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강'에서 흥미로운 테마 소설집을 출간했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를 선보인 것이다.
약간은 거창한 제목과 기획의도도 눈에 띄지만, 그보다 돋보이는 것은 필진들의 이름이다. 이혜경, 김애란, 편혜영, 권여선, 하성란, 김숨, 강영숙, 이신조, 윤성희 등 9명의 소설가들의 이름이 보인다. 지금 한국문학을 이끌고 있는 젊은 여성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셈이다.
그녀들은 서울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소설을 선보였을까? 서울은 애증의 공간이다. 다들 적막하다고 하면서도 서울에서 자리잡기 위해 안주하고 있다. 소설가들의 눈에도 마찬가지다. 편혜영의 '크림색 소파의 방'은 달콤한 제목과 달리 서울에 구체적인 희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서울로 가려고 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비가 내리는 도로를 열심히 달린다. 서울에 무엇이 있기에 그런 것일까. 모른다. 달콤한 미래를 상상할 뿐이다. 하지만 자동차 상태가 좋지 않다. 하필이면 와이퍼가 고장이다. 고생 끝에 도움을 받기 위해 들린 주유소에서는 돈을 갈취 당한다. 그후에도 계속해서 문제가 생긴다. 서울 가는 일은 그렇게도 힘이 든다.
편혜영의 글에서는 서울이 새로 진입하는 사람들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어떤 모습이 느껴진다. 안정적인 직장이나 여유 있는 자본을 갖고 오는 것이 아니라면, 쉽게 들어갈 수도 없을 뿐 더러 들어가더라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다른 소설들에서 현실화된다. 권여선과 김숨, 김애란과 강영숙의 소설에서 그것이 보인다.
권여선의 '빈 찻잔 놓기'에서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몇몇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 사이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그녀'는 어느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사랑일까? 그도 마음을 주는 걸까?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뭔가가 어긋나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쯤,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서울살이에 서툰 '그녀'만 빼고 모두 아는 그런 속임수였다.
김숨의 '내 비밀스러운 이웃들'의 '그녀'는 불안하다. 남편은 그들이 어디론가 갔다, 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이웃들은 이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 사이에서 '그녀'는 어찌해야 할까? 망원역 근처의 다세대 주택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외롭고 두려운 마음을 전해줄 뿐이다. 서울의 서글픈 분위기를 압축한 그런 것이 보이고 있다.
김애란의 '벌레들'과 강영숙의 '죽음의 도로'에서도 비슷하다. 김애란의 '벌레들'은 변두리 재개발 구역의 낡은 연립주택에 사는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곳의 '그녀'는 소음과 먼지에 지쳤고 이제는 벌레들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서울에서 살려고 했던 것일까?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그곳에 온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김애란의 소설에서도 서울의 어떤 음습한 모습이 보이고 있다.
강영숙의 '죽음의 도로'의 그녀는 자살하기 위해 도로로 나간다. 어디에서 자살할 것인가? 일부러 사고가 많이 난다는 도로로 가지만, 차들이 너무 많아서 속력을 낼 수도 없는 지경이다. 그녀는 어찌해야 할까? 어떤 슬픔이 보이는 그 순간에, 그녀는 집에 돌아와 삶의 어떤 끈을 발견하게 된다. 죽으려고 했던 때에, 삶을 더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가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서울도 그렇다는 뜻이 아닐까?
다른 소설가들의 작품에서도 독특하게, 각자의 개성으로 빚어진 서울이야기가 있다. 직접적으로 서울에 대한 이야기가 없더라도, 배경으로써 혹은 어떤 주제의 연장선상으로써 서울에 대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시도 자체도 흔히 보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이 다루는 내용은 더욱 그러한 셈이다. 이 독특한 서울에 한번 찾아가 보자. 뜻밖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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