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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불탄일을 맞는 죽림정사의 풍경. 산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찍었다. 매우 소박하면서 아름답다. 사진을 찍으면 가람의 배치가 잘 된 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내일 불탄일을 맞는 죽림정사의 풍경. 산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찍었다. 매우 소박하면서 아름답다. 사진을 찍으면 가람의 배치가 잘 된 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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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절간에서 인심 난다'

최승호 시인은 '뭉게구름'이란 시에서 말하길 "내 가계엔 구름 숭배자가 없다"라고 했다. 내 가계 역시 본래 지속 가능한 안정을 추구하던 가계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돌연변이처럼 내 몸 속엔 떠돌이 기질이 다분한 인자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내 떠돌이병이 전혀 선천적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 할아버지께선 평생을 지게와 씨름하시다 돌아가셨으며, 아버지 역시 '맨주먹 붉은 피' 하나로 오로지 가족 부양에만 몰두하시다가 세상을 뜨셨기 때문이다.    

떠돌이병이 있는 내가 주 목적지로 삼는 곳은 산이다. 때에 따라선 산 자체가 아니라 그 산에 세든 절이 되기도 한다. '너는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왜 절을 찾는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본 적이 있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 조상으로부터 시작되어 천 년 동안 형성돼 온 내 정신의 유전자가 내 그리움의 근원이 아닐는지. 아무튼 절집에 가면 우선 마음부터 편안해진다. 그렇게 자주 찾아다녔으면 벌써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어 있어야 마땅할 일이다. 그러나 난 여전히 내세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서의 길을 줄기차게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절에 가면 때때로 점심 공양을 얻어 먹을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절밥이 맛 있다"라고 설레발친다. 그러나 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많은 오신채에 길들여진 사바세계 중생인 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마 그 사람이 '산을 오르는데 힘을 너무 쏟아 무척이나 시장했나 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산 혹은 절집에 갈 적엔 될 수 있는 한 도시락을 싸 간다. 절밥이 맛없어서가 아니다. 만약에 절집에서 공양을 얻어 먹게 되면 시간이 아주 많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돌아다니면 구경할 시간이 적어진다. 긴 줄을 서야만 공양을 탈 수 있는 초파일 같은 날엔 특히 그렇다. 게다가 난 절집에서 공양하게 되면, 될 수 있으면 내가 먹었던 밥그릇은 내가 씻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것이 밥을 얻어 먹은 자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준비해 가는 것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절집 인심도 제각각이다. 어떤 절집은 공양주가 아주 기세등등하게 밥 한 그릇을 주면서 마치 큰 보시라도 베푸는 듯이 주는 야박한 절집도 있고, 안 먹고 그냥 가겠다고 하면 몹시 서운한 표정을 짓는 절집도 있다.

지난 1월에 다녀온 내변산 월명암의 경우가 꼭 그랬다. 월명암의 공양주는 나이 드신 보살이었다. 그런데 암자에 들르는 사람마다 붙들고선 공양을 들고 가라고 성화였다. 나도 그 보살에 잡혀서 어쩔 수 없이 공양 한 그릇을 들고 나왔다. 공양을 어찌나 고봉으로 담아주던지 배가 불러 혼이 났다. "주지 스님은 어디 가셨느냐?"라고 물었더니 오늘 부안읍내에 나가셨다고 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월명암을 떠나오면서 '저런 인심 좋은 보살을 뒀다간 절집 살림이 남아날까?' 싶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하기야 그 밥심으로 가뿐히 산행을 마치긴 했지만 말이다. 

언젠가 내가 글에다 '절간에서 인심 난다'라고 썼더니 어느 독자가 댓글을 썼다. "그거 '곳간에서 인심난다' 아니어요?" 맞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 그러나 그 말은 개인 집으로 한정 지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절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온 세상을 대상으로 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아무튼 누가 뭐래도, 세상인심이 제아무리 각박하다 할지라도 아직 절 인심만은 따뜻하게 살아 있다.

초파일 공양을 준비하는 죽림정사 보살들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
 초파일 공양을 준비하는 죽림정사 보살들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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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공양의 추억 몇 가지

아무튼 그렇게 절집을 돌아다니다 보니 내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공양을 대접받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선 생각나는 게 80년대 초 송광사 불일암에서 법정 스님께 받았던 차 공양이다.

