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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런데 보는 순간 내내 웃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편하게만 웃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아줌마로서, <내조의 여왕>은 그러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천지애(김남주)라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그녀의 삶과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온달수(오지호)의 삶에서 동병상련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조의 여왕>은 단순하게 로맨틱 코미디로 치부하기엔 억울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분명 드라마의 진행은 어느 드라마보다 경쾌하고 밝다. 불륜이란 소재조차도 드라마 안에서는 가볍게 스쳐가는 바람 정도로 그려진다. 물론 지애와 달수의 이혼위기가 찾아오지만 허태준(윤상현)과 지애의 모호한 관계는 불륜을 깊이 그려내지 않는다.

 

너무 무겁게 그려내기엔 <내조의 여왕>이 추구했던 밝고 경쾌함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또한 시청자들도 그러한 무거움은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그럼에도 <내조의 여왕>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그리 멀지 않는 나와 내 주변의 일들이 생생하게 그려지다 보니 가벼운 코믹 드라마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부분이다.

 

아줌마들의 인생 너무나 피곤해! 그거 아니?

 

우선 천지애를 비롯한 <내조의 여왕>에 등장하는 아줌마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천지애는 남편의 취직을 위해 발 벗고 나서며 백수탈출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짝퉁 가방'을 만드는 부업을 하며 살아간다.

 

누구는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천지애가 그토록 남편 달수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결국 자기 욕심이 아니냐, 자기의 인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함이 아니냐고. 참, 모르는 말이다. 아무리 아줌마가 아니라고 어떻게 그리도 모를까.

 

대한민국 아줌마가 무식하지만 대단한 점을 꼽으라면 바로 그것은 '모성애'다. 이 점은 아줌마와 처녀를 구분하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지애가 자신의 인생을 업그레이드 하는 데만 몰두하고자 했다면 달수와 이혼을 해도 벌써 백번은 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혼도 너무나 쉽게 하는 세상 이혼녀 꼬리표 때문에 잠시잠깐 고민하겠지만 그와 함께 평생 월세방을 전전하느니 이혼이 나을테니.

 

그래서 지애가 자신의 인생보다도 가족의 인생을 먼저 생각하며 달수를 좀 더 능력 있는 남자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이다. 사실상 아줌마들은 40년 결혼하고 살면 '내 인생 헛헛하다. 왜 내 인생은 없는 거지?"라고 울부짖는 것도 그렇게 모성애 하나로 인고의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혹자는 "누가 그렇게 살래?"라고 하겠지만 그것이 행복인 줄 알고 살았기에 그렇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천지애도 그래서 더욱더 달수의 바람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무능함에도 꿋꿋하게 참고 살아왔다. 한 평생 그런 남자랑 살라고 하면 대부분의 아가씨들은 고개를 흔들 것이다. 그만큼 결혼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경제적 무능함을 짊어지고 살기엔 끈기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천지애는 사실 남편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무덤까지 파며 죽음 가상 연습을 시키며 남편을 자극하기도 했고, 남편을 취직시키기 위해 자신과 연적인 양봉순(이혜영)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여기 누워봐."

"나 살고 싶어. 사는 것처럼 제대로, 나 살고 싶어.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 사는 것처럼. 여보."

 

"옛날엔 네가 내 시녀였지만 이젠 내가 네 시녀할게."

 

그런 그녀가 달수를 버리지 않고 살고 있었던 것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는 남편의 사랑과 심성을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장 부인 소현(선우선)에게 마음을 흔들렸다는 고백을 듣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급기야 소현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불사른 남편의 모습을 보고 참았던 말을 내뱉었다.

 

"당신과 결혼한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라며 남편을 향해 볼멘소리를 했고, 달수는 급기야 이혼을 선언했다. 이 모습에 찬반양론이 불거지고 있지만 아줌마들이라면 지애 심정을 십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달수를 향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런 여자 마음 하나 헤아리지도 못하는 녀석 같으니라구!"

 

여자는 그렇다.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며 '모성애' 하나로 버티고 살지만 그래도 남편에게는 여자이고 싶다. 자신의 마음을 한없이 이해해주고 투정도 받아주었으면 하는 그런 여자 말이다. 그런데 달수는 그러한 여자의 마음을 너무도 모르는 듯싶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에서 나오는 아줌마들의 삶이 남 일 같지 않다. 천지애뿐만 아니라 자신의 병을 숨기며 남편의 일을 먼저 걱정하는 양봉순도 평강회에 들어 남편을 위해 내조에 여념없는 아줌마들도.

 

"사모님, 김치에는 뭐니뭐니 해도 자연산 굴이 들어가야 최고죠. 제가 친척에게 부탁해서 자연산 굴 좀 준비해 왔어요."

 

이러한 아첨을 하며 남편의 승진에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는 부인들. 이 공을 남편들은 알기나 할까? <내조의 여왕>은 이러한 현실적인 모습을 웃음으로 포장해 보여주어 유쾌발랄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도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살고 있으니.

 

총성 없는 전쟁터의 중심에 서 있는 불쌍한 남편들

 

<내조의 여왕>의 아줌마들의 인생이 그렇다면 남편들의 인생은 어떨까? 남편들도 아마도 드라마를 보면서 그리 웃기지만은 않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 일을 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드라마 속에서 재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 서울대를 나왔음에도 백수였던 달수. 경기불황으로 백수신세를 면치 못하는 달수는 대리운전이라도 해서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눈물겨운 투혼을 펼친다. 그래서 달수가 무능력하지만 그러한 모습에 무능함을 탓할 수만은 없었다.

 

또한 이사(김창환)의 계략으로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대기발령을 받은 한준혁. 그는 상사의 뜻을 따르고자 했을 뿐인데 결과는 스스로 자신에게 총을 겨눈 셈이 돼버렸다. 하지만 그는 훗날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 섣불리 이사와 맞서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집에 있는 아내 양봉순에게 미안한 마음에 회사에 나간 척, 만화방에서 만화를 몇 시간째 보며 자장면을 먹으며 시간을 죽이는 모습이 등장한다. 여기에 회사 내에서 계급적인 위치가 남편도 모자라 아내들에게까지 서열이 정해지는 모습에서 우리는 현실의 냉정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도 한준혁이 대기발령 이후 인사이동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갤러리 오픈식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의 서열이 펼쳐지며 서로의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남편들은 인사이동 이후 승진을 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아내의 태도, 패션도 계급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되었다. 일례로 부장 사모님이라고 깍듯하게 말하던 평강회 여자들은 "양봉순씨"라고 호칭을 바꿨다.

 

이처럼 회사 내에서 남편들은 쉼없이 일하며 상사의 눈치를 보고, 치고 올라오는 부하 직원을 견제하며 가족을 위해 생계를 책임지는 데 여념이 없다. 드라마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코믹함으로 한결 부드러워졌지만 실제 남편들의 처지는 잔인할 만큼 냉정할 것이다. 그렇지만 결코 아내와 자식을 위해 집에서는 회사 일에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은 3,40대 아줌마들에게는 코믹한 드라마이기보다는 슬픈 드라마이다. 마냥 웃고 '아이고! 귀여운 녀석들아!"라 외치며 보던 <꽃보다 남자>와는 사뭇 다르다. 세월이 흐르며 쌓인 무게만큼 우리의 고달픈 인생이 <내조의 여왕>에서는 고스란히 녹아있기에. 물론 이렇게 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며 웃음과 감동을 주는 드라마는 언제든지 환영하지만 아줌마 입장으로서 <내조의 여왕>이 그리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그:#내조의 여왕 , #천지애 , #온달수 , #양봉순 , #평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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