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 1지난해 12월 양식장 증가로 넙치·전복의 생산과잉 현상이 발생하자, 농림수산식품부는 수급안정 차원에서 즉시 매입에 나섰지만, 마땅히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골치를 앓았다. 고심 끝에 푸드뱅크를 찾아갔고, 넙치 64톤·전복 20톤 등 총 84톤 분량을 전국의 푸드뱅크 302개 소를 거쳐 전국에 소재한 1660개 소의 사회복지시설(19만3000명)에 전달했다.넙치·전복은 모두 즉시 취식이 가능한 회로 가공해 밀폐 포장한 뒤 전달됐으며, 이를 위해 농림부, 수협, 전복협회, 푸드뱅크 담당자, 자원봉사자 등 5000여 명과 전국의 푸드뱅크 냉동운반차량 500여 대가 동원됐다. 덕분에 당초 운송비용 등으로 책정됐던 예산 수억 원이 고스란히 남았고, 농림부는 이 예산으로 다른 식품을 구입해 푸드뱅크에 또 한 번 기부했다.# 사례 2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사는 주부 조수현(52)씨는 피트니스클럽에 등록하면서 집에 안 먹고 쌓여 있던 라면·통조림·과자·김 등을 내고, 신규 회원 가입비 3만원을 면제 받았다. 피트니스 프랜차이즈인 '커브스코리아'는 매년 고객들을 대상으로 회원 가입비 대신 식품을 기부 받는 '푸드 드라이브'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조씨가 등록한 문정클럽은 이 행사 덕분에 전 달에 비해 가입자가 50% 이상 증가했다.전국 30여 개의 가맹점에서 기부 받은 350만 원 상당의 식품은 강남 기초푸드뱅크에 기증돼 결식아동·독거노인 등 소외된 이웃에게 제공됐다. 조수현씨는 "가입비도 면제 받고 불우 이웃도 도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행사"라며 반겼다. 김재영 커브스코리아 대표는 "기부는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닌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며 "커브스는 다양한 이웃 사랑 실천을 통해 실질적인 기부 문화 정착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푸드뱅크는 1998년 도입된 이래 기부량과 이용량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양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이용량은 크게 증가한 반면, 기부량은 정체되거나 감소하면서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푸드뱅크 사업의 효과는 단지 잉여식품으로 저소득층을 도와주는 것 이상이다. 식품자원 절약, 환경오염 방지, 사회 연대감 확산 등 부수 효과가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푸드뱅크 사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국가·기업·개인 차원의 관심과 인식 전환, 제도적 지원 체계의 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메뉴판닷컴', '15일의 천사'... 기부하는 대기업들푸드뱅크는 1967년 미국에서 잉여 농산물의 무료 배분을 목적으로 처음 시작된 이래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처음 만들어져 현재 전국에 300여 개소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푸드뱅크의 주요 사업은 식품류의 기부, 배분이다. 대상 식품은 시식이 가능하지만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가공식품, 당일에 팔다 남은 생식품 및 조리식품, 식품업체의 시식 견본용 및 재고 제품 등이며 품목별로는 가공식품이 전체 기부품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공급자가 기부식품을 일방적으로 배분하는 푸드뱅크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용자가 직접 원하는 기부식품을 선택할 수 있는 편의점 형태의 푸드마켓도 생겼다. 서울시는 이미 2003년부터 설치를 시작했고, 현재는 24개구에 1곳씩(영등포는 2곳) 있다. 최근에는 대전 서구와 동구에도 푸드마켓이 만들어졌다. 오는 6월까지 경기 10곳, 전북 5곳, 부산·경북·경남 각 4곳, 인천 3곳, 충북·충남·광주·대구 각 2곳, 강원·전남·울산·제주·대전 각 1곳 등 43곳이 추가 설치된다.
매월 정기적으로 기부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연말에 가장 많고, 연초나 여름철에는 기부량이 줄어 이용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광역푸드뱅크'는 기부품의 수급조절과 효과적 배분을 위해 최근 도봉구 창동에 물류센터를 만들었고, '전국푸드뱅크'도 올해 8월경 충청지역에 건축면적 1984㎡(600평 내외) 규모의 물류센터를 건축할 예정이다.
기부를 원하는 개인이나 단체, 기업들은 지역 종합사회복지관이나 각 푸드뱅크(1688-1377) 담당자들에게 연락하면 된다. 개인의 경우에는 기부품을 금액으로 환산해 기부 영수증을 발급해 주고, 기업의 경우는 기부한 식품의 장부가액 전액에 대해 100% 손비처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맛집 정보 사이트인 '메뉴판닷컴'은 지난해 추석 직전 전국한우협회의 협조를 받아 원가에 한우를 구입, 전국 푸드뱅크를 통해 조손 가정 3000세대에 국거리 1kg, 불고기 1kg씩을 전달했다.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개인 기부자들도 있다. 2004년 2월부터 매월 빠짐없이 15일이면 서울 창동푸드마켓에 쌀과 라면을 기부하는 한 독지가는 푸드뱅크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15일의 천사'로 불린다. 한 재일교포는 1년에 두 번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필요한 품목을 전화로 물어보고 200만 원 상당의 식품을 직접 구입해 푸드마켓에 보내고 있다.