내가 불일암에 찾아갔을 때는 늦은 봄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온 내가 안 돼 보였던지 첫마디 말씀이 "가서 세수부터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세수를 하고 나서 툇마루에 앉자 2ℓ짜리 커다란 주전자에다 차를 끓이더니 찻잔을 비우기가 무섭게 거푸 따라주셨다. 두 주전자의 차를 다 마실 때까지 스님은 그저 차만 따라 주실 뿐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차가 거의 떨어질 무렵에야 비로소 "앞으로 큰일 하려거든 건강에 힘쓰도록 해라"라고 겨우 한마디 하셨을 뿐이다. 그리곤 그 전 해에 입적하신 사형 구산 스님의 문집 <돌사자>를 비롯한 책 몇 권을 선물로 주시면서 "송광사에 내려가 며칠 쉬었다 가라"고 하셨다.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 보았더니 그때까지도 툇마루에 그대로 서 계셨다. 그 후론 한 번도 법정 스님을 뵌 적이 없지만 그때의 무설(無說)의 설법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밥 공양이야 셀 수 없이 많이 했으니 어찌 일일이 다 꼽을 수도 없다. 다만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기억에 담아두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따지고 보면 그게 다 인생의 빚이 아닌가. 그래도 꼭 한 군데만 꼽으라고 한다면 10여 년 전 겨울 강원도 고한 정암사에 갔을 때를 꼽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난 무모한 데가 있는 사람이다. 이른 아침에 태백 시내를 출발해 눈이 펑펑 쏟아지는 만항재를 넘어 정암사까지 걸어갔으니 말이다. 그것도 점심마저 거른 채였으니 얼마나 무모한가? 

지금은 그래도 겨울산행 땐 방풍재킷이나 방한재킷을 걸치고 다니지만 당시엔 그런 건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던 때였다. 정암사에 닿고 보니 등산화 속은 물론 싸구려 등산복까지도 온통 젖어 있었다. 눈 내리는 적멸보궁엔 말 그대로 적멸뿐이었다. 눈을 무릅쓰고 수마노탑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요사 앞을 그냥 스쳐 지나려는데 웬 보살이 나를 불렀다. 안에 들어와 잠시 쉬다 가시라는 것이다. 배도 고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양말이라도 말려볼 요량으로 못 이기는 척 안으로 들어갔다. 난로 가에다 양말을 벗어 말리고 있노라니 보살이 공양을 차려왔다. 아마도 내 꼬라지를 보고 밥을 먹지 않았으리라 판단한 것이리라.

염치나 체면을 차리기엔 너무나 배가 고팠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 없이 밥을 퍼먹었다. 먹는 귀신 아귀(餓鬼)라는 게 정말 있다면 그때 내 모습이 영락없이 그럴 것이다. 보살에게 수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정암사를 나서 사북까지 걸어나가 기차를 타고서 집에 돌아왔다.

문경 봉암사의 초파일 풍경. (2005년) 공양 그릇이 수북이 쌓였다.
 문경 봉암사의 초파일 풍경. (2005년) 공양 그릇이 수북이 쌓였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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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족한 덕행으로는 이 음식 받기 부끄럽네

절집의 스님들은 공양을 들기 전에 다음과 같은 다섯 구로 된 게송인 '오관게(五觀偈'를 외운다고 한다.

