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버스와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으로 가는 도중에 매일 아침 도로위에서 잡화를 파는 '도로위 자영업자(잡화상)'를 만납니다. 이 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누가 바쁜 아침에 물건을 살까 걱정도 되지만 정말 열심히 운전자에게 눈빛을 맞춰가며 장사를 합니다. 간혹 물건을 사는 운전자들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하루에 몇개를 파는지 모르지만 이분에게는 도로 위가 영업장입니다. 매연과 운전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가며 굳세게(?) 물건을 파는데, 주로 생활용품들입니다. 공구, 테이프, 좀약, 차량용 방향제 등 없는 게 없습니다. 파는 물건도 매일 바뀝니다. 이런 일은 사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늘 실직 공포에 시달리며 삽니다. 40대 중반의 나이인데, 만약 실직하게 되면 뭐를 해야할까 라는 생각은 늘 하고 삽니다. 그러나 뾰족하게 떠오른 생각은 없습니다. 동료중 직장을 그만두고 조그만 식당 등을 하다가 얼마 안되는 퇴직금을 홀라당 까먹고 힘들게 사는 것을 보면 쉽게 자영업에 뛰어들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길어야 2~3년 더 다니면 저도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할 형편입니다.
40대 중후반에 직장을 그만둔 남자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실직 후 다음 직업을 얻는 일일입니다. 한창 아이들 교육비가 들어갈 즈음에 퇴사하게 되면 또 다른 직장에 이력서를 내보지만 받아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잘 가야 아파트 경비나 판매직 영업사원입니다. 수입이 반 이상으로 줄어들게 되면서 당장 생활비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영업입니다.
그런데 자영업도 점포 임대료와 권리금, 시설 투자비 등을 감안하면 1억 이상의 돈이 투자됩니다. 장사가 잘되면 이 돈을 회수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잘 안되면 고스란히 1억을 날리게 됩니다. 장사 경험이 없으니 열에 아홉은 실패를 하는 게 요즘의 경기상황입니다. 동료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경기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규모 자영업을 시작한 후 점포 임대료도 안 나와 어쩔 수 없이 장사를 접는 동료들을 보면 자영업 하고 싶은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고 오히려 자본이 들지 않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로위에서 물건을 파는 일도 자본이 들지 않지만 불법행위입니다.
교통정체가 심한 도로 위에서 물건을 파는 일은 사실 얼굴이 좀 두꺼워야 합니다. 가뜩이나 길이 막히는데 이런 정체상황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니 운전자들이 보는 눈이 그리 곱지 않습니다. 또 도로위 잡상인을 보면 '설마 내가 저런 일을 하겠어?', '혹시 장사하다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필자는 요즘 남의 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모르게 2~3년 후면 저 일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느날 부터인가는 내가 만약 물건을 팔면 어떤 것을 팔아야 할까하고 구체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현실이 절박하는 뜻이겠지요.
IMF때 실직을 한 후 1년 정도 백수로 지냈습니다. 그때 자영업을 하려했지만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포기하고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재취업을 했습니다. IMF때도 많은 실직자가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주변에 자영업자가 많은 이유는 30~40대 퇴직자들이 재취업할 수 있는 직장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 30~40대들은 실직 공포는 물론 만약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뭘 해야할까라는 고민도 항상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 이거야' 하고 생각나는 일이 없어 고민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오래 오래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실력 있고 패기 만만한 젊은 신입사원들에게 중년 간부들은 자리 지키기가 버거울 정도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 40대 중반 가장들에게는, 벌어놓은 돈이 많지 않다면, 도로위 잡상인도 예사롭지 않게 보일 것입니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지만 선뜻 나서기 힘든 일에도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만큼 이 시대 가장들의 직장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도로위 자영업도 언젠가는 경쟁이 붙어 서로 자리싸움을 할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래서 미리 좋은 자리라도 하나 '찜'해두어야겠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