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원경고등학교 효도의 날 행사에서 아이들의 손과 부모님의 발이 만났습니다.
 원경고등학교 효도의 날 행사에서 아이들의 손과 부모님의 발이 만났습니다.
ⓒ 정일관

관련사진보기


오월은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연초록 잎사귀들이 마구 돋아나 세상을 푸르게 바꾼 오월의 느티나무는 그 풍성함과 싱그러움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고, 기후의 편안함은 심신의 평온함으로 다가와 그 넉넉하고 여유로움이 평화라 이름 붙일 만합니다.

오월은 또한 근본을 돌아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노동절로부터 시작하여 부처님 오신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까지 우리의 정신을, 우리의 뿌리를,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날이 많아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달이기도 합니다.

경남 합천의 원경고등학교에서도 오월의 상징적인 의미와 그 소중함을 살려 오월이 오는 길목에서 '효도의 날' 행사를 열었습니다. 소위 대안학교라 부르는 학교에서 효도를 말하는 게 어쩌면 전근대적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효도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세상에서 효도를 강조하는 것이 어찌 대안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1학년 학생이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를 낭송하고 있습니다.
 1학년 학생이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를 낭송하고 있습니다.
ⓒ 정일관

관련사진보기


"자기 가정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사람으로 남에게 악할 사람이 적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간에 반목하는 사람으로 남에게 선할 사람이 적다"고 하고, "유가에서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 하였고, 충신을 효자의 문에서 구한다, 하였으니, 다 사실에 당연한 말씀"이라고 하신 성현의 말씀도 효도의 중요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원경고등학교는 효도의 날 행사를 하는 5월 1일에 '학부모학교'를 열어 가능한 많은 학부모들이 참여토록 하였고, 아이들은 부모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아침부터 기숙사와 학교를 쓸고 닦으며 청소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부모님들께 뭔가를 보여드리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설렘이 아이들의 몸짓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 바치는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아이들이 힘써 부르고 있습니다.
 부모님께 바치는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아이들이 힘써 부르고 있습니다.
ⓒ 정일관

관련사진보기


효도의 날 행사는 학부모 특강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학년별로 한 분씩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요긴한 말씀을 전하며 앞선 경험을 나누었죠. 오후에는 전국의 학부모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전교생의 2/3가 되는 70명의 학부모님들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오후 7시, 강당에 모두 모인 학부모님들을 모시고 학생들은 효도의 날 행사를 활짝 열었습니다. 반별로 한 명씩 선발된 아이들이 나와 미리 써둔 감사의 편지를 낭송하여 아이들의 놀라운 속내를 발견하는 기쁨을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이어서 '작은 공연'을 펼쳤습니다. 비록 어설픈 몸짓이지만 그동안 짬짬이 닦은 실력으로 기타 연주를 하였고, 오카리나와 하모니카를 불었습니다. 그리고 댄스부 아이들은 귀엽고 힘찬 춤으로써 부모님들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작은 공연이었습니다.

 저희들 예뻐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아이들이 재롱떨듯 춤을 추었습니다.
 저희들 예뻐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아이들이 재롱떨듯 춤을 추었습니다.
ⓒ 정일관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아이들의 작은 몸짓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이어서 효도의 날 행사를 가장 빛내는 순서로 '부모님 몸 사랑하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모님들은 모두 둥글게 앉았고, 아이들은 수건을 목에 걸고 대야에 물을 받아 부모님들의 발 아래 앉았습니다.

 어머니 어깨를 주무르는 아이들의 작은 사랑에도 어머니들의 표정은 숙연합니다.
 어머니 어깨를 주무르는 아이들의 작은 사랑에도 어머니들의 표정은 숙연합니다.
ⓒ 정일관

관련사진보기


'부모님 몸 사랑하기'는 소학에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을 낭송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네. / 배로써 나를 품으시고 / 젖으로써 나를 먹이시며 / 옷을 입혀 나를 따뜻하게 해주시고 / 밥을 지어 나를 배부르게 해 주시니 / 은혜가 하늘같이 높고 / 덕은 땅과 같이 두텁구나. / 사람의 자식으로서 / 어찌 효도하지 않겠는가? /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나 / 하늘처럼 넓고 커서 끝이 없어라.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이어집니다. 손을 만져드리는 아이와 어머니가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습니다.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이어집니다. 손을 만져드리는 아이와 어머니가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습니다.
ⓒ 정일관

관련사진보기


부모님들과 아이들은 모두 숙연해졌고, 아이들은 부모님 어깨를 주물러드렸습니다. 부모님은 온통 몸을 맡기셨고, 이미 다 자라버린 아이들의 손아귀 힘을 대견하게 느꼈습니다. 정성껏, 아주 정성껏, 충분히, 충분히 어깨를 풀어드리도록 하였고, 이어서 부모님들의 손을 만져드리게 하였습니다. 입은 다물고, 손가락 끝에 마음을 집중하여 꼭꼭 만져드리게 하였지요.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몸과 마음에 뭉쳐진 노고가 만에 하나라도 풀어지도록 하였습니다.

 오늘 만큼은 시름을 다 잊고 하나되어 만났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하며 꼭 껴안고 다독입니다.
 오늘 만큼은 시름을 다 잊고 하나되어 만났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하며 꼭 껴안고 다독입니다.
ⓒ 정일관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포옹하였습니다.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동안의 상처들을 보듬었습니다. 따스한 가슴의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말로써 다하지 못한 말들을 온몸으로 전하였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에게 건네었습니다.

마침내 아이들의 손과 부모님들의 발이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양말을 조심스럽게 벗기고, 발을 대야 물에 담갔습니다. 그리고 발을 만지며 씻어드렸습니다. 단순히 발을 씻어드리는데 그치지 않고 부모님의 발을 골똘히 만지며 그 모양과 느낌을 또렷이 새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정성껏, 아주 정성껏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아이들은 정성껏, 아주 정성껏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 정일관

관련사진보기


발을 수건으로 잘 닦고 양말을 신기고 부모님들이 신을 다 신었을 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강당 전체를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들은 모두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노래 공양을 받았습니다.

.....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부모님께 드리는 아이들의 노래 공양. 부모님 감사합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부모님 힘내세요.
 부모님께 드리는 아이들의 노래 공양. 부모님 감사합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부모님 힘내세요.
ⓒ 정일관

관련사진보기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스스로 대견스러워진 아이들의 뿌듯함과 부모님들의 기쁨이 잔잔한 여운을 남긴 채 원경고등학교 운동장은 더욱 깊어갔습니다.

1학년 정다민 학생은 "부모님의 발을 만지고 씻어드릴 때 묘한 감동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며, "이런 경험을 통해 제 자신이 더욱 성숙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대안학교 아이들에게 효도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요. 그리고 원경고등학교 효도의 날 행사는 부모님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아이들에게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겠지요. 학교가 함께 정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효도의 날#세족례#원경고등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