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평, 신문 스크랩이나 하던 소심한 블로거2008년 4월 27일은 촛불이 군불을 떼기 시작한 날입니다. 주로
알라딘 서평쓰기나 경향신문 스크랩, 오마이뉴스 기사쓰기에 제한돼 있던 저는 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알라딘 서평쓰기는 책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서평이라는 재생산에 국한되며, 경향신문 스크랩은 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 기사쓰기는 '기사'라는 일정한 틀에 맞게 써야 하는 제한조건이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글쓰기를 할 매체가 필요했던 차였습니다.
더군다나 촛불문화제를 취재하고 새벽까지 글을 정리해 올린 것이 다음날 오후까지 블로그 메인에 올라가는 바람에 순식간에 7만7천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댓글도 500여 개나 받고 나서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여의도 촛불문화제 현장] 어른들이 많이 미안하구나이것은 수년간 알라딘 서재를 방문한 사람보다 많은 숫자였고, 3년간 2만 개의 기사를 스크랩한 블로그의 방문자의 3분의 1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이 폭발적인 블로그의 힘을 받고 저도 충격이 컸습니다. 나도 블로거로 나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죽을 많이 쒔습니다. 한 이틀 동안 자료 찾아가며 고생고생해서 올린 글에 추천은커녕 조회가 1건도 기록되지 않을 때의 좌절감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열 번도 넘게 맛본다면 무척 깨닫는 게 많을 겁니다. 그때는 여전히 블로고스피어의 특징과 블로거들과 소통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명박만 소통 못한다고 할 게 아니라, 나도 나의 고집과 지식의 틀에 빠져서 세상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라면 굳이 블로그라는 공적 공간에서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을 고민하던 중 생각해낸 게 실생활의 글이었습니다. 내 주위를 살피며 소재거리를 찾아다녔고 사진기를 주머니에 들고 다니거나 아니면 휴대폰카메라로 포착을 하면서 블로그 글에 이미지를 담아갔습니다. 특히 티스토리 블로그는 이미지가 없으면 블로그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 캡쳐는 필수입니다. 이런 노력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3개월 헛발질을 한 끝에 '블로거뉴스'라는 걸 조금 알게 되다한 3개월간 헤매다가 드디어 특종을 하나 건졌습니다.
우리동네 '1000원샵'실물경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물가상승률이 살인적으로 다가오던 7월 말 동네시장을 돌아다니면서 1000원짜리 상품이 유난히 많이 있던 모습을 포착했고, 경제뉴스의 물가통계와 연결시켜 뉴스를 송고했습니다. 이 뉴스 하나로 5만6천의 조회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블로거뉴스'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 기사는 저에게 새로운 사실을 하나 가르쳐줬습니다. 블로거뉴스 중에서 현장성이 있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기사의 경우는 미디어다음에서 특종상을 통해 1~20만원의 활동비를 적립해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기사로 20만원의 부수입을 건졌습니다. 블로거뉴스로 3회의 특종상을 받았고 총 60만원의 수입이 생겼는데, 모두 현장성이 짙게 묻어나는 기사들이었습니다.
블로그 정체성, 블로그 주요 콘텐츠가 중요하다저는 출판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았고 책 관련 글을 자주 썼습니다. 하지만 블로고스피어에서는 '책 관련글'이 좀처럼 인기가 없습니다. 다른 포스팅에 비해 책 관련 포스팅은 10분의 1정도로 조회수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 관련 글이 잘 안 올라오고, 출판관계자들도 블로그질을 잘 안 합니다.
나는 여기서 역발상 전략으로 갔습니다. 책 관련 포스팅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되 정직하게 '책 포스팅'으로 하지 않고 시사와 일상 등 블로거들이 좋아하는 주제와 결부시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제 블로그 포스팅 중에서 최고 조회수를 자랑하는 포스팅은 책 관련 글입니다.
<서양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블로거뉴스 기사는 단번에 40만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는 블로그에 구글 애드센스를 깔았는데, 이날만 112달러(5월 3일 현재 원화가치로 144,480원)라는 광고수익을 냈습니다.
이 글과 <우리동네 '1000원샵'>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는 퓨전 포스팅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동네 '1000원샵'>은 시장에서 찍은 1000원짜리 상품과 물가상승률을 연결시켰고, <서양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은 책의 내용과 예전에 답사를 했던 사례를 연결시켜 썼습니다. 한 가지의 메시지는 단조롭고 재미가 떨어지지만 다른 이야기와 연결시켜 구성하면 전혀 새롭게 보입니다. 모든 글에 두 개 이상의 이야기를 연결시킬 필요는 없지만, 블로그 글을 구성할 때 이 기술은 익힐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책 이야기를 자주 쓰는 이유는 블로그를 통해서 좋은 책을 많이 알리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제가 정말로 세상에 알리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라는 책은 '계급'이라는 개념을 너무 쉽고 실증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에 이와 관련한 포스팅을 한 10개는 쓴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2~3개가 1만이나 2만의 조회를 기록했고 판매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해당 출판사가 고맙다며 저자를 소개시켜줬고 식사도 대접받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 손낙구 선생은 그 후로 블로거로 전향해 부동산에 관한 좋은 글을 많이 써주고 계십니다.
촛불의 정신을 계승한 블로거가 되고 싶습니다 제 블로그는 '촛불'과 관계가 깊습니다. 촛불이 낳았고, 촛불을 통해 자랐습니다. 블로그의 글 하나하나마다 '촛불'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단지 촛불이 옳다는 것을 떠나서 촛불이 주는 메시지를 저 나름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고, 때로는 책읽기를 통해, 때로는 현장취재를 통해 그 본체를 그리려는 욕구가 100만 블로그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소통하는 블로그로 만들기 위해 저 나름대로 소재를 고민했고, 콘텐츠를 개발했습니다.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와이프와 길을 가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하면 "저것은 1만 조회수 정도 되겠는데"하면서 일상을 블로그에 연결시켜 생각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블로그는 공적인 성격과 사적인 성격이 혼재돼 있는 복잡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인미디어로서 제도언론에 못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네티즌들도 틀에 박힌 신문기사보다는 정성스럽게 쓴 아마추어 블로거뉴스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책임감도 있고, 온라인 세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로서의 정체성도 있습니다. 답답한 것 같이 보이는 현실을 헤쳐나갈 열쇠는 '네트워크'에 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이 네트워크를 흐트러놓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쓰겠지만, 블로그라는 창을 열어놓고 다른 창과 소통하면서 촛불이 밝혀 놓은 곳과 밝히지 못한 곳을 고민하면서 블로그질을 하는 것이 저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광고를 위한 블로그질,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블로그질, 어떤 목적을 가진 블로그질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기왕 블로그를 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나의 블로그질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블로그가 의존하는 하나의 '정신'을 밑바탕으로 까는 것이 철학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것이 '촛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