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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플러스 1집 1집 CD 사진
레드플러스 1집1집 CD 사진 ⓒ 무비조이

오늘은 1997년도에 나온 조금 색다른 한국 밴드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199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절정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조금만 인기 있으면 앨범 대충대충 곡 채워 만들어도 기본적으로 20만장이 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50만장~100만장 가수도 제법 많았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 대중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그 당시 유명한 음악 평론가들이 지금 이대로 가면 한국 대중가요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을 계속 내었습니다. 한 장르가 히트하면 비슷한 음악을 하는 가수들이 무더기로 양산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음악 장르 역시 엄청나게 편협하게 댄스 아니면 발라드 음악만 큰 인기를 얻던 시절이기도 했죠. 다른 장르 대중음악들이 거의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호황기 시절 미래를 대비하지 않던 한국 대중음악은 1980년대 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던 홍콩 영화계와 오버랩 됩니다. 비슷한 영화만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하던 홍콩 영화계는 결국 암흑의 1990년대를 맞이하고 2000년대 들어서야 긴 암흑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홍콩 영화계가 기나긴 암흑기를 넘겼지만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더 이상 아시아권에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전한 사실입니다.

한국 대중음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09년 현재 한국 대중음악 차트를 보면 1990년대 활황기였던 대중음악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갑자기 쓴 웃음이 납니다. 제대로 만든 명반은 1년에 고작 1-2개 정도 나올까 말까하는 것이 요즘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입니다. 최근에 음악평론가들조차 명반이라고 지칭하는 한국 대중가수 음반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불법 다운로드 근절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1990년대부터 계속해서 쓴 소리를 들어온 한국 대중음악의 근본적인 문제를 뜯어 고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밴드 소개 전에 이렇게 긴 사족을 덧붙인 것은 당시 한국 대중음악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먼저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밴드는 알고 계신 분들보다 대부분 잘 모르고 있는 the RED+(레드플러스)입니다. 이 밴드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은 리드보컬을 맡고 있는 조성민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015B의 객원 가수 조성민이 밴드를 만들었다? 짝퉁 015B라도 만든 거야?


레드플러스 CD표지 레드플러스 CD표지
레드플러스 CD표지레드플러스 CD표지 ⓒ 무비조이

015B는 1990년대 당시 듣기 좋은 노래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던 밴드였습니다. 장호일, 정석원 형제가 만든 프로젝트 밴드였던 015B는 무수히 많은 객원 가수를 양산했습니다. 특히 1집에는 윤종신, 신해철이 객원가수로 활동하기도 했죠. the RED+(레드플러스)의 조성민씨 역시 015B란 밴드에서 객원 가수로 먼저 대중들의 시선을 받습니다. 015B 리메이크 곡인 '아주 오래된 연인들', '단발머리'를 통해 당시 015B 음악을 좋아하던 음악팬들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이죠.

개인적으로 015B밴드 앨범은 거의 다 소장을 하고 있을 정도로 저 역시 부담 없이 듣기에 좋은 노래들이 많았습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한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015B에서 인지도를 키운 조성민씨는 1집을 1996년 발표하지만 대중들의 큰 관심을 얻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이 앨범은 소유하고 있지 않기에 어떤 노래들이 있는지 저 역시 알지 못합니다.

솔로 데뷔가 성공적이지 못했기에 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친구가 어느 날 the RED+(레드플러스) 밴드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민이란 이름까지 듣게 됩니다. 친구에게 그때 제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참 매몰차게 이야기했습니다.

'조성민? 015B 짝퉁 그룹이라도 만든 거야?'

생뚱맞은 015B 객원가수 조성민의 밴드 결성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the RED+(레드플러스) 1집 1997년에 나온 앨범 중에 명반이라 할 수 있다

레드플러스 표지 레드플러스 리드보컬 조성민
레드플러스 표지레드플러스 리드보컬 조성민 ⓒ 무비조이

the RED+(레드플러스) 앨범은 조성민씨가 참여했던 1, 2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1집은 상당히 좋아하지만 2집은 저한테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the RED+(레드플러스) 1집은 1997년 나온 앨범들 중에 제 개인적으로 명반으로 추천하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이미 나온 지 12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날 때면 CD를 꺼내서 듣고는 합니다.

