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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전신인 동래의 옛날은 장산국, 그 성지의 장산 마을
부산의 전신인 동래의 옛날은장산국, 그 성지의 장산 마을 ⓒ 김찬순

1985년에야 전깃불이 들어왔던... 시간이 정지된 마을
 
장산마을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에 속하지 않을까. 그러나 구석기 시대의 장산국이 있던 장산 마을이, 마을로써 승격한 것은 1969년 10월이다. 1962년 정부의 개간촉진법으로 장산 개척단에 의해 개간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에야 전기시설이 비로소 설치되었다. 그리고 1992년 정부 지원으로 장산 마을은 축산농가 정화시설이 설치된다. 그러나 다시 1998년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으로 낙농 폐지 되었다. 
 
장산 마을
장산마을 ⓒ 김찬순
장산 마을 내력
장산마을 내력 ⓒ 김찬순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를 읆조리게 하는 장산마을의 목가적인 풍경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를 읆조리게 하는장산마을의 목가적인 풍경 ⓒ 김찬순

장산 마을은 하늘을 닿는 고층 아파트 건물이 즐비한 부산 해운대에 존재하지만 장산 마을은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시골 마을이다. 뿐만 아니라 장산 마을 입구에 게양된 태극기와 새마을 운동 깃발이 펄럭이는 시간 상 1960년대에서 풍경처럼 멈추어 버린 마을 같다. 그래서 정겹고 푸근한 옛 목장 마을이다. 
 
장산 옛 목장 마을은 해운대구 북동쪽 해발 약 450m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행정구역상 해운대구 좌4동 1통 지역을 말한다. 최초 1969년 10월에 동래구 소속 좌동 장산 마을로 승격되었다. 2007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58세대 인구에 약 120명이 기거하고 있다. 그러니까 1969년 12월 인구 통계 조사에 의하면 장산 마을 인구는 약 45세대에 328명이 살았으니, 총 인구수가 많이 줄어 든 것이다. 
 

풍경 이 된 마을
풍경이 된 마을 ⓒ 김찬순
장산은 목장으로 적합한 산, 산의 정상이 완만하고 물과 풀과 나무와 바람이 좋은 곳이다. 1965년 미국 뉴저지에서 장산 마을 개척단에 젖소를 보내왔다고 한다. 부산에서는 처음이자, 다시 없을 목장 마을이 될 것인가. 
 
도심 속의 산 마을, 장산 목장 마을
도심속의 산 마을, 장산 목장 마을 ⓒ 김찬순

1962년- 1993년에는 100여 마리의 젖소를 사육했다고 한다. 부산 우유와 비락 우유에 납품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2007년 11월 통계) 장산 마을에는 신현덕씨 일가에서 한우 4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장산 산록 우 2동 유격대 입구에는 옛 낙농업을 하던 목장 소유의 약 200평 되는 텅빈 축사가 남아서, 옛 목장 마을의 추억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간을 잃어버린다 장산마을
시간을 잃어버린다장산마을 ⓒ 김찬순

안개 속의 풍경
안개 속의풍경 ⓒ 김찬순
 
가을에 제격인 구곡산 단풍과 바다 안개 전망이 압권
 

구곡 산
구곡산 ⓒ 김찬순
구곡산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해운대구와 경계를 이룬 산이름. 구곡산은 지난날 군사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던 산. 1996년에 해제 되어 민간인의 출입이 가능해진 산. 그래서 구곡산은 깨끗하고 물이 청정하다. 구곡산의 산 이름은 골이 아홉개라는 데서 유래되어 불리었다고 한다.
 
흐르는 물처럼
흐르는물처럼 ⓒ 김찬순

 

어느 해 나라 세워 이 고을(장산을 칭함) 에워쌌던고
삼리의 외로운 성 오소리 언덕이로구나
당신 흥폐의 일 물으려 하니
저녁 구름 시든 풀에 애수를 이기지 못하겠네.
'내산감고'-선위사(일본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신정'
 

물이 맑아야 살 수 있는 피라미 떼들
물이 맑아야살 수 있는 피라미 떼들 ⓒ 김찬순

해운대 장산은 높은 성처럼 자연의 원시림과 시간이 정지된 마을(장산국)을 간직한 산이다. 세월의 흐름은 너무 물과 같이 빠르게 장산 아래는 변하여 가도 장산은 홀로 위풍당당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산이기도 하다.

 

내가 장산을 좋아하는 까닭은 시간을 잃어버린 산이기 때문이리라. 아니 과거 미래 현재가 공존하는 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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