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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받은 집에서 열심히 '난'빵에 꿀과 호두를 싸서 먹는 우리 집 애들.
 초대받은 집에서 열심히 '난'빵에 꿀과 호두를 싸서 먹는 우리 집 애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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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 있는 마샤드 호텔 도미토리에 묵을 때 같은 방을 썼던 여행자의 말은 이란인들의 손님 환대 풍습을 알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때 나와 함께 방을 사용했던 사람은 혼자서 중동국가를 여행하고 있던 한국 아가씨인데 하루 전에 시리아에서 이란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여우한테 홀린 기분이에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녀는 믿을 수 없을 때 하는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공원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자매를 만나고 그 집에 초대받아서 맛있는 거 실컷 얻어먹고, 그것도 모자라 저녁을 밖에서 또 얻어먹고, 마지막으로 이란 자매는 남자친구 차를 동원해서 그녀를 호텔 앞까지 바래다줬다고 합니다.

초대받은 집에서  맛있는 거 많이 주고 너무 친절해서 약간 의심도 했다고 합니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지 않나 해서요. 그런데 그들은 얌전하게 그녀를 숙소까지 바래다주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아무런 사심이 없는 친절이었던 게지요.

이란에 들어온 지 하루만에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친절을 경험했기에 그녀는 여우한테 홀린 그런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안면식도 없는 사람들한테 갑작스레 받은 과한 친절에 그녀는 당황한 것이었습니다. 그녀 또한 한국인인지라 한국식 사고를 갖고 있기에 이유 없는 친절에는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란인들은 이유 없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이란인만큼 손님을 환대하는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란인의 이런 친절과 손님접대를 직접 체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란의 가정에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물론 내가 직접 받은 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초대에 묻어간 거지요. 우리 여행팀을 인솔하는 길 대장이 알게 된 이란인인데 마슐레에 살고 있습니다. 그 집에 일행이 모두 초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집은 이란의 중산층 정도 되는 집 같습니다. 이란의 평균 가정에 비해서는 잘 살아 보였습니다. 이란에서는 석유보다 훨씬 귀하다는 통나무가 벽난로 안에서 활활 타고 있고, 바닥에 깔린 카펫도 고급스러웠습니다.  유럽풍의 주방도 인상적이었고요.

바깥주인은 서양 남자처럼 보였는데 인상이 좋았습니다. 아르메니아 피가 섞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라고 했더니 본인이 직접 자신이 리차드 기어를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꽤 닮았습니다.

 마슐레의 거리. 길에 서있는 사람은 깨엿을 파는 사람들인데 파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한가하게 관광객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슐레의 거리. 길에 서있는 사람은 깨엿을 파는 사람들인데 파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한가하게 관광객을 구경하고 있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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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아가씨들은 꽤 예쁘고, 아줌마들은 펑퍼짐한데 이집 안주인은 과도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얼굴은 예쁜데 배가 살짝 나왔습니다. 그녀는 동생과 남편, 즉 가족만 있고 외간남자가 없어서인지 차도르를 벗고 있어서 우리도 들어가자마자 머리에 썼던 것들을 다 벗었습니다.

인물 소개와 집 소개는 여기서 끝내고 이제부터는 이 집 주인이 손님을 어떻게 대접했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들어섰을 때 이 집에 있던 사람은 모두 세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현관까지 나와서 우리 모두의 얼굴을 마주치며 아주 오래된 지인을 간만에 만난 것 같은 반가움으로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그 웃음에 가식은 없었습니다. 진심으로 반기고 있는 게 역력하게 느껴졌습니다. 첫 번째 친절은 손님을 진심으로 반긴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주부로서 난 이렇게 손님을 환대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난 지레 겁을 집어먹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부입장에서는 손님이 오면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에 좀 긴장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난 남편이 친구 데려오겠다고 할 때마다 '다음에'라면서 미루기 바빴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환대는 내게 많은 걸 느끼게 했습니다.

안면식도 없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물질적 손실까지 기꺼이 감수하면서 또 그걸 즐기는 모습에서는 많이 반성했습니다.