계공다소량피래처(計功多少量彼來處)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촌기덕행전결응공(村己德行全缺應供)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방심이과탐등위종(防心離過貪等爲宗)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정사양약위료형고(正思良藥爲療形枯)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위성도업응수차식(爲成道業膺受此食) 도업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공양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마음 가짐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인 게송이다. 공양이란 말은 산스크리트 푸자나(pujana)를 번역한 말이다. 공급하여 자양(資養)한다는 뜻이다. 좀 더 길게 풀어 쓰자면 삼보·부모·스승·죽은 이 등에게 공급하여 음식·옷 따위를 자양하는 것을 공양이라 일컫는 것이다. 그런 깊은 뜻이 담긴 말이건만, 국어사전은 아무런 고뇌도 없이 "중이 하루 세 끼 음식을 먹는 일"이라고만 간단히 적고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 중에는 공양을 소재로 쓴 사람이 더러 있다. 내가 가장 짜르르하게 감동을 받았던 작품은 소신공양을 소재로 삼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등신불>이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공양을 소재로 시를 쓴 시인들도 있다. 그러나 차라리 쓰지 않으니만 못한 함량 미달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나기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되"(안도현의 시 '공양' 전문) 같은 시편이 그 중 나은 편에 속할 정도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안도현의 시는 뜬 구름 잡는 식에 머물고 있다. 저런 시는 읽어야 헛배만 부를 뿐 절대 영양가 있는 '시 공양'이 되진 못한다.

찌그러진 개밥그릇이 담고 있는 경전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대한민국 시인 몇 천 명 중에 설마 우리 입 맛에 꼭 맞는 공양에 관한 시 한 편 없겠는가. 이덕규의 시 '밥그릇 경전' 을 읽고 나면 조금은 속이 후련해질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그렁으그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 이덕규 시  '밥그릇 경전' 전문

*조주선사와 어느 학인과의 선문답.

1961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난 이덕규 시인은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제9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문학동네), <밥그릇 경전>(실천문학사)가 있다.

시인은 현재 경기도 화성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땅에 뿌리박은 삶을 사는 시인이라서 그런지 그의 시는 매우 힘차고 남성적이다. 사유 이전에 먼저 행동하는 저돌성을 갖고 있다. 섣부른 오핼랑 하지 마시라. 그가 지적이지 않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니까. 그에겐 사물의 숨겨진 의미를 발견해내는 날카로운 눈도 있어 그의 시를 읽는 이에게 섬뜩함과 전율을 느끼게 하는 시편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실첨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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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에 나온 이덕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밥그릇 경전>은 1981년 <시여 무기여> <팔레스티나 민족시집>으로 출간함으로써 시작된 '실천문학의 시집'이 180번째로 펴낸 시집이다.

시 '밥그릇 경전'은 이 두 번째 시집에 실린 다섯 번째 시다.

이 시는 스님들의 발우 아닌 개밥그릇을 소재로 삼고 있다. 물론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다는 점에선 공양을 마친 스님들의 발우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말이다.

시인은 개밥그릇을 보면서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할 정도로 찬탄을 금치 못한다. 게다가 그릇 테두리를 찬찬히 살펴보곤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까지 발견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빨 경전을 한참 읽어내려가던 시인에게 돌아온 것은 "(할 일이 없거든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洗鉢盂去.세발우거)"라는 종심조주 선사의 세찬 죽비 한 방이다. 그렇다. 시인이 맨 마지막에 이르러 강조하는 것은 바로 노동의 정신이다. 내가 일한 것에 비해 먹는 게 많다면 그건 죄악이다. 그러기에 일찍이 백장회해(720-814) 스님이 말했지 않는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고. 밥을 떠 먹고 사는 자로서 정 할 일이 없거든 밥그릇이라도 씻어야 마땅할 일이다.

내일은 불기2553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오늘 오전 앞산에 있는 죽림정사에 다녀왔다. 꽃 등을 내건 풍경이 무척 아름다운 작은 절집이다. 보살 십여 명이 내일 대중공양에 쓰일 음식을 장만하느라 몹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부처님 오신 뜻을 기리기 위해 많은 분들이 내일 산사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사시(11시)가 되면 점심 공양을 타려고 줄을 설 것이다. 혹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게 느껴지시거든 공양의 참뜻과 그것을 준비한 보살들의 노고를 생각하는 건 어떨지. 그러고도 시간이 남거든 이덕규 시인의 시 '밥그릇 경전'이 설(說)하는 바를 한 번쯤 되새겨보면 어떨까 싶다.

안도현의 짧은 시 '연탄 한 장'을 패러디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개밥그릇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언제 가슴 속에 삶의 등불이 될만한 경전 몇 구절이라도  담아둔 채 산 적 있느냐."


태그:#초파일 , #공양 , #이덕규 ,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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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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