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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국가인권위와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 직제령을 개정해 조직 및 정원을 21% 감축하는 계획을 강행했습니다. 

인권위는 "입법, 행정, 사법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이라서 '정부 차원의 조직개편'의 대상이 되는 행정부처가 아닐뿐더러 조직 축소는 독립성을 훼손시킨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에 인권위는 직제개편을 단행하는 한편,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조직 감축안에 대한 대통령령 효력정지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바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인권위가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결정을 내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촛불 노이로제에 걸린 이명박 정부가 인권위를 길들이기 위한 '힘 빼기' 차원에서 조직을 축소한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인권위의 핵심 가치 및 제자리 찾기를 조명하는 법학 교수들의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인수위 시절에는 무소속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대통령 직속으로 바뀔 뻔했다. 결국 이 시도는 국내외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 촛불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경찰 대응이 인권침해문제로 불거졌을 때 인권위가 나서 진상을 조사하고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결정했다. 인권위가 정권의 심장부를 건드린 것이다. 그러자 정권은 급기야 인권위 조직 축소를 단행했다.

 

인권위의 강력한 반발은 물론 인권위의 존재의의를 아는 대부분 인권시민단체의 반대 속에서도, 이명박 정권은 인권위법이 조직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인 직제령에 의해 정하도록 되어 있다고 하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20% 이상의 인원을 감축하고 조직을 대폭 축소해 버린 것이다.

 

이 사태가 지금 헌법재판소에 가 있다. 인권위가, 이러한 대통령의 직제령 개정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규정한 인권위법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하면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관련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제 곧 헌재가 이 사건을 다루면서 이 사건의 적부를 가리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위의 독립성, 곧 무소속 독립기관으로서 인권위에 대한 헌법상 위상이다. 인권위가 권한쟁의를 낸 근거는, 법률이 부여한 독립기관으로서 지위가 이번 직제령 개정에 의해 침해되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헌재의 심리는 주로 인권위의 독립기관성에 대한 공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이러한 심리를 예상하면서 과연 인권위 독립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국제인권법적 차원에서 살펴보려 한다. 왜냐하면 인권위의 설립 배경은 국제인권법과 특별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국가인권기구의 하나다

 

먼저 우리가 국제인권법을 이야기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대한민국 헌법 제6조는 국제법에 대해, 우리가 가입한 조약이나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적 효력을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보통 국제법 존중주의로 설명하는데, 인권분야로 좁혀 말한다면 국제인권법 존중주의를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인권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국내적 원칙뿐만 아니라 국제적 원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제인권법에 비추어 우리 인권을 보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헌법적 요청이다.

 

그런데 인권위 문제에서 국제인권법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인권위의 설립 배경과 설립 원칙은 우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제인권법적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이라는 용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국가인권기구라는 말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유엔 창설 이후 국제인권시스템으로 형성된 많은 인권조약들을 각 국가 단위에서 이행할 수 있는 기관을 의미한다. 유엔은 세계인권선언(1948년)을 만든 다음,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선언을 국제법상 구속력 있는 조약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권조약이 바로 사회권규약, 자유권규약, 인종차별철폐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고문방지협약, 아동권리협약 등이다. 이들 인권조약이 각 국가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면 종이 위에 권리만 선언한 꼴이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유엔은 각국이 조약 실천 기구를 만들 것을 반세기 이상 권고해 왔다. 이것이 바로 국가인권기구이다.

 

유엔은 국가인권기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인권기구가 각 국가에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국제적인 원칙을 만들었다. 이것이 독립성 원칙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파리원칙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인권위는 바로 이러한 국제적 조류에 맞추어진 국가인권기구의 하나다. 단지 지난 시절 김대중 대통령이 지시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가 어느 날 갑자기 아이디어를 내어 만들어진 그런 기관도 아니다. 따라서 인권위의 독립성을 말할 때는 국제적인 원칙을 따져봐야 하고 이를 만든 유엔의 입장을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국의 국가인권기구는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인권위는 파리원칙에 부합하는가

 

파리원칙은 국가인권기구가 갖추어야 할 원칙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독립성 원칙을 맨 처음 강조한다. 이것은 인권침해가 국가기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직시한 것이다.

