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법원 안팎의 사퇴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는 가운데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가 법원내부통신망에 사법부 수뇌부를 향해 "지금 우리 법관 사회에는 무거운 침묵과 절망이 감돌고 있다"고 법관들의 분위기를 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더욱이 이런 법관들의 분위기는 11일 서울서부지법 정영진 부장판사가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법관들이 강경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고 촉구한 뒤 나온 것이어서 소장 법관들을 중심으로 사퇴의 목소리가 커질지 여부도 주목된다.
이옥형 판사 "법관사회 무거운 침묵과 절망 감돌아"서울중앙지법 이옥형 판사(사법연수원 27기)는 11일 법원내부통신망에 올린 '희망…냉소, 절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많은 법관들은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결과 발표와 각급 법원의 의견수렴, 전국법관 워크숍에서의 논의 내용들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간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무망한 것이었음을 알고 '그러면 그렇지' 하는 냉소를 우리 스스로에게 보내고 있고, 이러한 냉소가, 신뢰의 상실이 두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의지가 법원 수뇌부에, 법원행정처에,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있는지 의문"이라고 법원 수뇌부를 겨냥했다.
이 판사는 "(당시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의) '보석에 신중을 기하라', 너무나 지당하신 '재판을 신속히 하라'는 말의 의미를 일반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법관 사회는 그것이 무엇을 주문하는지 듣는 순간 알고 있다"며 "그런데 이러한 행위들이 결론적으로 '사법행정권 행사의 일환'이고 '직무상 의무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라니…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 가슴만 답답하다"고 윤리위의 결정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법관 사회에서 최고로 명예롭고 존경을 받는 자리로, 정의를 선언하는 곳이며,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상징하는 자리"라며 "따라서 대법관은 정의로워야 하고,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에 철저해야 하며 불의와 부당한 간섭에 대해 비타협적이어야 한다"고 바람직한 대법관 상을 상기시켰다.
"바람직하지 못한 대법관 있다면 존경 철회할 것"이어 "우리가 모시고 있는 대법관은 그 이념적 모습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많은 판사들이 대한민국 최고법원의 대법관을 존경한다"며 그러나 "저는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대법관이 있다면 그 존경을 철회하겠다"고 신 대법관을 겨냥했다.
이 판사는 "이번 사태는 우리 사법부 앞에 펼쳐질 긴 역사에서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며 "우리 법원의 모든 분들은 이번 사태가 약이 되기를 바랄 것으로 믿지만 지난 윤리위의 결정과 그 이후의 법관 사회의 냉소와 절망은 독이 될 가능성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많은 법관들이 윤리위의 의견이 있기까지 희망을 갖고 기다려보자고 했는데, 너무 졸렬한 의견이 나오니 많은 분들이 실망하고 있다"며 "이제 윤리위의 의견까지 나왔으니 이번 사태를 처음부터 다시 하나씩 검토해 볼 시점이 됐다"고 법관들이 목소리를 낼 때임을 시사했다.
이 판사는 끝으로 "마냥 냉소를 보내거나 절망하거나 가슴만 답답해하기에는 법원에 대한 애정과 희망이 크지 않으신가요?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은 누군가의 은혜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때만이 얻어진다는 것이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우는 진실이 아닌가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