개인적으로 시나위2 집 테이프 경우 너무 많이 들어서 테이프가 이제 늘어질 때로 늘어져 더 이상 재생이 불가능합니다. 만약 the RED+(레드플러스) 1집 앨범 역시 테이프로 구입했다면 시나위 2집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the RED+(레드플러스) 1집이 당시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던 이유는 이전 조성민씨가 객원 가수로 참여했던 015B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짝퉁 015B앨범이라고 생각했던 the RED+(레드플러스) 1집은 신선함이 살아 날뛰는 앨범이 되어 나왔습니다.

the RED+(레드플러스) 1집에 있는 노래들은 한곡도 버릴 곡이 없을 만큼 개성이 잘 살아 있습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본다면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이런 형태로 앨범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무조건 귀에 착착 감기는 감미로운 발라드가 들어가 있는 앨범이 되어야만 그나마 밴드 앨범이라도 조금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더 냉혹하게 이야기하면 밴드로 앨범을 내는 것 자체가 이미 인기 있는 대중가수가 되겠다는 희망을 버린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밴드 1집 앨범은 극강의 화려한 연주나 기교를 보여주는 앨범은 아닙니다. 사실 곡 연주 같은 경우에는 조금 가벼운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에는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곡들이 당시 음악들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개성 있게 진행되고 있는 점입니다. 특히 첫 곡 '얼레얼레(Oh! Rode-i-o)'는 펑크록 느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생동감이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발라드 느낌이 강하게 나는 '널 보게될 줄'. '그녀는' 조차도 기존 록밴드 발라드 곡이나 다른 발라드 노래들과 확연히 차이가 날만큼 개성 있는 편곡이 돋보이는 곡들입니다. 이 곡들뿐만 아니라 다른 곡들 역시 the RED+(레드플러스) 음악은 이런 것이 다 느낌을 줄만큼 개성이 강하게 살아 있습니다. 1집 앨범에 들어 있는 11곡 모두 자신만의 지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독특함이 살아 있었습니다.

2009년 한국 대중음악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레드플러스 레드플러스 CD사진
레드플러스레드플러스 CD사진 ⓒ 무비조이

1997년 발매된 the RED+(레드플러스) 1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한 번 아쉬운 것은 이런 밴드들이나 실력 있는 가수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이 당시에도 거의 없었고 현재에도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전유하는 마이너 음악으로 직업 가수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앨범이 나온다고 해도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 모두 현재 큰 힘을 발휘하는 대중가수를 키워내는 기획사 때문이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한국 음반 시장 규모를 생각한다면 모든 장르 음악들이 다양하게 생존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얼핏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불균형을 그대로 놓아두고 대중음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기획사들이 못 본 척 한다면 1990년대 나왔던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경고음은 2009년에는 파멸의 경고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형기획사는 결국 철저하게 돈 되는 음악에만 집중했습니다. 대형기획사가 분명 새로운 대중음악 문화를 이끌 수 있는 아티스트를 일정부분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단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분명 그들 역시 충분한 책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소한 아티스타란 호칭을 붙이려면 한 시기에 대중음악 문화를 더 나은 부분으로 선도하고 새로운 문화를 파생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아티스트들이 꾸준히 존재해야만 대중음악 역시 새로운 규격과 형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한국 대중음악에 큰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이런 아티스트를 키워내는데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까요?

이미 20여 년 전부터 경고음이 나왔던 한국 대중음악의 폐단이 지금도 여전히 유요한 공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사실이 가슴 아픕니다. 단지 돈 되는 음악에 집중하는 현상 때문에 1990년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경고음을 내었지만 2009년에도 그런 경고음은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음악 시장이 더 좁아지면서 이제 실력 있는 가수나 밴드들이 더 빨리 음악 시장에서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좋은 아티스트들이 한국 음반 시장이나 음악 시장에서 완전히 궤멸되고 있단 이야기가 되겠죠.

이런 현상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하기 곤란하게 만듭니다. 2000년도 이후 발매된 앨범 중에 여러분 기억에 남은 명반이 몇 장이나 되십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줄 명반은 몇 장이나 될까요? 아주 극소수 앨범만 이런 조건에 부합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명반이란 당시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한국 대중가요는 이런 아티스트들을 만들어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침몰하는 배위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옹다옹 거리고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중음악#대중가요#레드플러스#무비조이#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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