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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열린 119주년 노동절 대회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경찰과 집회 참석자 모두 집회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의도에서 열린 119주년 노동절 대회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경찰과 집회 참석자 모두 집회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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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서울의 봄은 잔인한 4월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렇게 잔인한 5월의 시작이 시작되었다. 5월 1일 노동절집회는 서울 도심에서 밀려나 여의도에서 열렸다. 합법적으로 말이다. 도심에서의 가두행진도 있었다. 불법적으로 말이다. 명동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도 있었다. 폭력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노동절집회가 불법폭력집회로 얼룩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노동절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경찰, 불법폭력집회 강력대응'이란 문구로 언론을 통해 흘러나와 우리의 귀에 익숙했던 말이었다.

집회 반토막내기

지난 1일 노동절을 시작으로 계속된 도심의 집회는 법을 집행하는 경찰의 이중 잣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직접 목격하게 만들었다. 경찰이 노동절대회가 끝난 이후 도심 가두행진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노동절 집회를 반토막 낸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껏 수차례 반복된 노동절 도심 가두행진을 올해는 가두행진 자체를 불법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집회 후 가두행진을 할 경우 질서유지선을 만들고 집회 참석자들이 안전하게 가두행진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찰이 가두행진 자체를 '합법적'으로 허용하지 않음으로 인해 가두행진을 시도한 시위대는 '불법'의 낙인을 받게 된 것이다.

여의도에서 집회를 마친 집회 참가자들이 시청역으로 모이자 경찰은 시청역을 폐쇄했다. 이는 시위대가 서울 도심에 모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시위대가 종로3가로 방향을 바꾸게 만든 빌미가 되었다.
 여의도에서 집회를 마친 집회 참가자들이 시청역으로 모이자 경찰은 시청역을 폐쇄했다. 이는 시위대가 서울 도심에 모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시위대가 종로3가로 방향을 바꾸게 만든 빌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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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과 서울광장에는 이미 경찰들로 일반시민의 통행이 불편할 정도였다. 게다가 등에 봉을 매고 있는 경찰의 모습은 위협적으로 보이기 까지도 했다.
이날 언론사 사진기자들 또한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는데, 필자는 경찰의 뒷모습을 찍은 이 사진 때문에 경찰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신분증 제시요구와 사진을 찍는 목적, 사용용도 등을 질문 받아야 했으며, 더 이상의 사진 촬영은 제지당했다.
▲ 청계광장앞에 진을 치고 있는 경찰 청계광장과 서울광장에는 이미 경찰들로 일반시민의 통행이 불편할 정도였다. 게다가 등에 봉을 매고 있는 경찰의 모습은 위협적으로 보이기 까지도 했다. 이날 언론사 사진기자들 또한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는데, 필자는 경찰의 뒷모습을 찍은 이 사진 때문에 경찰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신분증 제시요구와 사진을 찍는 목적, 사용용도 등을 질문 받아야 했으며, 더 이상의 사진 촬영은 제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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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행진을 시도하는 시위대를 원천봉쇄할 경력으로 질서유지선을 만들고, 곳곳에 진을 치고 앉아 교통 및 시민들의 보행을 막고 있는 경력을 이용해 불과 몇 분만 교통을 통제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한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더욱 시위대의 가두행진을 보호하는 것이 경찰의 선심이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의무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 집회에서는 의무이행을 하기는커녕 집회참가자를 불법으로 몰아넣는 작위를 감행했던 것이다.

직업경찰로 구성된 이들의 연행방식은 시위대를 흉악범 체포하듯이 다룬다는 것이다. 이들이 투입될 만큼 경찰에게 시위대 연행은 사법처리를 위한 꼭 필요한 전제조건인 셈이다.
▲ 시위대 연행에 투입된 사복체포조 직업경찰로 구성된 이들의 연행방식은 시위대를 흉악범 체포하듯이 다룬다는 것이다. 이들이 투입될 만큼 경찰에게 시위대 연행은 사법처리를 위한 꼭 필요한 전제조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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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보호보다 명령체계 우선

경찰의 진압방식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경찰은 '합법적' 틀에서 규정한 시위대의 '불법'을 묵과할 수 없는 듯보였다.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이 수십, 수백 명의 시위대가 불법적으로 도심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보고 두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은 그들에게 용납되어서는 안 될 행동인 것이다.