 

인권기구가 만일 인권침해를 해 오거나 할 가능성이 있는 기존의 국가기관의 예속 하에 설치된다면 인권옹호 업무는 결정적으로 제한받을 우려가 있다. 이런 것을 예상하여 파리원칙은 법적으로 조직운영상의 독립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나아가 재정적 독립과 조직 구성에 있어서의 독립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인권위법은 그 제정과정에서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해당 기관과 상당한 갈등을 견뎌야했다. 주지하다시피 인권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법무부는 어떻게 해서라도 인권위를 그 소속 하에 두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인권위가 법무부 소속 하에 들어가면 인권기구의 독립성은 사라진다면 극력 반대하며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서 거리 연좌 농성을 하기도 했다. 이런 처절한 투쟁 끝에 인권위는 무소속 독립기구로 탄생할 수 있었다.

 

다만 예산 편성이나 조직 구성(인사)에 있어서는 파리원칙을 반영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예산 편성에서는 다른 국가기관과 유사한 처지로 특별히 독립기관(예를 들면 헌법기관인 사법부 등)에 준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고, 조직 운영에 있어서도 그동안 행정안전부(과거 행정자치부)의 지속적인 견제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권위는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지위를 확보하였다. 우선 무소속 독립기구로 탄생하여 설립 이후 지금까지 인권위 활동에서 다른 기관으로부터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활동해 온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면은 파리원칙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재정적인 면이나 조직 구성에 있어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지난 두 정권 시절에는 비교적 인권위와 해당 국가기관 간에 협조가 잘 이루어졌고, 해당 기관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존중해 주었다. 이런 것들도 국제사회에서는 우리 인권위가 상당히 대접받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대한민국 인권위는 국제사회에서 메이저 국가인권기구로 자리매김 하였다. 유엔의 국가인권기구조정위원회가 부여하는 인권기구 등급에서도 인권위는 최상위 등급인 A 등급 기구로 분류되었고, 이 조정위원회의 부의장 기구가 되었으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강력한 차기 의장 후보자이기도 하다.

 

인권위 사태, 국제사회는 황당해 한다

 

이런 대한민국 인권위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겠다고 하질 않나, 급기야는 20%가 넘는 인원을 감원하고 조직을 축소해 버렸다. 그것도 인권위의 자율적 판단이 아닌 타율적 결정에서였다. 이러니 유엔을 중심으로 우리 인권위 문제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국가인권기구조정위원회 의장이 우리 정부에 우려를 표명하는 서한을 보내오고, 유엔 인권 최고 책임자인 인권최고대표(인권고등판무관) 또한 그런 내용의 서한을 보내 왔다. 지난 3월에 열렸던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대한민국 인권위 문제가 거론되기도 하였다.

 

국제사회는 인권기구 선도국가로 잘 나가던 대한민국이 갑자기 과거로 회귀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인권위가 이렇게 갑자기 무력화되면 세계의 다른 나라 인권기구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인권향상도 국가 간 영향을 받지만 인권후퇴도 국가 간 영향을 받는 것이 바로 글로벌 국제사회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계가 대한민국 인권위를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인권위는 대한민국 법률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그 본질적 성격은 대한민국을 넘는다. 국제적 조명 하에서만 우리 인권위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주요한 국제인권조약 대부분을 가입함으로써 그 내용을 지켜야 하는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 인권위는 바로 그것을 감독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우리 인권위는 국제적 원칙하에 운영되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국제법적 의무이다.

 

이제 공은 헌재로 넘어갔다. 헌재 결정에 따라 우리 인권위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인권기구로 남을지 아니면 국제사회가 실망하는 인권기구로 전락할지 판가름 난다. 헌재 판단의 역사적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세계가 헌재의 결정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디 우리 헌재가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함으로써 인권위가 국민의 인권향상을 위해 가일층 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 빌어 본다.

덧붙이는 글 | 박찬운 기자는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태그:#인권위, #국가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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