떠들썩한 인사를 끝내고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안주인은 오렌지, 키위, 사과, 레몬처럼 생긴 이란 과일을 씻어서 통째로 아주 큰 접시에 담아내왔습니다. 접시가 제사 때 쓰는 접시처럼 발이 달린 접시입니다. 그리고 개인 접시와 함께 개인 칼을 사람들 앞에 돌렸습니다. 각자 원하는 과일을 집어와 알아서 깎아 먹으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같으면 안주인이 일일이 깎아주는데 이곳은 이게 풍습인 모양입니다. 여자 입장에서 난 이들의 풍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먹는 사람 입장에서도 누군가 조물락 조물락  깎은 과일보다는 자기가 직접 깎는 게 좋을 것 같고 깎는 사람도 수고를 덜 수 있으니 이래저래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과일 가게서 주로 사먹은 과일은 사과도 그렇고 대체로 애들 주먹만한 볼품없는 걸 샀는데 이 집은 좀 사는 집이어서 그런지 내놓은 과일들이 모두 크기도 큼직큼직하고 때깔도 좋았습니다. 워낙 큰 접시에 한가득 나와서 누가 저걸 다 먹을까, 했는데 여행 나오면 모두 배에 거지가 들어가게 되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어치웠습니다.

과일과 함께 차도 주었는데, 계피향이 은은한 차였습니다. 계피나무 껍질을 우리나라는 푹 삶아서 수정과를 만들 때 쓰는데 여기서는 껍질을 잘게 쪼개서 병에 담아두었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서 우려서 아주 연하게 해서 마시는데 맛이 괜찮았습니다.

 우리를 초대한 주인 내외. 아저씨는 부인에 비해 나이가 좀 많았다.
 우리를 초대한 주인 내외. 아저씨는 부인에 비해 나이가 좀 많았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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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두 번째 손님 환대는 음식 대접입니다. 처음에 내놓은 과일도 이란에서는 아마도 최상품 과일이고, 이 집 식구만 먹는다면 일주일은 먹을 수 있을 텐데 그걸 낯선 손님을 위해서 다 내놓았습니다. 이밖에도 포테이토칩에 찍어먹게끔 요거트를 함께 내오고, '난' 이라는 빵에 싸먹게끔 주인이 직접 자기 농장에서 따온 호두를 깨서 토종꿀과 함께 주었습니다. 대추처럼 생겼는데 대추보다 더 달고 맛있는 대추야자도 이 집에서 처음 먹어봤습니다. 그리고도 끊임없이 먹을 걸 내왔습니다.

우리가 최고로 귀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최고 귀한 음식들을 아낌없이 내놓는 이들 가족의 푸짐한 임신에 정말 감동 받았고, 또 그때 먹은 음식들은 이란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님에게 관심을 기울여서 불편한 점이 없나 관찰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특히 이 집 안주인의 남동생은 아직도 마음이 훈훈해올 정도로 따뜻한 청년이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를 닮은 청년은 나이는 27살밖에 안 돼 나이로만 보면 아직 철이 덜 들었을 나인데 마음씀씀이는 참 어른스러웠습니다.

그도 우리들과 함께 앉아 얘기도 하고 음식도 나눠먹었는데 얘기를 하다가 난 차를 조금 쏟았습니다. 마시다가 살짝 흘렸기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고, 나도 옷에 몇 방울 떨어진 정도라 별로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니콜라스 청년은 마치 나만 쳐다보고 있었던 사람처럼 휴지를 가져와 내게 주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 행동은 나에게만 베푼 친절은 아니었습니다. 얘기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도 누군가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적절하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물론 찻잔이 비면 어느 새 알고 그 많은 사람의 찻잔을 채워주는 것도 그의 몫이었지요. 정말 보기 드물게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란의 가정집 방문과 친절한 환대로 이란을 더욱 좋아하게 됐습니다. 누군가 말하길 세상에서 이란 사람처럼 손님을 환대하는 사람도 없다고 하는데 그 집에서 그 말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란#손님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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