 잃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차장의 유리가 내려지고 운전석에서 공영석 선생님께서 계면쩍은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 수줍음이 많은 공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누구와 눈을 마주치질 못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사진을 강의하시면서도 학생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어서 만날 허공을 보거나 간간히 창밖을 보면서 강의를 하시는 분이시지요. 묻지 않아도 저만 보면 괜스레 당신의 모든 행적을 고백하십니다. 그것도  열없는 표정을 지으시며 손은 머리를 끄적거리면서 말입니다. 심성 고운 이 어른은 그래야만 도리인줄로 아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마음인 것이지요.

"저기…… 나무하나 옮기로 갑니다. 산에서 캐오는 것이 아니고요, 저기…… 곧 집짓기 공사에 들어갈 땅에서 옮겨오는 겁니다."

더듬더듬 곧 끊어질듯 느리게 말씀을 이어가는 공 선생님이 만약 눌변이 아니었다면 아마 제 머릿속에 각인된 공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의 반은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공 선생님께서는 지난 몇 년간 우리나무와 야생화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말에 거짓을 섞지 못하는 공 선생님께서는 일전에 이웃과 술을 나누는 중에 정원의 야생화 몇 포기는 산에서 옮겨왔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산의 꽃은 산에 있어야 더 아름답고 들의 꽃은 그 들이 제자리임으로 절대 정원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야생화가 필요하다면 화원에서 판매용으로 번식시킨 꽃을 사다 심어야한다'는 의견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들꽃을 한두 포기 정도는 옮겨도 다시 자연 번식하므로 자연에 해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셨던 공 선생님께서도 저의 의견에 동의하시고 다시는 식물을 채취하기 위해 산에 드는 일이 없었습니다.

봄 볕에 더욱 화사한 공선생님의 백발. 저는 공선생님의 모습에서 백발로도 숨겨지지않는  6살 소년의 순진무구를 봅니다. 실제의 나이에서 뒤의 '0'을 하나 지운 모습이지요.
 봄 볕에 더욱 화사한 공선생님의 백발. 저는 공선생님의 모습에서 백발로도 숨겨지지않는 6살 소년의 순진무구를 봅니다. 실제의 나이에서 뒤의 '0'을 하나 지운 모습이지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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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나무를 옮기로 간다는 말씀을 고백하지 않아도 될 것임에도 저를 보자 차를 세우고 변명처럼 오해할지도 모를 계획을 털어놓으신 것입니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형사피고인조차도 형사책임에 관하여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것은 물론 수사기관의 신문에 대해서도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당당한 권리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묵비권입니다.

하지만 성품이 순량하신 공 선생님께서는 죄가 되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한 것조차 실토하지 않으면 그것이 거짓이라 여기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공 선생님을 대면할 때마다 이 분의 마음을 닮는 것이 곧 핍진한 수양이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마을등불' 옆 야산에도 점점이 봄볕의 은혜는 가득합니다. 이 갤러리 3층에서 작업을 하고 계시는 이인 선생님의 스튜디오로 청향재의 송효섭 교수님과 상상그림다방의 천호석 선생님, 크레타의 김기호 선생님께서 마실을 나오셨다가 난간에서 함께 봄볕을 받고 계셨습니다. 뒤의 노을동산의 푸르름과 어울림이 또한 그림입니다.

사각으로 뚫린 창으로 보이는 자연이 200호짜리 그림이 됩니다.
 사각으로 뚫린 창으로 보이는 자연이 200호짜리 그림이 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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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등불. 몸볕을 어깨로 받고 있는 네 분의 이웃. 송효섭교수님, 천호석, 김기호, 이인 작가님
 마음등불. 몸볕을 어깨로 받고 있는 네 분의 이웃. 송효섭교수님, 천호석, 김기호, 이인 작가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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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낡은 농가를 오가며 작업하는 이인 선생님은 색의 조화를 통해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는 분입니다. 오늘의 투명한 햇살은 이인 선생님께서 추구하는 색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마음등불. 옆 동산과 경계없이 시각적 소통이 일어나는 스튜디오.
 마음등불. 옆 동산과 경계없이 시각적 소통이 일어나는 스튜디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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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등불. 이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는 이인선생님의 화두는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 색의 조화입니다.
각각의 그림은 각자의 음악소래를 내는 별일것입니다.
 마음등불. 이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는 이인선생님의 화두는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 색의 조화입니다. 각각의 그림은 각자의 음악소래를 내는 별일것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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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등불.사방으로 들어오는 봄볕속에서 작업중인 이인선생님
 마음등불.사방으로 들어오는 봄볕속에서 작업중인 이인선생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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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몇 주 전부터 공 선생님의 스튜디오 벽에서 잎을 내고 있는 담쟁이의 하루하루 변화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햇살을 많이 받는 면의 담쟁이는 벌써 잎이 무성하고 그늘진 부분은 이제 겨우 순을 내밀고 있는 중입니다. 한 뿌리를 가진 한 몸인데도 말입니다. 그저 얻는 햇볕이라서 그 귀함을 몰랐던 사실을 선명하게 대비시켜주는 모습입니다.

공사진스튜디오의 담쟁이. 한 뿌리의 한몸이지만 햇볕을 받은 부분은 잎이 무성하고 상대적으로 빛을 받지못한 부분은 잎을 내지 못했습니다. 햇볕은 우리가 알지못하는 사이에 바로 이런 차이를 만듭니다.
 공사진스튜디오의 담쟁이. 한 뿌리의 한몸이지만 햇볕을 받은 부분은 잎이 무성하고 상대적으로 빛을 받지못한 부분은 잎을 내지 못했습니다. 햇볕은 우리가 알지못하는 사이에 바로 이런 차이를 만듭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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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해서, 아낌없이 주기만해서 그 귀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 어디 봄볕뿐이겠습니까. 물과 공기며, 부모님의 내리사랑은 항상 그것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탄식하는 것들이지요. 저는 생수를 맥주값과 같은 값을 치르고 사서 마시는 날이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지는 짐작도 못했습니다.

숲속의 산소를 압축해서 캔에 담아 파는 상품이 우리나라에서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저의 바람과는 다른 결과가 더 많다는 것을 익혀 압니다. 부모님이 떠나신 뒤, 그리고 혼신으로 공을 들인 자식들이 모두 독립한 뒤의 부모의 입장이 되어서야 마침내 치사랑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음등불. '함께 그려보는 우리들의 이야기'전에 출품된 김윤경작가의 '니들이 배아파 봤어?'

김작가는 아이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배아파 낳은 자식에게도 치사랑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등불. '함께 그려보는 우리들의 이야기'전에 출품된 김윤경작가의 '니들이 배아파 봤어?' 김작가는 아이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배아파 낳은 자식에게도 치사랑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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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헤이리의 대지는 온통 햇살을 품어 생명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햇살을 이고 스스로 빛이 된 느티나무 잎, 멱 감는 까치, 공 선생님의 백발, 이인 선생님의 그림, 공스튜디오 벽의 담쟁이 등 봄볕의 은총을 입지 않은 것은 제 눈을 비비고 보아도, 다시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생명이란 볕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처럼 우리는 왜 늘 소중한 것들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걸까요?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봄볕,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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