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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많지만 걷고 싶은 길은 흔치않습니다.
 길은 많지만 걷고 싶은 길은 흔치않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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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많습니다. 너덧 시간이면 부산이나 목포에서 서울까지 내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도 있고, 석양그늘이 드리운 산모롱이를 호젓하게 돌아갈 수 있는 오솔길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거나 모여드는 곳이면 도시건 농촌이건, 들이건 산이건 만들어져 있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길입니다.

길에는 시끄러운 길도 있고, 조용한 길도 있습니다. '아차!'하는 순간 사람의 목숨 쯤 우습게 앗아갈 정도로 차가 쌩쌩 달리는 자동차 전용도로도 있고, 퍼즐 게임을 하듯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가 뒤엉키는 혼잡한 길도 있습니다. 

널린 게 길이고 보이는 게 길이라 할 만큼 그렇게 길이 많음에도 막상 걸어보려고 하면 마음 놓고 걸을만한 길은 흔치 않습니다. 도심지의 웬만한 길에는 이런저런 위험이 뒤따르고, 대개의 시골 길들도 시멘트로 덮여 있거나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들길도 산길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포장되거나 정비되어 있으니 걷고 싶은 길에서 멀어진 지 오래입니다.

계족산 임도에는 송홧가루 같은 황토가 놇게 깔려 있습니다.
 계족산 임도에는 송홧가루 같은 황토가 놇게 깔려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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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 '어느 길이 걷기에 좋은 길일까?'를 골똘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지 않은 길들을 '걷고 싶은 길'의 대상으로 올려보았습니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세심정까지 걷는 길, 굽이굽이 흐르는 화양구곡의 물줄기를 따라 나긋나긋하게 걸을 수 있는 화양구곡 길, 바닷바람을 쐬며 걸을 수 있는 서해안 바닷길, 깔딱하고 숨이 넘어갈 만큼 가파르기만 한 월악산 등산로, 하늘과 땅을 아우를 수 있을 것 같은 소백산 능선길…. 그동안 걸어봤던 길들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정말 걷기 좋은 길이 어디일까를 가늠해 봅니다.  

적지 않게 걸어봤던 그 많은 길들 역시 '걷고 싶은 길'이라는 가늠자를 놓고 들여다보니 대부분이 시멘트길이거나 철계단 길이었습니다. 시멘트가 깔리지 않은 대부분의 산길은 너무 멀거나 힘이 들어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해야만 다가갈 수 있으니 걷고는 싶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길들입니다.

계족산 임도는 계족산성을 정점으로 약 13Km의 트랙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계족산 임도는 계족산성을 정점으로 약 13Km의 트랙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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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한테는 조금 배은망덕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모두 걸어야 했기에 걸었던 좋은 길들이지만 언제고 마음 편하게 다시금 걷고 싶다는 마음이 골똘해지는 그런 길은 아니었습니다.

무슨 선발대회를 하듯 기억 할 수 있는 모든 길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고르거나 탈락시키다보니 가족이나 친구끼리 함께 걷고, 여럿이서, 혼자서 걷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길이 떠오릅니다.

아장아장 걷는 아가, 구부렁구부렁 걷는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길, 한 번 걸어보면 다시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반드시 떠오를게 분명한 길이 대전에 있습니다.  

걷기에 이만큼 좋은 길 또 있을까?

대전 주변에 있는 산 이름에는 닭 계(鷄)자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대전의 서쪽산인 계룡산의 계자가 닭 계자이고, 수통골을 에두르고 있는 빈계산의 계자도 닭 계자이며, 대전의 동쪽산인 계족산의 계자도 닭 계자입니다.

황톳길을 걷고나면 약수같은 암반수로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도 되어 있습니다.
 황톳길을 걷고나면 약수같은 암반수로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도 되어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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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에도 좋은 길이 있고, 수통골을 어우르고 있는 빈계산에도 좋은 길이 있겠지만 계족산에 형성되어 있는 임도야 말로 '걷고 싶은 길'에 딱 어울리는 길이라는 생각입니다.

계족산 팔부능선 쯤을 휘감아 도는 임도는 계족산성을 정점으로 트랙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널찍하지만 차가 다니지 않는 흙길이고, 산길이지만 평지 길처럼 순탄합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완만하게 반복되고 있으니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산속에 나있는 임도이기도 하지만 길옆에서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들 때문에 대부분이 그늘길입니다. 

