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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오트 오베르뉴 지방. 이곳에 펼쳐져 있는 낭만적인 자연과 같이 호흡하고 있는 한 나그네가 보인다. 그는 한 마리의 당나귀를 앞세우며, 목적지가 없는 사람마냥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긴다. 당나귀의 이름은 그리부예. '단순하고 순진하고 바보스러움'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책의 저자 '앤디 메리필드'는 어린 시절 뉴욕의 화려함을 동경하여, 그곳을 위해 과거의 전부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대학 강사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비인간적인 도시의 모습에 실망하고, 숨 막힐 듯 바쁘게 돌아가는 환경에 싫증을 느끼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오베르뉴의 산골짜기에 정착한다.

 

그리부예와 함께하는 여행

 

갑자기 그리부예가 멈춰 섰다. 그리고 동시에 그도 멈춰 선다. 그리부예가 멈춰선 동안 그는 멍하니 사색에 잠기고, 노트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끼적거린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쉬기를 마친 그리부예는 걸음을 재촉하고, 그제야 그도 그리부예를 따라 길을 나선다.

 

그는 그리부예를 채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리부예의 행동과 보조를 맞추면서 그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는 도시에서 경험한 조바심과 좌절감, 앞차를 추월하고 싶은 충동, 경적을 울리고 싶은 마음, 돌아버릴 것 같은 마음, 앞길을 가로막는 느림보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은 마음을 그리부예와 함께 지내면서 벗어던진다.

 

또 다시 그리부예가 멈춰 섰다. 이번에는 작은 개울가가 그의 걸음을 방해하고 있다. 그리부예는 이쪽으로 한걸음, 저쪽으로 한걸음씩 내딛어보면서 마침내 가장 알맞은 방법을 선택한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했던가? 그리부예는 즉흥적이고 계획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몸소 신중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준다.

 

아프리카의 민간설화에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과 한 쌍을 이루는 동물이 하나씩 있다고 하는데, 저자의 반쪽은 과연 당나귀 그리부예였다. 그는 그리부예와 같이 떠난 이 여행을 통해 과거와의 교류를 이어가고, 마침내 그가 알고자했던 참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당나귀를 반쪽으로 삼은 또 다른 사람들

 

당나귀를 통해 이 세상을 이야기한 사람은 과거에도 여럿 있었다. <동물농장>을 쓴 조지 오웰은 당나귀 벤저민을 통해 냉혹한 인간 세상을 비판했고,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는 당나귀 대플을 통해 부와 권력이라는 헛된 욕망에서 산초를 구해냈다. 그뿐이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서는 당나귀의 '원초적 외침'이야말로 더러움으로 찌든 이 세상의 유일한 방어기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반면에 이솝은 그의 우화에서 당나귀를 우둔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에서 울부짖는 당나귀를 통해 거짓이 들통 나고, <당나귀와 베짱이>에서는 베짱이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기 위해 이슬만 먹고 지내다가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당나귀의 백치스럽지만 충직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성품은 병들어 있는 어린이들과 노인들에게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을 붙일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각종 정신관련 질환의 치료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봤을 때 나는 이솝의 이야기보다는 다른 쪽의 이야기에 더 공감을 표시하고 싶다.

 

돌아가야 하는 그리부예

 

저자의 유일한 친구로 여행을 같이 했던 그리부예는 결국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었다. 아무리 저자가 사랑을 베풀고자 해도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못하다는 것을 저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나귀와 함께 걸어서 여행하면서 깊은 교류를 가진 사람은 결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당나귀에게서 받은 감동을 평생 동안 품고 가게 되지요"라는 말처럼 그는 평생 동안 그리부예를 추억하며 그가 가르쳐준 교훈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 누가 당나귀가 우둔하다고 욕했던가? 화려하지 않은 외모 때문에 그의 참모습을 깨닫지 못했던 나에게 이 책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리부예와 저자의 여행을 간접적으로 동행하면서 얻은 따스한 동료애, 우직한 성품, 인내심, 배려심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이제껏 잘 몰랐던 그를 이해할 수 있어 기뻤던 것일까? 책을 덮으면서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당나귀의 지혜 - 혼돈의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기

앤디 메리필드 지음, 정아은 옮김, 멜론(2009)


#당나귀의 지혜#앤디 메리필드#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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