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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나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 너희도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매우 귀한 인물이다.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다. 이 글귀는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말씀으로 "천지 우주 간에 나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너희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언저리에 이 진리를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요즘 '왜 나는 못생겼을까?' '왜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을까?' '왜 내 부모는 무능할까?' '왜 내 의지력이 약할까?' '왜 나는 공부를 못할까?' 따위의 이유로, 때로는 이런 저런 이유도 없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스스로 학대하고, 심지어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버리는 어리석은 젊은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당사자야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제삼자가 볼 때는 하찮거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자기 생명을 버린다.

몇 해 전에는 한 여고생이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하고서는 정상에 오른 채 죽겠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고, 지난해 연말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잘못 보았다고 한 수험생이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는구나. 정말 세상을 너무 모르는 철부지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역전에 다시 역전이 거듭되는 게 인생인데, 한 순간만 보고서 섣부른 결론을 내리니 말이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일

보도를 보니 젊은이 가운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연간 수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가난 때문에, 성적 때문에, 진학에 실패해서, 부모가 꾸중한다고, 사랑하는 이가 죽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버렸기 때문에, 그냥 세상이 싫어서, 살아봐야 희망이 별로 없기에, 죽음이 아름답게 생각되기에 등, 그 나름대로 절박한 사연과 그럴 듯한 명분을 남길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일은 어떠한 경우라도 못난 짓이요,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죽어서도 절대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 하늘은 당신의 뜻을 거역하는 자를 외면할 것이다.

인생은 굴곡이 있는 변화무쌍한 한 편의 드라마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의 화복길흉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려움)로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 아버지 고향 금오산 기슭에서 장택상 전 국무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났다.

저녁놀에 물든 구미 금오산
 저녁놀에 물든 구미 금오산
ⓒ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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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은 경부선 철길 하나 사이로 매우 가까운 거리인데, 해방 무렵까지만 해도 장택상 집안은 영남 제일의 부자 만석꾼으로 고향에서 남의 땅을 밟지 않고 다닐 정도였다. 이와 달리 박정희 집안은 칠남매나 되는 많은 식구가 외가 위토(位土, 묘지에 딸린 논밭) 논 여덟 마지기 농사를 지어가며 살았는데 도저히 생활이 안 돼 장택상씨의 땅 다섯 마지기를 소작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소년 박정희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둘째 무희 형이 지게에다 도지 삯과 마름에게 줄 뇌물로 씨암탉을 지고 장 직각(장택상 조상 벼슬이름) 댁으로 가는 걸 보고 자랐다.

지주의 아들과 소작인의 아들의 인생 역전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어릴 때 제대로 먹지고 못해 체구도 작은 소작인의 막내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최고회의 의장이 되고, 곧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장택상씨가 볼 때는 천지개벽할 정도로 놀랄 일이었다. 그래서 장택상씨는 초기에는 '박정희 의장',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공식 칭호를 붙이지 않고 '박정희씨' '박정희군'이라고 낮춰 부르며 매우 심한 독설을 늘어놓았다.

장택상 전 국무총리 생가, 지금은 한식집이 되었다.
 장택상 전 국무총리 생가, 지금은 한식집이 되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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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문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세상이 변할 줄도 모른 채 아직도 자기를 소작의 아들로 업신여긴다고. 제6대 국회의원 선거 때 장택상씨가 입후보하자 30대 회사원 출신의 송한철이라는 정치 신인을 내세워 보기 좋게 낙선시켰다. 당시 경북 칠곡 선거구는 2대 국회의원부터 5대까지 장택상씨가 내리 70퍼센트 이상의 유효 득표율로 당선된 그의 텃밭임에도 무명의 정치신인에게 참패했다. 선거 결과 민주공화당 송한철 31,446표에 자유당 장택상 고작 23,647표였다.

선거에 진 가장 큰 이유는 칠곡경찰서에서 장택상 후보를 특별히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무장 경찰 네댓 명을 앞뒤로 호위시킨 바, 시골사람들이 무장 경찰을 무서워한 나머지 장택상 유세장에는 도시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도 장택상씨가 계속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지난날 소작인 아들에게 더욱 독설을 퍼붓다가 그만 병이 들었다. 마침 미국에 있는 딸의 초청으로 신병을 치료하고자 수속을 밟는데, 외무부에서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장택상은 냉엄한 현실을 깨닫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 전상서'라는 사실상 항복 편지를 보냈다.

"각하의 건승하심을 축복합니다. … 소생은 스스로 요양할 여유도 없거니와 일체 비용은 미국에 거주하는 소생의 여식이 부담하므로 외화 유출의 과오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초대 외무부장관으로 여권을 창조한 바 있는 소생의 여권을 외무부에서 취소하였다니, 참으로 가혹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각하의 처단이라면 입을 열 여지조차 없지만, 만일 그렇지 않는 한 부하의 처사라면 각하의 현명한 재결(裁決, 판단)이 있으시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소생의 신상관계로 각하의 염려를 번뇌케 하여 드려 죄스러움을 미리 사과드립니다."

그런 뒤 장택상씨는 외무부로부터 여권을 받고는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지난날 어리어리하던 장택상 전 국무총리 오태동 생가 대궐 같은 기와집은 남의 손으로 넘어가 절이 되었다가 지금은 한식집이 되었고, 다 쓰러져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초가집은 말끔히 단장돼 지금 경상북도 지정기념물 제86호로 날마다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다. 이것이 인생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로 경북지정기념물 제86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로 경북지정기념물 제86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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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역전 일화는 <삼국지>나 <18사략> 등에 숱하게 나온다. 가까운 예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이 사형수가 되고, 사형수가 대통령이 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인생은 변화무쌍 재미있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더라도 그때만 지나면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이 세상은 네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네 운명이 달라진다. 이런 세상에서 네 꿈을 한번 멋지게 펼쳐라. 너를 대신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곧 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참으로 위대하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아무렇게 살 수는 없다. 누구나 이 세상에 단 한번만 주어진 삶이기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박도 지음 <길 위에서 아버지를 만나다>라는 책에도 실려 있습니다.



태그:#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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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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