사방으로 나있는 어느 진입로를 이용해도 좋겠지만 자동차를 이용해 접근해야 한다면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는 장동 쪽이 좋을 겁니다. 산림욕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10여분 정도만 올라가면 흙길이 시작됩니다.

길 옆으로 펼쳐지는 숲에서는 산속의 싱그러움이 쏟아집니다.
 길 옆으로 펼쳐지는 숲에서는 산속의 싱그러움이 쏟아집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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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매체를 통하여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맨발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는 맨발마라톤대회장이 바로 계족산 임도입니다. 트랙을 형성하고 있는 임도를 한 바퀴 다 돌게 되면 그 거리가 13km쯤이 되지만 체력이나 여건에 따라 걷고 싶은 만큼만 걷다 되돌아 오기에도 좋습니다. 

송홧가루 같은 황토가 깔린 노란 황톳길

이미 알려진 대로 계족산 임도는 흙길이지만 그냥 흙길이 아닙니다. 송홧가루 같은 황토가 노랗게 깔린 황톳길입니다. 신발을 신은 채 걸어도 좋지만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걸으면 황토의 보드라움과 촉촉함이 가슴까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길이 널찍해서 시끌벅적하게 여럿이 함께 걸어도 좋고, 단 둘이 소곤거리며 걸어도 좋습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러도 숨차지 않고, 토닥토닥 발장난을 하며 걸어도 발바닥이 아프지 않습니다. 걷는 게 지루하다 싶으면 한바탕 뜀박질을 해도 좋습니다.  

사색을 즐기고 싶으면 타박타박 걷고, 풍광을 즐기고 싶으면 두런두런 살피면 됩니다. 나무가 있고, 꽃들이 있습니다. 마을이 보이고, 넉넉하게 물을 가두고 있는 대청호가 보입니다. 

새로 깔아 놓은 황톳길은 폐속까지 촉촉히 적셔줄 만큼 보드라웠습니다.
 새로 깔아 놓은 황톳길은 폐속까지 촉촉히 적셔줄 만큼 보드라웠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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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딛고 있는 발바닥은 황토가 마사지 하고, 휘적거리는 팔과 다리는 녹음이 애무합니다. 숲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싱그러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숲나무들이 선물하는 피톤치드에 묻히게 되니 인체에 해로운 미생물이 소독됨은 물론 마음의 근심조차 씻겨 내려갑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아 산길걷기에 다소 부담을 느끼는 사람일지라도 걱정할 게 없습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무 곳에나 앉아서 쉴 수도 있겠지만 군데군데 걸터앉을 수 있는 의자도 마련되어 있고 정자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걷고 싶음 만큼 걷고, 느끼고 싶은 만큼만 느낄 수 있도록 맞춤 산길이 마련되어 있는 곳입니다. 

배냇저고리처럼 부드럽고, 포대기처럼 아늑하게 발을 감싸주는 황톳길을 맨발로 걷어보고는 싶지만 깔끔한 성격 탓에 발에 묻은 흙을 바로 닦아야하는 걸 걱정하는 사람일지라도 안심해도 됩니다. 졸졸졸 흐르는 암반수, 약수 같은 물로 발을 깔끔하게 씻을 수 있는 시설도 몇 군데 설치되어 있습니다.

걷다보면 두서너 군데서 음료수와 주전부리도 팔고 있는데요. 이 또한 걷는 즐거움에 액세서리가 되어 줍니다.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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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4월부터 11월까지는 매월 셋째 주 오후에 산림욕장에서 숲속음악회가 열리고 있으니 날짜만 잘 잡으면 산들바람 같은 숲속음악회를 덤처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맘껏 걷고 나면 배가 고파지겠지만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음식점도 사통팔달로 나있는 진입로마다 즐비하니 이 또한 걱정할 게 없습니다. 걷고 싶은 길을 실컷 걸었으면 먹고 싶은 것을 요리하고 있는 식당엘 들러 맛나게 먹으면 됩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부담 없이 다가 갈 수 있고, 걷는 발걸음은 물론 마음까지도 마사지를 해주듯 편안하게 해줄 것이니 계족산 황톳길을 그 동안에 걸었던 수많은 길 중에서 '가장 걷기에 좋은 길'로 낙점해 봅니다.

계족산 황톳길!
한번 걷고 나면 자꾸 걷고 싶어지고, 걷기에 딱 좋은 맞춤형 명품 산길입니다.


태그:#황톳길, #계족산, #임도, #대전, #맨발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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