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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권엔 '묵언수행' 중인 두 '대주주'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개국공신' 이재오 전 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의 '형님' 이상득 의원이다.

 

['개국공신' 이재오] '귀양살이' 끝내고 '컴백'... "내 '꼬라지'를 돌아보는 중"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귀양 아닌 귀양살이"를 끝내고 돌아온 이재오 전 의원. 그는 요즘 사석에 앉으면 '포도나무론' 설파에 열심이다. 지난해 11월 칠레의 고급 와인 '알마 비바'(Alma viva·'살아있는 영혼'이라는 뜻)의 농장을 견학한 얘길 곁들여서다. "알고 보니 좋은 와인은 '박해의 나무'에서 나더라"는 것이다.

 

"포도나무가 박해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와인이 나온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물이 많은 옥토가 아닌 자갈밭에 심는다. 비가 와도 물이 금세 빠지니 포도나무는 적은 수분이라도 빨아들이려 노력한다. 나무 키도, 가지치기를 계속해서 어느 정도 이상은 자라지 못하게 한다. 자라고 싶은 욕망을 쳐내는 거다. 이런 갈증과 갈망이 포도 열매에 스며들어서 당도가 높아진다더라. 포도나무는 박해를 받고 자라 와인으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나무다."

 

듣고 보면, 자신의 얘기인 듯도 하다. '친박 공천학살'의 주범으로 찍혀 쫓기듯 한국을 떠났다 308일만에 돌아온 그다. 이명박 정부의 '개국공신'에서 '사(私)천의 장본인'으로 몰렸으니, 그로선 '박해'받고 있단 억울함도 들었을 테다.

 

한때 그는 "대통령과 함께 정권을 만들었는데, 내각에서 잘못하면 당에서 쓴소리 할 사람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여권의 '훈장' 노릇을 자임했다. 그러던 그는 지금, 지인들에게 "제 선거도 떨어진 게 남을 뭐라 나무랄 수 있겠느냐. 낙선한 뒤엔 그야말로 내 '꼬라지'를 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토로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스스로 그리고 측근들도 '귀양살이'가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배지를 달고 있을 땐 몰랐는데, 큰 세상에 나가보니 '국회의원의 권력'이란 매우 하찮더라"는 게 그의 깨달음이다. 자택을 찾은 기자들에게 "현실 정치에서 떨어져 있다보니 '대한민국의 50년 뒤, 100년 뒤' 같은 '큰 고민'을 하게 되더라. 귀양살이 다녀왔지만 오히려 그 시간이 내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주민들과 국수 끓여먹고, 측근들에겐 '포옹 인사'... "형님이 돼 돌아왔더라"

 

실제 주변에선 그가 몸을 낮췄다는 평가가 많다. 귀국한 뒤 자신에게 인사 온 옛 보좌진, 지인들을 일일이 품에 안아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좀체 없던 일이란다. 옷맵시, 머리모양 등 사소한 충고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를 오래 알아온 한 측근은 "예전엔 일에 쫓겨 표현에 인색한 아버지 같았는데, 이번에 보니 따뜻하고 가까운 형님이 되어 돌아오셨더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지역구인 은평을에 갖는 애정도 남달라졌다. 동네 시장 "할매" 상인과 화투점 보는 재미를 알게 됐는가 하면, 주민들과 옹기종기 앉아 끓여 먹은 국수 맛을 잊지 못해 한다. 그는 "요즘 지역구를 다니면, 초선 때 생각이 난다"며 설레어 한다고 한다.

 

여의도에서 보기엔 이런 그의 행보도 물론 '정치의 연장선'이다. "10월 재·보선 출마를 위한 지역구 관리"라는 시각이다. 한 친박 의원은 "입으로만 '여의도 가는 다리를 안 건너겠다'고 하지, 은평에서 '정치'는 다 하더라"고 꼬집었다. 그의 '포도나무론'을 놓고도 '박해를 받을만큼 받았으니, 이젠 열매를 맺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말로 풀이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다 최근 이 전 의원과 가까운 심재철·권택기 의원 등이 전당대회 조기 개최를 주장하자, 이런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조기전대를 통해 이 전 의원의 정계 복귀를 꾀하는 것 아니냔 시선이다.