소외 계층이 원하는 기부식품은 아무래도 대기업에 많다. 뚜레쥬르나 파리크라상 등에서는 매일 아침 빵을 책임지고 있다. 이밖에도 CJ·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농심·대상·동서식품·웅진식품·오뚜기·샘표식품 등 많은 대기업이 식품기부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CJ그룹은 푸드뱅크에 참여하는 업체 중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기업으로 알려졌다. 병원이나 학교, 대기업 구내식당에서 기탁 받은 조리된 음식은 노숙자·결식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로 보내진다.
기부량 증가율은 둔화, 이용자는 급등푸드뱅크·마켓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더 많은 식품을 기탁 받는 것이 관건이다. '전국푸드뱅크'에 따르면, 푸드뱅크에 기부된 규모는 2005년에 396억 원이었는데, 2008년에는 423억 원으로 최근 들어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부품의 배분양도 2005년에는 311억 원이던 것이 2008년에는 297억 원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올해 푸드뱅크 이용자는 하루 평균 14만3000명으로 지난해 11만5900명보다 23%가량 증가했다. 무료급식소, 복지기관 등 푸드뱅크를 이용한 단체 숫자도 지난해 월 최대 216곳이었는데, 올 들어서는 1월 296곳, 2월 445곳, 3월 775곳으로 크게 늘었다. 기부가 이용 요구량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정기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장은 "경기 침체 등으로 많은 업체들이 계획생산을 통해 재고품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실제 과거에 비해 업체 단위의 시식품, 재고품 등이 적어진 게 기부액 증가율 둔화의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정기혜 실장은 이어 "아직 우리나라 푸드뱅크는 식품만을 기부, 배분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미국, 캐나다 등은 식품뿐만 아니라 비누, 화장지 등 생활용품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푸드뱅크 사업을 확대,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기부품의 범위를 식품에서 생필품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식품기부 활성화에 관한 법률' 개정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대기업이나 대형 음식점들이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동참을 꺼리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 식품업체의 관계자는 "푸드뱅크 사업에 대한 인식은 사회복지 실천이라는 긍정적인 면과 팔리지 않는 제품을 처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며 "기부자 입장에서는 기부하는 것보다 폐기하는 것이 비용 면으로는 더 유리할 때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업의 기부 활동이 오히려 대외 이미지 향상뿐 아니라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무성 숭실대 교수(사회복지대학원장)는 "한해 총 321톤의 식품을 기부한 식품기업 A사의 경우, 직접폐기비용 4억4600만 원 중 11%인 4900만 원 및 샘플링 효과 등 비용절감은 물론, 기업이미지 향상, 환경오염예방, 식품지원활용 극대화 등 1석5조의 다양한 직·간접적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또 "기업의 위험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해 경직되어 있는 식품 유통기한을 일본처럼 이원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조세연구원측도 "법인의 법정기부금 손금한도가 지난 2006년 75%에서 2009년도 이후에는 50%까지 축소됐지만, 푸드뱅크에 식품을 기부할 경우에는 손금한도 없이 100% 공제가 허용되므로, 기업에게는 비용절감 및 사회공헌활동 효과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새로운 기탁처 확대가 관건... 대형마트 등에 기탁함 설치 추진새로운 기탁처가 발굴되지 않는다면 기부량 정체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무성 교수는 "식품기업에만 의존하지 말고 유통기업과 소비자들도 기부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대형마트에서 '1+1 상품'을 살 경우, 하나는 고객이 가져가고, 다른 하나는 기부함에 넣는다면 기부 확대뿐 아니라 내수진작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전국푸드뱅크'는 올해 7월까지 대형할인마트, 아파트 단지 등에 식품 기탁함 350개를 제작·설치할 계획이다. 이미 일부 대형유통업체는 다양한 형식으로 기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는 판매시 어려움이 있는 포장 손상제품을 매월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구매가 곧 기부"라는 슬로건으로 전국 63개 지점에서 계란 1팩('제주 독새기' 특란 15입/2980원)을 판매할 때마다 계란 1개씩을 적립해 푸드뱅크에 기부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월에만 계란 3만개를 푸드뱅크에 기부했고, 15개씩 2000세대에 배분했다.
이른바 '사랑의 계란 나눔 행사'를 기획한 김환웅 롯데마트 축산팀MD(상품기획자)는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풍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고객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부를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상품을 사게 됨으로써 간접적으로 기부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복지사업에서 시스템을 갖추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헌신할 수 있는 우수 전담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하지만 푸드뱅크의 경우 과중한 업무에 비해 턱없이 낮은 월급으로 인해 실무자들의 이직률이 높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단체장의 의지가 없을 경우 아예 전담 인력조차 없는 곳도 많다.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는 예산의 경우 광역 푸드뱅크는 연간 2000만 원, 각 기초 푸드뱅크는 연간 200만 원이다. 사무실 유지비는커녕 기탁품 수송 차량 유지비를 충당하기에도 모자란다. 정작 기부품을 가져가라는 연락이 와도 발이 묶여 가지러 갈 수가 없는 셈이다.
조생래 부산광역푸드뱅크장은 "푸드뱅크는 공동모금과 달리 물품을 겸비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부 시스템"이라며 "그런데 지방의 경우 전담 인력 배치 등 정책적인 뒷받침이 안 돼 있어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