그래서 경찰은 시위대를 진압과 연행을 함으로써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보호한 것은 시민들의 안전이 아니라 경찰의 명령체계였다. 위로부터 명령이 떨어지면 수단이야 무엇이 되는 결과를 보여줘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도심 가두행진을 두 눈 뜨고 보고만 있을 '나라'가 아니었다. '나라'의 명령은 도심에서 산발적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를 전부 해산시키는 것이고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법치의 원칙을 버렸다. 자신 해산하는 시위대를 포위하고 연행을 시도하는가 하면, 시위를 구경하던 시민들을 확인도 없이 연행하기도 했다. 물론 미란다고지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였다.

경찰이 명동에서 자진해산중인 대학생들은 중간에 길을 차단하고 연행을 시도하고 있다. 이십여 명의 대학생들은 문이 열린 건물 주차타워로 밀렸고 빈 주차 공간에 갇혀 있어야 했다.
 경찰이 명동에서 자진해산중인 대학생들은 중간에 길을 차단하고 연행을 시도하고 있다. 이십여 명의 대학생들은 문이 열린 건물 주차타워로 밀렸고 빈 주차 공간에 갇혀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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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진압 후 명동 거리에 여성화 두 켤레가 주인을 잃고 널브러져 있다. 경찰에 의하면 이날 연행은 불법시위 주동자를 선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했지만 중국인 교환학생이 연행되는 등 무차별적인 연행으로 주변에 있던 시민들 또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경찰진압 후 명동 거리에 여성화 두 켤레가 주인을 잃고 널브러져 있다. 경찰에 의하면 이날 연행은 불법시위 주동자를 선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했지만 중국인 교환학생이 연행되는 등 무차별적인 연행으로 주변에 있던 시민들 또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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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이콘 '경찰채증단' 등장

경찰은 연행을 선별적으로 했다고 한다. 채증을 통해 불법에 적극 가담한자와 폭력을 행사한 자들은 선별 연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집회에 새로 등장한 아이콘이 있었다. 경찰채증단이다. 이들은 디지털카메라에 모노포드를 달고 시위대를 채증하기 시작했다. 이미 시위가담자 전원 사법처리를 엄포한 마당에 증거불충분으로 시위대를 풀어줄 수없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경찰이 불법시위 가담자에 대한 전원 사법처리를 강조한 이상 그들에게 필요한 건 확실한 물적 증거이다. 그래서인지 경찰의 채증카메라가 언론사 카메라보다 더 많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경찰이 불법시위 가담자에 대한 전원 사법처리를 강조한 이상 그들에게 필요한 건 확실한 물적 증거이다. 그래서인지 경찰의 채증카메라가 언론사 카메라보다 더 많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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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경찰의 이러한 노골적인 채증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안전하게 해산하는 것을 최우선시 해야하는 경비경찰의 주업무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이 시위대의 해산으로 업무를 종료할 생각이 아니라 연행에서 사법처리까지 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회 자체가 ‘합법적’으로 제약을 받고, 이러한 제약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불법’이 될 가능성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 5월 1일 밤, 명동 집회 자체가 ‘합법적’으로 제약을 받고, 이러한 제약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불법’이 될 가능성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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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법치의 예외가 아니다

5월 1일 명동에서 있었던 사태는 예고된 것이었다. 다음날 계속된 서울광장의 상황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작년 촛불집회에서 우리는 집회의 자유와 싸웠던 기억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수입 반대로 시작된 집회가 '집회의 자유'까지 외쳐야 했던 작년이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올 초 용산참사를 거치면서 '집회의 자유'를 보장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지금의 상황은 집회 자체가 '합법적'으로 제약을 받고, 이러한 제약을 벗어나려는 행동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찰의 권한이 시민의 권리를 넘어서 합리화 될 수는 없다. 공무집행은 적법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정당성을 찾아야 한다.
▲ 경찰에 쫓기는 대학생 시위대 경찰의 권한이 시민의 권리를 넘어서 합리화 될 수는 없다. 공무집행은 적법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정당성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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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법치를 내세우고 그 원칙 앞에서는 국민과 같은 수명자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법치 앞에 국민이 한없이 작아지기를 강요하고 있다. 국가의 권한이 국민의 권리위에서 존재할 수는 없다는 사실과, 국가 또한 그 자신 스스로도 법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권리가 국가의 권한으로 합법적 제한을 받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제2의 촛불이 다시 켜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태그:#노동절, #집회,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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