 

이 전 의원도 언뜻언뜻 정치복귀 희망을 내비친다. 정치 얘기만 나오면 "그런 것은 현역 국회의원들이 할 일"이라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으면서도 "정치를 그만둔 건 아니다" "아직 정치 재개를 하지도 않았는데"라는 단서를 다는 게 그 일단이다.

 

['영일대군' 이상득] '재·보선' 참패 이후 형님은 '묵언수행' 중

 

'여권 최고의 막후 실세', '영일대군',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명박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형님' 이상득 의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통령과의 '혈연관계'에서 나오는 이 의원의 파워를 가늠하게 하는 표현들이다.

 

이런 이 의원이 요즘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입도 닫았다.

 

시간을 거슬러보면, 재·보선 전 박근혜 전 대표에게 "우리 정치의 수치"란 직격탄을 맞고 나서부터다. 이후 경주 재선거에서 이 의원의 '심복'인 정종복 전 의원이 낙마하자, 당내에선 그를 겨냥한 공천 책임론이 고개를 들었다. 안경률 사무총장을 시켜 당선 가능성이 낮은 정 전 의원에게 무리하게 공천을 줬다는 의혹 때문이다.

 

여기다 최근 '쇄신 바람'이 불자, 소장파와 친박 사이에서 그는 '쇄신 대상'으로 지목됐다. "인적 쇄신은 '형님'부터"란 말도 스스럼없이 나온다. 그간 여권에선 이 전 의원의 '막후 조정설'이 여럿 나왔었다. 이 의원에게 불리한 상황만 계속되는 형국이다.

 

이 의원의 측근들은 "형님께선 지금 그야말로 '묵언수행' 중"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가 당무나 국정운영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유일한 '공식 창구'인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도 말을 삼간다. 회의 '개근'을 자랑해왔지만, 13일엔 아예 얼굴을 안 비쳤다. 이날 회의엔 원희룡 쇄신특위 위원장이 참석했다.

 

한 측근은 "요즘은 의원들과 미리 잡혀있던 약속도 취소한다"며 "국회에도 거의 안 나오신다"고 귀띔했다. 주위에 '억울함'도 호소한다고 한다. 공천은 당에서 한 것이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항변이다.

 

당내에선 "쇄신 대상", 언론엔 '박연차 수사'로 오르내려... '악재' 연속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이자 이 의원과도 친분이 있는 천신일 전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이 '박연차 세무조사 무마 로비'와 관련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것도 그에겐 불편한 일이다.

 

이에 앞서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구속기소)이 이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박 회장의 선처를 부탁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추 전 비서관이 이 의원에게서 거절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쨌든 이 의원의 이름은 계속 언론에 오르내렸고 그를 괴롭게 했다.

 

좋은 일보단 나쁜 일로,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내내 국민의 뇌리에 새겨지는 셈이다. 그의 측근은 "당분간은 쭉 말씀을 자제하실 것"이라며 "본인도 입은 있으나 말을 못하니 괴로워한다"고 전했다.

 

이재오·이상득, '묵언수행' 그 후는...

 

관심은 이재오 전 의원과 이상득 의원의 '묵언수행 그 후'에 쏠린다. 두 사람은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진영엔 '공공의 적'이란 공통점이 있다.

 

친박 의원들은 이재오 전 의원의 정치 복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월 재선거를 통해 만약 그가 여의도에 돌아온다면, 언젠가는 박 전 대표 쪽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이상득 의원을 두고도 행보에 큰 변화가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전망도 있다. '막후 압력' 의혹에 대해 당장 본인이 누구보다 억울해하기 때문이다. 당직자도 아닌 그에게 '2선으로 후퇴하라'는 주장도 자칫 정치적 수사에 그칠 수 있다. 친박 측은 이 의원을 겨냥해 "작년 총선 공천파동을 뉘우쳤다면 이번 재선거 때 같은 잘못을 또 했겠느냐"며 눈을 흘긴다.


태그:#이재오, #이상득, #묵언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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